2020년 주세법이 ‘종가세’에서 ‘종량제’로 개정됨에 따라 우리나라도 마이크로 브로워리(소형 맥주 양조장) 시대가 열렸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 대기업에 의해 독점 제조되던 맥주는 북한의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오명을 쓰고 있었는데 드디어 오명을 벗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일반 마트에 가보면 4갠에 만원으로 살 수 있는 양조장 맥주가 넘쳐 난다. 애일이나 IPA라고 해도 쓴 맛을 혁신적으로 제거해서 라거와 큰 차이가 없다. 한번 양조 맥주에 빠지면 대기업 라거는 입에도 대기 힘든 맥주로 전락한다.

나는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사실 맥주를 안 좋아한 이유는 물 맛과 구별이 안 되는 맥주 맛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점에 가면 선택지가 없어서 대기업에 의해서 맥주 갑질 당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한국 사람들이 소맥을 좋아 하는 이유도 이 평범한 물 맥주 맛을 없애기 위해 나름 고육지책으로 고안해낸 것으로 보인다. 양조장 맥주는 맥주 좋아 하는 사람들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켰다.

마이크로 브로워리의 천국 미국과 벨기에 등지에서도 로컬 양조 맥주는 값이 비싸서 함부로 구입하기 힘들다. 미국에서는 Boston Brewery가 마이크로 브로워리임에도 혁신과 비용절감을 통해 전국 유통에 성공해서 처음으로 수준 높은 Sam Adams를 전국에 출시했다. 이때 처음 맛보았던 Sam Adams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맥주 맛을 아는 사람들은 버드와이저, 쿠어스, 버드 라잇을 안 마신다. 독주를 샷으로 마시고 입가심으로 마시는 싼 맥주가 필요할 때 이런 맥주를 마신다.

다행이 우리나라는 지역이 작아서 유통 비용이 미국만큼 들지 않아서 대기업이 만드는 라거 수준의 가격 혁신에 성공한 양조 맥주의 성공가능성이 높다. 요즈음 제주 맥주가 양조 맥주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도 그 증거다. 맥주 맛에 양조장의 진정성이 있는 스토리를 체험으로 담을 수만 있다면 성공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지금 양조 맥주 시장은 진정성이 있는 자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대회에서 수상했다는 천편일률적인 식상한 스토리만 넘친다. 맥주값이 음식값보다 비싸지 않으면 생 맥주라도 배달도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품질과 스토리를 가진 양조 맥주의 성공 개연성이 높다.

우리도 이제는 대기업의 일방적 라거 맥주 갑질에서 벗어나 맥주의 민주화 체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하게 민주화된 맥주를 싼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술 마시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