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카카오, 네이버, 앤씨소프트 등 ICT기업들에서 불거지는 문제를 지켜보며 기업문화에서 동양의 강점인 가족 개념이 사라지고 혈연, 지연, 학연으로 뭉쳐진 가족 개념만 남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가족의 개념을 멋지게 번역해서 로얄 패밀리라고 칭하고 있다. 조폭 집단을 연상케 하는 패밀리는 회사 안 혈연, 지연, 학연, 연줄로 엮어진 장막에 가려진 내집단을 의미한다.

글로벌에서 가족의 개념이 살아 있는 대표적 초우량기업으로 거론되는 회사는 SAS, Southwest Airlines, Zappos, Patagonia 등의 회사들이다. 이런 회사에서 아직도 쓰고 있는 가족이라는 개념과 우리나라 기업들이 쓰고 있는 패밀리는 어떻게 다를까?

가족의 구성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경계다. 초우량기업에서 가족의 경계는 회사가 내걸고 있는 중심가치로 구성된 목적에 의해서 정해진다. 이런 회사에서는 목적을 통해 사명의 울타리를 만들고 이 울타리의 가치에 헌신하는 한 다 중요한 가족이다.

반면 우리나가 기업들이 추구하고 있는 패밀리의 울타리는 혈연, 지연, 학연, 연줄이다. 창업자의 혈연, 지연, 학연이 얽혀 있는 연줄의 울타리에 들어 있지 못하면 말은 가족이지만 평생 머슴의 대우를 벗어나지 못한다. 말만 가족이지 영원한 기타 집단이다.

목적을 기반으로 사명의 울타리를 가족의 울타리로 정하고 있을 때 시대에 따라 이 울타리를 확장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혈연, 지연, 학연으로 구성된 패밀리를 가족으로 할 경우는 내 집단의 사람이 바뀌지 않는 한 시대에 맞춰 울타리의 외연을 확장하지 못한다. 변화가 어려운 시기에는 이런 패밀리가 오랫동안 기득권을 행사하지만 지금처럼 변화가 상수가 된 세상에서는 이들은 돌연사의 주범이 된다.

둘째, 글로벌 기업에서 가족의 구성원들은 조직에 설정한 가치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들이 설정한 사명과 가치의 울타리 안에서 혁신과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치열하게 치고 박고 싸운다. 가족을 대표해서 출장하는 것도 연장자가 아니라 가장 실력이 있는 구성원이다. 반면 한국의 패밀리에서 말로는 혁신을 강조하지만 이 혁신은 가치를 위한 혁신은 아니다. 패밀리의 정치적 입지를 위태롭게 만드는 혁신은 절대 금지다. 패밀리의 수장의 의도를 실현시킬 수 있는 혁신만 진정한 혁신이다. 혁신은 다양한 가치를 실현시켜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패밀리 수장의 의도를 잘 이해하고 이들의 심기를 경호하는 것이 목적이다.

마지막으로 초우량 기업에서는 혁신을 위한 치고 박는 싸움이 끝나고 방향이 정해지면 언제 싸웠느냐는 듯이 가족 모두가 한 방향으로 헌신한다. 싸운 것이 더 나은 가치를 위해 싸운 것이지 상대가 싫어서 싸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싸운 후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약속하고 헌신한 목적을 실현해서 세상에 가치 족적으로 남겨 가치 다양성에 기여하는 일이다. 반면 한국의 기업에서 통용되는 패밀리는 사회를 위한 가치 다양성에 기여하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패밀리에 포함된 사람들에게 성공적으로 기업을 승계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한국에서 통용되고 있는 경영 패밀리 개념의 더 큰 문제는 지금처럼 변화가 가속도를 붙고 불확실성이 폭증할 때이다.

글로벌 초우량 기업에서는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현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울타리에 올라가서 이입되는 중요한 정보를 모아서 불확실성과 변화 속에서 발현되는 미래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여 신속하고 애자일하게 대응한다. 한국의 패밀리는 이런 상황일수록 문을 더 굳게 잠구고 왜곡된 불충분한 정보에 기반해 패밀리의 수장이 의사결정을 내린다. 이들이 믿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 가진 우수한 인지적 능력이지만 투입되는 정보가 쓰레기 일경우 아무리 두뇌가 우수해도 이들이 내린 결론은 쓰레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적어도 ICT 기업에 내부 패밀리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학벌과 연줄이 핵심이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의사결정이 효과적일 때는 상황이 안정적이고 모든 정보가 다 한곳에 모여 있을 때이다. 지금처럼 코로나로 상황이 불안정하고 정보가 회사 바깥의 환경 속에 숨겨져 있을 때 학벌, 지연, 연줄로 묶인 회사의 로얄 패밀리는 스트레스를 감내하지 못하고 회사에 치명적인 의사결정을 해서 결국 돌연사하는 운명에 처한다.

최근 카카오나 네이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분석해보면 회사를 암묵적으로 소수의 패밀리와 그외 기타로 나눠 경영하는 한국재벌의 병폐였던 로얄 패밀리 경영의 경향은 ICT 대기업에도 복제되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