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을 이기는 두 가지 전략
우보천리 vs 빨리 빨리
각 나라의 문화차를 비교연구하는 홉스테드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불확실성에 대한 회피경향은 심각한 수준을 넘어선다.
불확실성에 대한 회피성향이 가져오는 폐혜는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최근에 전경련이 자체조사한 한국의 기업가 정신은 OECD 33개 국가중 27위로 꼴찌 수준이다. 기업가 정신은 과거보다는 미래의 기대이익에 투자하는 성향이다.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믿기 시작하면 기업가 정신은 그만큼 떨어진다. 가장 먼저 미래를 위해 나서야 할 젊은이들이 먼저 영끌을 해가며 단기적 부동산, 주식투자 등 현재가치를 실현하는 일에 나선다.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젊은이들이 기업가 정신을 상실한 국가에 미래가 있을리 없다.
외국사람들이 한국사람을 구별해낼 때 착안하는 말이 빨리 빨리다. 빨리 빨리는 불확실성을 극도로 싫어하는 정서 때문에 만들어진 한국인에게 고유한 행동성향이다. 사람들은 버스줄에 서 있다가도 버스가 오는 것이 보이면 줄을 무시하고 먼저 타기 위해 버스가 서기도 전에 달려간다. 타지 못할 것에 대한 불확실성이나 자리확보에 대한 불확실성을 회피하기 위한 전략이다. 엘레베이터에 탄 사람들도 문이 닫히고 있는데 문닫힘 버튼을 계속 누른다. 문이 안 닫혀 목적한 층에 못 올라갈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 심리에 대처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대한민국처럼 부모들이 사교육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는 국가는 없다. 사교육에 대한 투자는 공교육 제도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생긴 잘못된 관행이다. 과외를 시키는 목적은 두 가지다. 답안을 고르는데 실수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 점수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선행학습이다. 설정된 교과과정보다 앞서서 공부하는 것도 좋은 점수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앞서서 공부하고 시험까지 먼저 봐가며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전략이다. 학원에서 선행학습 한 것을 학교에서 다시 공부하면 아는 것을 공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부 못할 수도 있음에 대한 심리적 불확실성을 제거해준다. 선행학습이라는 학원빨로 학교 다닐 때 자신이 공부좀 한다는 효능감에 대한 허위적 믿음은 직장에 들어가 답이 없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다시 산산조각이 난다.
한국에 혈연, 학연, 지연 등의 연고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도 이런 내집단을 결사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불확실성을 통제하는 나름의 고육지책이다. 뇌물이나 부정부패 수준이 OECD 국가에서 꼴지를 차지하는 이유도 일반거래를 통해서는 계약을 성사시킬 불확실성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뇌물이라도 줘서 거래에서 생기는 불확실성에 대한 안정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성리더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불확실성을 급복하는 방식은 이런 빨리 빨리의 방식이 아니다. 진성리더들은 우보천리(牛步千里 )라고 알려진 급진적 거북이 방식을 사용한다. 목적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우보천리를 권하는 급진적 거북이 전략이 빨리 빨리보다 더 불확실성을 확실하게 제거하는 싸움에서 이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보천리는 거북이와 토끼의 달리기에서도 그 전략의 우수성이 입증되었다. 단거리 경주에서야 토끼가 거북이를 이기겠지만 장거리 경주에서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거북이가 토끼를 이길 수 밖에 없다. 우리 삶이 한 두번의 단거리 경주를 하고 생을 마감할 운명이라면 토끼의 전략 즉 우리 모두가 채용하고 있는 빨리 빨리의 전략이 더 먹혀들어가겠지만 한번 대박치고 자신의 인생이 종칠 것을 바라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달리기가 장거리 경주일 경우 초반에 스퍼트를 내는 전문적 달리기 선수는 없다. 매일을 100M 경주라고 생각하고 뛰는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 기진맥진해져 몇 일 밖에는 제대로 뛸 수 없다. 인생은 그자체로 전에 일어난 사건들이 반복되고 뒤의 사건에 반영되어가며 연속으로 이어지는 장거리 경주일수밖에 없어서 토끼의 빨리빨리 전략은 목적함수 자체를 잘못 설정한 것이다.
장거리 경주에서 거북이의 우보천리가 토끼의 빨리빨리 전략을 이길 수 밖에 없는 결정적 이윤은 거북이는 느리지만 목적지에 대한 급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북이가 쉬지 않고 틈 날 때마다 달리는 이유는 목적지에 대한 생생한 믿음 때문이다. 목적지에 대한 생생한 믿음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해준다. 토끼가 100M 경주에서 승리한 자만심에 빠져 있을 때에도 거북이는 목적지에 대한 믿음 때문에 쉬지 않고 서서히 달린다.
목적지에 대한 믿음이 내 마음을 온통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한 번도 목적지를 버리고 딴 생각을 한 적이 없다. 토끼가 주변의 환경에 눈이 팔려 목적지에 대한 생각을 잃어버리고 잠을 자거나 딴짖을 할 때도 목적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길을 떠난 사람은 주변의 급격하게 변화하는 환경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다. 잠자고 일어나서부터 시작해서 시간날 때마다 뚜벅뚜벅 걸음을 멈추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 목적지에 대한 믿음이 마음을 활활 태우기 때문이다.
기업에게는 이 목적에 대한 믿음은 사명의 울타리를 제공해준다. 기업이 둘러준 사명의 울타리에 대한 믿음이 있는 회사의 구성원들 마음 속에는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는 공유된 심리적 안정지대가 생긴다. 구성원은 이 심리적 안정지대에서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없이 미래를 위해 혁신하는 일에 매진하고 이런 구성원을 가진 회사는 다른 회사보다 먼저 미래를 만들어낸다. 기업의 종업원들이 믿고 있는 공유된 목적만큼 불확실성을 비용없이 확실하게 제거해주는 기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목적을 통해 불확실성을 제거하지 못하는 회사는 인센티브로 불확실성을 해결하던지 조직을 정치집단으로 희생시켜가며 개인적인 수준에서 불확실성을 해결한다. 이런 회사는 파워있는 사람에게 연줄로 엮인 내집단 관계가 불확실성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자리잡는다. 조직전체가 사일로로 만들어진 정치조직으로 변모한다.
둘째로 토끼의 빨리빨리의 전략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경쟁자를 이기는 것이지만 우보천리에서의 거북이 전략은 자신과의 싸움이 핵심이다. 자신과의 싸움은 항상 자신을 겸손하게 만들고 이 겸손을 통해서 자신을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성장하게 만든다. 반드시 필요한 장기적 역량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토끼의 빨리빨리 전략은 남들에게 뒤지면 열등감을 남들을 이기면 우월감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자신에 집중해서 학습하는 능력을 떨어트린다. 잔머리를 굴리는 재주는 늘어도 역량이 축적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거북이의 우보천리 전략은 동료들을 멀리가기 위한 동행으로 초대하는 전략이다. 아프리카 속담에도 단거리를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동행을 구하라는 말이 있다. 빨리 빨리의 전략은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사람을 경쟁자로 만들고 단 한 명의 우승자와 나머지의 모든 패배자로 만드는 전략이다. 우보천리의 전략을 실천하는 사람 주변에는 항상 훌륭한 파트너가 많이 몰린다. 목적에 대한 믿음을 공유함을 통해 서로간의 관계적 불확실성을 제거했고 이들 사이에 정치적 협동을 넘어 목적을 실현시키는 큰 그림에 집중할 수 있는 협업의 공간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시간에 쫒겨서 단기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할 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쫒기면 쫒길수록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 보는 우보천리의 전략이 필수적이다. 자신이 그렇게 옳다고 믿고 전력질주해서 달려온 수천리 길이 마지막 순간에 막다른 골목에 도달해 잘못된 길이었다는 것을 아는 것만큼 비극적인 사건은 없다.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기제인 목적에 대한 생각없이 빨리 빨리 전략으로 남을 이겨서 일등이 되는 일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주변 모든 친구들이 적으로 변해 자신의 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피드백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한 삶을 열심히만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빨리 빨리의 방식이 불확실성을 효율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은 절대 아니다. 특히 변화가 상수가 되고 답이 없는 미래에서는 남을 이겨서 빨리 일등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면 가장 심각한 불확실성의 희생물이 될 개연성이 높다.
쿠팡의 총알배송으로 일년 동안 9명의 근로자가 죽음으로 내몰린 것도 빨리 빨리가 불러온 참사다. 빨리 빨리가 대한민국 기업들이 극복해야 할 대표적 리스크로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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