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글로벌 초우량 기업들의 CEO들은 자신들에게 누구와 같이 살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문제를 심각하게 던지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풍미하던 시대 기업의 입장에서 당연히 같이 살 가족 리스트에는 주주와 경영진만 내집단으로 포함되어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가족 외집단 맴버였다. 경영진과 주주만 소위 핵사였다. 심지어 고객도 말로는 가족인 것처럼 광고를 하지만 당연히 진짜 가족이 아니었다. 주주와 고객이 충돌하는 상황이 도래한 기업 분쟁의 사례를 조사해보면 자명해진다. 경영진들은 항상 대주주를 자신의 가족으로 섬겼다.
누구와 같이 가족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가장 핫하게 던지는 사람은 요즈음 뜨고 있는 블랙록의 CEO Larry Fink다.
블랙록은 뱅가드, SSGA와 더블어 글로벌 3대 자산운용사이다. 이들 중 규모로 따지면 가장 크다. 블랙록이 자신의 지분으로 표결에 참여한 한국기업의 숫자가 2019년 12개사에서 2020년 27개사로 늘었다. 공시대상인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한국기업 숫자도 11개다 (NC소프트, KB금융, 신한주주, 포스코, 카카오, HLB, 삼성전자, KT&G, 삼성앤지니어링, 삼성SDA, 현대건설기계). 블랙록이 ESG를 무기삼아 누구와 같이 살 것인가를 질문하고 여기에 가족의 맴버로 반드시 포함시키도록 강제하는 대상은 지구다. 블랙록은 탄소절감, 재생에너지 사용, 지구온난화 방지를 경영지표에 포함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포함하지 않으면 경영진에게 책임을 물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경영진 신상변동은 기업에게는 가장 큰 리스크다. 한국 기업들이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바로 이 리스크 때문이다.
한 때 유행한 "우리 아빠는 지구를 구해요"라는 광고가 뜬 적이 있는데 실제 글로벌에서 지구를 구하는 전사를 자청한 회사가 블랙록이고 이 회사의 CEO가 래리 핑크이다.
블랙록이 자청한 지구 구하기 운동은 기업들이 자신이 속한 환경을 이해하는데 생태계(Ecosystem)으로 보고 이 생태계에서 누구와 같이 살고 있는지와 앞으로 살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이 질문 운동을 통해서 지구가 중요한 가족 맴버라는 사실을 찾아낸 것이다.
하지만 이 기업생태계에 포함될 가족이 지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 생태계 숨겨진 구성원이 누구인지는 기업이 가치를 창출하는 체인을 추적해보면 드러난다. 어떤 기업이든 가치체인의 중간을 담당하고 있어서 가족이 누구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치체인의 전방과 후방을 살펴야 한다. 제조업일 경우 후방은 자신에게 원료를 납품하는 협력업체와 이 협력업체가 자원을 획득하는 자연이 포함되어 있다. 가치체인의 전방을 맡고 있는 구성원은 제품을 사주는 직접 고객, 고객이 만들어내는 제품을 소비하는 마지막 소비자들이 포함된다. 당연히 경쟁사도 포함되어 있고 회사의 비정규직, 사회에서 주목을 못받고 있는 여성, 장애인, 이민가족도 있다.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공동체가 전방 구성원들이 모인 종착점이다. 여기에 한 기업의 경계 안을 살펴보면 가치체인에 대한 의사결정의 원점을 구성하는 경영진이 있는데 종업원은 진정한 가족 맴버에 빠져 있다.
기업을 생태계로 보는 관점에서는 가치체인의 어떤 한 지점을 구성하는 중요한 맴버들을 모두 가족으로 본다. 기업을 생태계로 본다는 것은 이들과의 가족 관계에 대한 재정립이다. 누구와 같이 살 것인지의 질문을 던지면 기업 생태계의 관점을 가진 경영자는 이들 모두를 포함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후방을 구성하는 자연과는 소유하고 착취하는 관계에서 공존하는 파트너로, 전방에 포진한 경쟁사를 포함한 사회와는 경쟁하는 관계에서 공생하는 파트너로, 중심에 있는 경영진과 종업원들과는 생존을 넘어 공영하는 파트너로 동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 생태계의 관점에서 제대로 경영하는 경영자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어떻게 지속가능한 이윤을 창출할까? 답은 더 높은 곳에 이들이 마음놓고 뛰어놀 수 있는 기울어지지 않은 평평한 운동장을 기업이 비즈니스를 통해 혁신해 낼 수 있는지의 문제다.
누구와 같이 살 것인지의 문제는 이들 생태계의 또 다른 파트너인 자연, 사회, 구성원을 자신들의 이방인으로 취급하기보다 이들의 아픔을 환대하고 이들과 더불어 공존, 공생, 공영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이 가진 아픔에 공감하고 이 문제를 같이 해결하는 파트너로 같이 사는 삶을 추구하기 위해 지금까지 해왔던 경영을 혁신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경영하는 기업을 생태계로 이해하는 CEO가 비즈니스를 하는 방식은 절대적 혁신을 통해서이다. 자신의 생태계를 구성하는 파트너들과 함께 지금보다 더 높은 곳에 공존, 공생, 공영을 위한 더 평평한 공의의 운동장을 만드는 혁신이 절대적 혁신이다. 이들을 지구와 사회를 자신의 생태계의 가족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비즈니스를 혁신해서 이런 공의의 운동장을 만든다. 이런 기업들을 21세기의 대미를 장식할 공의기업(Righteous Company)이라고 부른다.
블랙록의 래리 핑크가 시도하고 있는 일이 바로 ESG를 무기로 공의기업의 숫자를 늘려보겠다는 거대한 야심을 표명한 것이다. 공의의 운동장은 형평, 정의, 공정이 실행될 수 있는 기반을 의미한다. 형평, 정의, 공정이 실행되지 않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리더가 자신의 단기적 이득에 눈이 어두어 정의가 실행되는 기반인 공의의 운동장 개념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의의 운동장을 위해 정치가가 아닌 기업들이 나설 것을 촉구한 것이다.
래리 핑크가 기업에 보낸 서한의 메시지를 지구를 구하지 못하면 기업 CEO가 해고될 수 있는 리스크의 메시지로 이해하는 기업들은 아직도 가족의 맴버에 경영진만을 고려하고 있는 진짜 리스크를 가진 회사들이다. 이런 회사들이 시대적 메시지의 전개를 이해하지 못해 스스로가 자폭을 위한 폭탄을 품고 경영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회사들이다. 이런 회사의 경영진들은 래리 핑크에 의해 해고 되기 전에 공진화의 생태계를 각성한 고객과 사회공동체의 구성원들에 의해 먼저 퇴출될 것이다.
초연결 디지털 시대의 초우량기업의 본질은 환경이 공진화 하는 생태계라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경영을 통해 혁신하는 것이다. 공진화 하는 기업 생태계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것을 구현하기 위해 비즈니스를 혁신하는 공의 기업의 광고모토는 "우리 부모님이 다니는 회사는 지구도 구하고, 사회도 구하고, 종업원도 살려낸대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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