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특정한 성별, 특정한 재능, 특정한 외모, 뛰어난 머리, 부유한 부모 및에서 태어난 것은 다 운명이다. 이런 운명은 신이 뽑아 준 제비 뽑기의 결과이다. 하지만 이런 제비 뽑기는 삶의 시작이고 이곳에서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운명을 개척해간다. 운명(運命)의 運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바뀐다는 뜻이다. 운명은 죽는 순간까지 우리의 선택과 노력에 의해서 바뀐다. 결국 삶이란 죽는 순간까지 운명을 더 낫게 바꾸려는 노력이다. 죽음에 이르러 더 이상 운명을 바꿀 수 없는 상태를 칭해 숙명(宿命)이라고 한다. 숙명의 宿은 잠잘 숙이다. 죽는 순간 남겨진 숙명이 다른 사람에 의해 다시 부활되지 않는 한 숙명은 죽음에 직면해서 살아온 것에 대한 최종 정산이다.

영어에서도 이런 의미를 반영해 운명은 Fate이고 숙명은 Destiny이고 운명에서 숙명에 이르는 여정은 Pathway다.

정산했을 때 많은 유산을 남기는 사람도 있고 유산을 못남기고 운명의 시작점에 부모에게 받았던 것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한 삶을 살기도 한다. 이런 차이는 운명에서 숙명으로 이르는 여정에서 어떤 소명을 만나는지에 의해서 결정된다. 소명(召命)은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 즉 목적을 주체적으로 각성해서 이 각성이 나에게 부름(Calling)의 형태로 스파크를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소명을 각성한 사람들은 숙명의 순간에 많은 유산을 남길 것이고 소명의 부름을 듣지 못하고 그냥 열심히만 산 사람은 출생과 동시 운명의 시작점에서 부모가 물려준 잔고를 본전치기하는 것도 힘든 삶을 산다. 세상은 끊임 없이 변화해가며 길을 어지럽혀 운명이 길을 잃게 만든다.

소명의 부름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내면에서 생기는 것일까?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둘 간의 협업이다. 협업이지만 내면의 부름이 더 큰 역할을 수행한다.

소명의 부름을 듣는 것을 가장 잘 묘사하는 비유가 즐탁동시(喞啄同時)다. 즐탁동시는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 나오기 위해서 안에서 어미 닭에게 신호를 보내면 어미 닭은 이 소리를 듣고 밖에서 그 소리가 나는 부분을 같이 쪼게 되면 결국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온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병아리는 깨달음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수행자이고 어미 닭은 수행자에게 깨우침을 주는 멘토이다. 새끼와 어미 닭이 동시에 알을 쪼고 있지만 그렇다고 어미가 새끼를 나오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미는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는데 작은 도움을 줄 뿐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병아리이다. 어미 닭은 병아리가 알을 쪼는 소리를 세심하게 듣고 있다가 도움을 준다. 병아리가 신호를 보내기 전에 어미 닭이 알을 쪼는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어미가 급한 마음에 먼저 알을 깨면 병아리는 죽게 된다.

운명의 알 속에서 병아리로 열심히 살다보면 알이 몸에 비해 작아지게 되고 이때 병아리는 부리로 쪼아 균열의 조짐을 만든다. 이 소리를 듣고 맨토들이 나타나서 도와준다. 소명을 찾는 길에서 균열의 주체는 병아리이고 어미닭은 산파일 뿐이다. 소명은 알이 깨어지는 균열을 통해 나타난다. 소명은 병아리의 치열한 균열을 만드는 노력과 어미닭의 협업이 만들어낸 각성사건이다.

병아리가 자신의 범위에서 측은하게 열심히 살다보면 균열이 생기고 이때 맨토가 나타나서 불쌍한 병아리를 위해 소명을 알려준다. 각성사건은 항상 병아리가 먼저 시작해서 발생하는 자기조직적 방식으로 발현된다. 평생 부모의 온실 속에서 사는 사람에게 이런 소명이 들릴리가 없다. 촛불혁명이 대한민국의 각성사건으로 발현된 것도 병아리들이 시작해 자기조직 방식으로 퍼졌기 때문이다.

소명의 부름을 가장 크게 천둥소리처럼 듣는 사람들은 태어날 때 신이 대신 제비 뽑기로 뽑아준 외모, 머리, 재능, 성별, 부유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행운 등에 대해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이런 행운을 타고 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이런 운을 어떻게 나눌까를 고민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천둥소리로 소명의 부름을 듣는다. 불운한 사람들에 대해 긍휼감을 가지고 이것을 소명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죽는 순간 숙명적으로 많은 유산을 남기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