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에서 HR을 오랫동안 하시다 우리나라 굴지 회사에서도 HR임원으로도 일을 하셨던 분과 HR 컨퍼런스에서 만나 차를 마시다 이분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구글에 합격한 신입사원이, 아마존, MS, IBM에 같이 합격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어떨까? 삼전에 합격한 사람이, 현대차에도 합격하고, LG, SK, CJ, 신한에도 합격할 수 있을까?

이분은 미국에서는 가능성이 떨어지지만 한국에서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답했다. 나도 주변에 우리나라 대기업 여러 곳에 붙고 어디를 갈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젊은이들을 만난적이 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핵심인재의 정의는 같다.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에 얼마나 몰입하는지와 맡게 될 직무에 대한 잠재적 역량이 얼마나 큰지이다. 이 두 차원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가진 인재가 핵심인재다.

그렇다면 같은 핵심인재에 대한 개념을 운용하며 미국 기업에서는 희박한 일이 왜 한국 기업에서는 벌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봤다.

겉으로 보기에 이 문제는 인재선발의 타당도에 대한 도전처럼 보인다. 타당도란 핵심인재 선발에 사용되는 각종 시험과 선발절차가 측정하려고 의도한 것을 제대로 측정하고 있는지의 문제다. 예를 들어 영어 말하기 능력을 보는데 영어 문법 시험지를 만들어서 선발했다면 타당도는 떨어진다. 마찬가지다. 핵심인재의 두 차원인 가치에 대한 몰입과 역량에 대한 잠재력이 모두 높은 점수로 뽑혀 들어온 인재가 실제 회사에 들어와 회사의 가치에도 몰입하고 역량도 발휘해서 핵심인재로 크는지가 타당도이다.

글로벌과 한국기업에 HR담당으로 근무했던 이분의 전언에 의하면 역량에 대한 잠재력을 찾아내는 타당도에서도 차이가 있겠지만 회사의 가치에 대해 몰입할 인재인지의 타당도에서는 한국기업과 글로벌 기업에서 큰 차이를 보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국기업에서 이야기하는 가치는 홈페이지에만 존재하는 가치이고 이런 보여주기 위한 가치는 몇 일밤의 자소서와 인터뷰 연습을 통해 회사에 맞춰서 누구든 있는 것처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또한 본인이 근무했던 회사에서도 HR 전문가 중 가장 큰 인력 비중을 차지하는 전문가는 충원전문가였고 인원만해도 천명을 넘었다고 전했다. 실제 이런 전문가들이 송곳검증을 거치기 때문에 회사가 요구하는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이 연습이나 자소서 대필을 통해 이런 검증을 통과하기가 힘들다고 전했다.

이 문제는 겉으로 보기에는 인재선발의 타당도 문제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신뢰도의 문제이다. 신뢰도란 인재가 회사가 몰입하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측정했을 때 일관된 점수를 보이는지의 문제다. 총을 여러 발 쏘았을 때 탄착군이 어떤 특정한 지점에 모여지는지의 문제다. 어떤 인재를 선발하는데 5명의 선발담당자가 독립적으로 평가했을 때 이 다섯명이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지의 문제다. 매번 다섯 명의 담당자가 다른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에 결국 평균점수를 쓴다면 이 기업은 인재선발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기업이다.

신뢰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회사가 표명하는 문화의 밈인 가치나 사명이 회사의 홈페이지에 장식으로만 존재하는 죽은 가치이기 때문이다. 실제 회사에 들어가 일하는 모습을 면밀히 살펴보면 이런 가치가 비즈니스에 녹여져 고객에게 살아있는 가치로 전달되지는 않는다.

가치는 대개는 지금 행해지고 받아들여지는 관행(Theory in Action)으로 표현되지만 본질은 이 관행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이유 (Espoused Theory)이다. 관행만 있고 이 관행에 대한 근거이유가 존재하지 않는 가치는 죽은 가치다. 근거이유가 홈페이지 존재하지만 이것과는 독립적으로 돌아가는 비지니스 관행이 있는 회사들은 살아 있는 가치가 없음에도 있는 척 연기하고 포장하는 회사들이다.

가치의 근거이유를 담당하는 것은 회사가 비즈니스를 해야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목적과 사명이다. 목적, 사명, 가치는 완전히 실현된 것이 아니라 실현시키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에 이것의 존재는 구성원들이 이 약속에 대한 믿음이 있는지로 판명된다.

결국 경영진이나 구성원 조차도 홈페이지에 약속한 사명과 목적과 가치에 따라서 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이 선발의 면접관으로 나서도 이런 가치가 있는 것처럼 연기하는 인재들에게 속아 넘어갈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실제 회사의 사명, 목적, 비전, 가치가 비즈니스를 하는 방식 속에서 발현되지 못하는 회사는 다른 회사에서 핵심인재로 뽑은 인물들을 자사에서도 핵심인재로 뽑는 우를 벗어나기 힘들다.

이런 회사의 문제는 이런 인재를 핵심인재로 선발한 후에 더 크게 발생한다. 인재가 회사로 들어온 후 이들 인재를 회사의 가치와 정렬시키는데 엄청난 시간과 자원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선발단계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비극이다. 실제 들어온 인재들도 회사가 주장하는 가치와 실제 통용되는 가치의 간극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직한다. 이직할 개연성이 있는 인재는 실제 역량이 뛰어나 어디든 갈 수 있는 인재들이다. 결국 인재선발은 밑빠진 독에 물붓는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맥락에서 세종의 인재선발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왜냐하면 세종시대는 자타가 공인하는 인재의 르네상스 시대였기 때문이다. 세종은 인재를 어떻게 선발하고 등용했기 때문에 조선의 다른 임금으로부터 차별화된 인재의 르네상스를 구현할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세종이 사용했던 원리와 글로벌 기업에서 핵심인재를 선발 육성하는 방법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세종은 어느 임금보다 자신이 추구하는 사명과 이 사명에 대한 믿음이 강한 왕이었다. 세종의 사명은 생생지락이다. "백성이 농사와 생업에 몰입해가며 이 생업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나라"가 생생지락이 실현된 국가이다.

세종은 생생지락을 위해 최적화된 품성과 역량이 있는 인재를 핵심인재로 규정했다. 이런 핵심인재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심지어는 과거시험 문제로도 출제했다. 생생지락의 사명에 동참하고 이것을 실현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인재는 출신성분, 정치적 입장을 구별하지 않고 등용해서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부여했다. 설사 단점이 있어도 생생지락을 실현하는 업적을 쌓아서 이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사명에 몰입하고 이것을 달성하기 위한 역량을 기르는 공부의 끈을 놓치지 않는 인재들은 중임시켜가며 오랜 기간에 걸쳐 믿고 맡겼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재를 선발해서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능력을 기르는 애자일한 인재선발과 육성을 넘어서 시스템적인 인재육성의 접근법도 사용했다. 인재대학인 집현전을 만들고, 이곳의 차별화된 커리큘럼인 경연을 도입해서 창의적 솔루션을 내는 훈련을 시켰다. 모든 핵심인재는 필수과목인 치평요람을 기본적 공부하게 해서 성현들의 리더십을 현대적으로 부활시키도록 했다.

세종시대는 세종의 생생지락에 대한 믿음에 동의하고 이것을 구현하는 역량에 대한 공부에 뜻이 있는 인재들은 신분고하와 출신성분을 넘어 모두 핵심인재 대우를 받았다. 세종시대는 백성들도 생생지락을 구가했지만 인재들도 전문가로 생생지락할 수 있는 놀이터였다.

국가던, 기업이던, 개인이든 핵심인재의 충분조건은 자신이 만들기로 약속하는 미래의 특정한 가치에 대한 믿음의 살아 있는 나침반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다. 살아서 작동하는 가치에 대한 살아 있는 믿음이 없는 회사는 설사 선발 담당자가 수천명이어도 회사에 적합한 핵심인재를 선발할 수 없다. 설사 수십억을 들여 핵심인재를 영입해도 이들을 지켜낼 방도가 없다. 울타리가 되어주는 회사의 사명과 목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종은 지금 우리가 당장 무엇을 부활시켜야 하는지 핵심인재에 대한 오래된 새길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