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에게 "세월 참 빠르다"라는 말을 들었다면 이분의 나이는 얼마 정도일까? 노인일까? 젊은이일까? 여러분도 이분이 젊은이가 아니라는 사실은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얼마 살지 않은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가 세상 참 빠르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삶을 되돌아 봤을 때 자신의 경험한 것을 중심으로 연결하여 생각하고 경험이 없이 지나간 시간들을 스킵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체험한 시간을 생각하면 절대적 시간의 대부분은 빠르게 흘러간 것이다.

아이였을 때는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동안 채워야 할 새로운 일들이 넘쳐서 하루가 몇 년처럼 느껴진다.

물리적이고 기계적으로 주어지는 시간이 아닌 체험된 주관적 시간에 대한 사유는 사실 아인쉬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 촉발된 것으로 본다. 우리가 열차를 타고 어떤 대상을 응시하고 있다면 이 대상은 고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내 지점 앞에 도달할 때까지 서서히 다가오지만 이 사물의 지점을 통과한 순간 멈춰섰다가 다시 쏜살같이 멀어진다. 우리의 삶이 시간괘도를 여행하는 기차를 타고 있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항상 미래는 서서히 다가오고 순간의 현재를 경험한 후 과거는 쏜살같이 사라져버린다. 우리가 어떤 사물에 대해 응시하고 있을 때 느끼는 체험된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길이가 같지 않다.

그림은 시간의 상대성 원리를 체험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가운데 점에 눈을 고정하고 미래를 향해서 달린다고 생각하고 점 쪽으로 몸을 가까히 가보라. 반대로 점 앞으로 다가갔다가 과거로 뒷걸음질 친다고 생각하고 뒷쪽으로 몸을 움직여보라. 미래를 향해 달려갈 때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고 과거로 뒷걸음질칠 때는 시계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느낄 것이다. 미래를 향해서 달려가는 아이들에게는 하루가 느린느린 가는 것처럼 느껴지고 노인들에게는 쏜살같이 달려가는 것처럼 느끼는 원리다.

문제는 이런 시간의 착시현상이 삶에 대한 태도에도 그대로 반영된다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가 같은 것을 놓고 서로 치고박고 싸우는 이유도 시간에 대한 상대성에 대한 이해부족 때문에 생긴 것이다. 자신이 경험한 시간을 기반으로 상대를 이해하는 시간의 편견이 이들을 진보나 보수로 편향시킨다. 진보는 앞으로 올 찬연한 미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고 보수는 따뜻했던 과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따뜻했던 과거를 중심으로 기억하는 보수의 입장에서 진보는 미래라는 명분으로 지킬 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무기는 자신이 경험한 소중한 과거를 기반으로 한 잔소리다. 보수의 입장에서 보면 진보는 실체없는 말만 많은 어린 아이들이다. 진보의 입장에서는 보수는 이미 기득권을 많이 챙긴 욕심많은 잔소리꾼이다.

역사의 승자는 누구일까?

진보일까?

보수일까?

승자는 시점이 미래에 있는 진보도 아니고 시점이 과거에 있는 보수도 아니다. 과거와 미래를 모두 현재로 가져오는데 성공한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었다. 과거는 그대로 놔두면 기억 속에 들어 있다가 사라진다. 과거가 살아나는 것은 온고지신의 형태로 현재로 의미있게 부활할 수 있을 때이다. 잊혀질 운명의 과거자체는 실체가 없다. 미래도 마찬가지다. 남들을 따라서 미래를 따라간다고 자신의 미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미래를 실현시키는 사람은 미래보다 먼저 미래로 가서 미래의 실체를 현재로 데려오는데 성공하는 사람들이다. 미래에 실현시켜야 할 열매를 현재로 가져와 그 열매 속의 씨앗을 찾아서 현재의 토양에 씨앗으로 발아시키고 이것을 과수나무로 키운 노고를 감내한 사람들만 미래를 만난다.

진보와 보수가 역사에서 실패의 수레바퀴를 돌릴 수 밖에 없는 것은 실체없는 미래와 과거에 천착하기 때문이다. 현재를 잃은 사람들은 모두 가짜 보수이고 가짜 진보이다. 과거를 부활시켜 오래된 새길을 만들어내고 미래를 현재로 가져와 현재 이 길을 걷게 만든 사람들만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 시간 상에서 실체가 있는 것은 현재 뿐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만 진보 보수가 빠져 있는 시간의 수렁을 벗어난다. 이들이 이런 시간의 편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과거를 부활시켜 새로운 토양을 만들어내고 미래의 씨앗을 현재로 가져와서 현재의 토양에 심고 가꾸는 지단함을 감내했기 때문이다. 현재를 이해하는 사람들만이 진짜 보수이고 진짜 진보이고 진짜 정치가들이다.

제대로 채워 멈춰 세운 현재만이 역사를 만든다. 미래의 씨줄과 과거의 날줄을 소환해 현재의 태피스트리를 엮어냈기 때문이다. 나이가 아무리 젊어도 시각이 과거에 고정되어 있으면 젊은 꼰데다. 나이가 아무리 있어도 아직도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현재로 가져오기 위해 땀흘리는 사람은 백발청춘이다.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은 시간의 편견에서 벗어나서 과거와 미래를 통해 현재의 태피스트리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미래와 과거를 통해 현재의 시간을 제대로 충실하게 채운 사람들이다.

오늘 이 시간만은 시간의 편견에 사로잡혀 가짜 진보 가짜 보수의 밥그릇 싸움에 편드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다짐해보자. 오늘 하루만이라도 제대로 된 현재를 체험함을 통해 시간을 멈춰 세우는 기적을 실험해보자. 시간에 대해 공정한 사람이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