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까지 해온 사랑을 추적해보면 부끄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세상에 참사랑이 있다는 것을 오십이 넘은 나이에 깨달기 시작했다.

50이전에 빠졌던 대부분의 사랑은 자신에 대한 편애와 자아도취였다. 한 마디로 50이전 사랑의 역사에는 부풀려진 자아에 대한 일방적 사랑만 존재했다. 박사를 완수하고 연구자로서 괜찮은 학술지에 논문을 써온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공개적으로 내세워 사랑하고 제자들에게도 사랑해달라고 구애했다. 이것이 잘못된 사랑이라는 것을 50의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연구를 지속할 수 있게 최소한의 머리와 건강을 유전시켜준 부모가 없었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이런 결실을 위해 가열찬 노력을 가미하였지만 이런 노력을 핑게로 얻어낸 모든 성취를 온전히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기심과 욕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부모가 물려준 머리와 재능을 랜트 시킹(Rent Seeking)해가며 교수라는 타이틀에 숨어서 비교적 편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부인하기 힘들었다.

나는 남들보다 큰 키와 건장한 체격을 물려받아서 모르는 분들은 혹시 운동선수가 아닌지 취조 당하는 호사를 누린다. 50이전에는 이런 건장함과 큰 키 때문에 받는 찬사도 다 내 것으로 알고 사랑했다. 자신에 대한 편애로 명백히 부모가 물려준 것을 내 것으로 편취하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자신에 대한 편애는 약점과 잘못을 숨기고 조그만 것이라도 성취가 있으면 과장하고 꾸미는 나르시스트의 사랑을 길렀다.

50이 넘은 어느 날 부모가 유전적으로 물려준 것들 재정적으로 도와준 것들 다 빼고 온전히 고유한 내 것으로 주장해가며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를 생각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황망하게도 내 것으로 고유하게 주장할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각성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50이 넘으니 부모가 물려준 것들의 자산도 서서히 빠지기 시작했다. 치솟았던 자신감도 체력도 거품처럼 빠지기 시작했다.

나이 50이 되어서야 자신이 온전하게 만들어 놓은 자신에 관한 것이 없다면 자신에 대한 사랑은 모두 거품이고 짝퉁이고 자기편애(나르시즘)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에 대한 아픔일지라도 자신만의 온전한 것에 대한 사랑만이 진짜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다.

50이 넘어서서야 자식과 배우자에 대한 참 사랑도 가족적, 혈연적, 육체적 욕망을 벗어버리고 이들이 고유한 모습으로 서있는 것을 응원하고 지지할 때 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도 알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런 깨달음 때문에 쓰게 된 글이 "나이 오십이 되어 깨달은 사실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