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에 나오는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말은 사람들이 종종 지피지기 백전백승 아니면 백전불패로 알고 있지만 백전불태가 맞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이 말은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채용되어 손자병법을 상대와 싸워서 이기는 술수로 전락시켰다. 손자병법의 핵심은 전략이 품고 있는 전략적 의도이다. 싸워서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싸워서 이겨야하는지에 대한 의도와 이 의도에 정렬된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손자병법의 본질이다. 손자병법에서는 선승구전(先勝求戰)을 최고의 병법으로 생각한다. 먼저 이겨놓고 싸우는 방법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진정으로 이기는 것은 전략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략의 선한 의도에 의해서 결정된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명분에서 이기는 싸움이 있을 때만 싸우지만 하수는 싸움에서 이겨놓고 명분을 찾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손자병법을 잘못 이해한 친군부세력들이 성공한 쿠테타는 단죄할 수 없다는 논리로까지 비약시켰다. 전략을 승리와 패망의 도구로 사용하는 결과중심주의가 극단적으로 잘못된 경우였다.

전략에서 의도가 사라지니 사람들은 전략을 단순히 전쟁에서 이기는 수단으로 치부하기 시작했다. 손자병법에 표현된 말을 바꿔 백전백승이나 백전불패니라는 말을 만들어낸 것도 다 이들 신자유주의를 등에 엎고 기세를 부리던 결과중심주의자들이다. 이들의 왜곡된 생각이 손자병법의 원어까지 교묘하게 바꿔치기한 것이다.

따지고보면 지피지기 백전불태는 전쟁전략에서보다는 소통의 방식에서 더 유용한 전략이다. 흔히 리더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정해놓고 부하들을 말로 제압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오해하고 있다. 리더가 말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리더를 말을 많이 하기 위해 부하의 말을 끊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고 오해하고도 한다.

하지만 뛰어난 소통전략을 가진 사람들은 부하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할 때까지 자신의 의견을 아끼는 사람들이다. 부하의 의도가 정확하게 파악이 되어야 이 의도에 자신의 의도를 끼워넣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소통에 능수능란한 리더는 말로 싸우거나 부하가 자신의 의도를 숨기는 일없이 둘 사이의 공동의 내러티브를 만드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부하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말보다는 주로 듣는 역할에 치중한다. 부하의 의도와 자신의 의도가 정면으로 충돌할 경우에도 리더는 말로 부하를 제압하기보다는 자신의 행동과 자신의 의도와 정렬된 성과로 자신의 입장을 표현한다. 제대로 된 소통전략을 가진 리더들은 최대한 말하는 것을 아낀다. 최소한 자신의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소통의 문제는 실행의 문제로 연결된다. 부하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와 리더가 생각하는 바가 씨줄과 날줄로 결합되어 공동의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을 때만 소통에서 합의된 일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몰입한다. 리더의 의도가 강제된 일에 부하를 동원하기 위해서는 부하의 비자발성을 넘어설 수 있는 인센티브나 돈이 동원되어야 한다. 문제는 부하가 자신의 생각은 다른데 돈 때문에 일할 경우 돈 받은 만큼만 일하지 전심전력을 다해서 일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모두가 지는 게임이다.

소통은 부하들의 의도에 리더의 의도를 결합시켜 공동의 태피스트리(맥락)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제대로된 태피스트리를 만들기 위해서 먼저 부하의 생각을 듣고 이해하여 부하들이 일에 대한 지도를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 어떤 리더십 책을 보아도 말많이 하는 리더를 높게 평가하는 책은 없다. 리더가 먼저 말을 하거나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이미 부하와의 소통전쟁에서 패배한 것이다.

많은 리더십 책에서 제대로된 소통의 기법으로 적극적 경청이나 공감적 경청을 제시한다. 현대적 리더라면 이런 기초적 경청 수준을 넘어서서 부하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맥락을 만들어내는 맥락적 경청의 기술을 익혀야할 것으로 보인다. 손자병법은 남들의 의도를 먼저 알고 나의 의도를 제시할 수 있다면 소통의 위태로워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조언한다. 손자병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최고의 경청전략은 맥락적 경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