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회사의 C Level 리더십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프로그램 참여자들에게 자신의 씨줄이 담긴 미래를 현금화할 수 있는 약속어음을 설계하고 구성원들에게 이 약속어음을 팔 수 있는지를 상상적으로 실험하도록 했다. 리더로서 약속어음에 담길 미래의 내용과 구성원들에게 동원할 수 있는 신뢰자본의 현실적 크기를 가늠해보는 훈련이다.

리더나 경영자는 미래에 대한 약속을 파는 사람들이다. 구성원이 이 약속을 굳게 믿고 있다면 담보가 필요없는 신뢰의 은행잔고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약속어음을 통해 발행된 신뢰 잔고는 리더가 약속한 미래를 실행하는데 필요한 현금에 대한 플러스 차입금이 된다. 신뢰 잔고를 구성하는 차입금은 상대가 반환을 요구하지 않는한 담보없이 기간을 정하지 않고 쓸 수 있는 현금과 같다.

구성원은 리더가 약속한 미래가 실현되었을 때 이 약속어음을 현금으로 실현한다.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을 경우 약속어음은 부도난 상태이다. 부도가 예상되면 구성원들은 약속어음을 기간이 도래하지 않았음에도 현금화를 시도한다. 이런 사태가 번지면 리더의 은행은 파산한다.

이 신뢰잔고는 리더가 약속한 미래를 실현시키는 프로젝트에 현금처럼 동원된다. 미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리더와 구성원간 N번의 연이은 거래가 성공적으로 집행되어야 한다. 리더가 약속어음으로 만들어낸 신뢰잔고가 없다면 이 모든 거래에 요구되는 돈을 현금으로 지불되어야 한다. 거래자체에 약정된 금액도 현금으로 제공해야 하지만 거래자체를 성사시키기 위한 거래비용도 모두 현금으로 제공해야 한다. 거래와 거래를 연결시키는데 사용되는 거래비용은 천문학적이다. 이 천문학적 비용도 모두 현금으로 결제되어야 한다. 구성원에게 약속한 미래를 어음으로 발행했을 때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이 약속어음에 사인하지 않는다면 리더가 미래를 위한 프로젝트를 성사시킬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 된다. 이런 리더가 미래 실현에 요구되는 장기적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이 모든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필요한 금액을 모두 현금으로 조달할 능력이 있는 리더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신에 가깝다. 워렌버핏도 빌게이츠도 베조스도 이 정도의 금액을 현금으로 제공하지는 못한다. 자신이 미래를 팔아 약속어음을 발행할 능력이 안되는 리더는 아무리 능력과 재능이 뛰어나도 자신이 가진 현금의 범위내에서 하는 단발성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이런 리더 밑에 있는 구성원들은 모두 현금 박치기 단발성 프로젝트에 동원되고 결국 여기에 동원된 리더와 구성원들은 시지프스 돌굴리기 직장생활을 벗어나지 못한다. 리더가 회사가 책정한 월급이라는 현금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월급장이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사 이런 리더밑에서 1억을 벌어도 일억원짜리 월급장이에 불과할 뿐이다.

약속어음이 배서되지 못하는 회사는 지금 아무리 현금을 많이 쌓아놓고 있어도 이들의 미래는 부도가 날 개연성이 높다. 이런 리더 밑에서 일하는 구성원의 미래도 부도난 인생에 가깝다.

리더 뿐 아니라 회사도 구성원에게 이런 미래에 대한 약속어음을 발행하여 이 차입금을 현금화하여 필요한 거래비용에 충당한다. 구성원이 이 약속어음에 배서하는 이유는 회사의 비전과 사명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이 믿음에 대한 신뢰 잔고가 없는 회사는 회사에서 수행하는 모든 일에 현금으로 결제해야 한다. 구성원이 현금으로 결제되는 것이 아님에도 회사에 몰입하는 이유는 이 약속어음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이 약속어음이 결제될 것이라는 믿음이 흔들리면 약속어음의 기간이 도래되지 않았음에도 구성원들은 현금으로 결제를 요구한다.

지난해와 올해 회사에서 성과급에 대해 논란이 벌어진 회사는 구성원들이 회사가 발행한 약속어음에 대해 믿음을 상실한 경우이다. 성과급에 대한 논란자체가 이 약속어음에 대한 현금결제를 요구하는 행위이다. 이런 성과급 논란은 성과급 문제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본질이 성과급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구성원들이 회사가 발행한 약속어음에 대한 신뢰를 잃은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젊은이들 사이에 번지는 공정성 이슈도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이 공정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정치가나 국가가 약속한 미래의 약속어음이 제대로 결제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이 표출된 것이다. 회사든, 사회든, 국가든 리더가 약속한 미래에 대해 신뢰를 주지 못한다면 공정성 문제는 불거질 것이다. 공정성에 대한 이슈는 부도난 미래에게 빰을 맞고 엉뚱한 곳에 분풀이하는 것이다. 공정성의 이슈를 제도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조직단위든 공정성에 대해 이슈가 제기되는 것의 본질은 리더가 발행한 약속어음이 부도가 날 것이라는 불안감이 표출된 것이다.

나는 리더로서 충분한 은행잔고를 가지고 있을까? 미래에 대해 약속어음을 발행해서 구성원들에게 팔수 있는가? 약속어음으로 부족한 잔고를 채울 수 있는가? 내가 강매하지 않았음에도 구성원들이 이 약속어음에 자발적으로 배서할 것인가? 이 약속를 실현시킬 수 있는가? 어떤 경우가 닥쳐도 내가 발행한 약속어음의 부도를 막아낼 수 있을까?

만약에 구성원들이 리더가 발행한 약속어음에 자발적으로 배서한다면 이 리더는 미래의 프로젝트를 위해 Financing에 제대로 성공한 것이다. 리더가 믿음을 잃지 않는다면 구성원들은 중간에 약속어음을 현금화해달라고 요청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리더들에게는 약속에 대한 신뢰가 핵심이다. 약속어음에 대한 신뢰를 통해 리더가 현실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월급의 범위를 넘어서 일할 수 있는 열정적인 구성원을 확보한다. 정치가를 믿지 않는 이유는 이들은 자신들이 발행한 미래의 약속어음을 밥먹듯이 부도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리더가 미래를 만들어내는 본질은 현금이 아니라 약속어음이다. 현금으로는 단기적으로 상대의 몸을 살 수 있지만 마음까지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장기간 동안 구성원의 마음까지 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약속어음이다. 이 약속어음에 구성원들이 요구하는 유일한 담보는 리더가 존재이유인 목적에 대해 보여준 진정성에 대한 증명이다.

리더가 자신이 약속한 미래의 믿음에 부도만 내지 않는다면 이 리더는 실제 미래를 현실화 해서 더 높은 곳에 운동장을 만들어내는 일에 성공할 것이다. 미래의 유산을 남긴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