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이 넘치는 대한민국
인간에게는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향유하고 있는 세상의 문명도
누군가가 리더로써의 삶을 선택한 결과이다.
- 저자미상 -
진정성 없는 스킬과 스타일중심의 리더십과 단기 실적 중심의 경쟁으로 생긴 부의 양극화 문제는 국가의 부패를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되어 왔다. 예를 들어 2011년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OECD 34개 회원국 중 경제성장률은 2위, 국내총생산 (GDP)는 10위로 상위권이지만, 국민 1인당 GDP는 34개 회원국 중 26위, 소득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20위, 하위층 빈곤율은 28위로 하위권이다. 근로시간은 연평균 2193시간으로 회원국 중 가장 길었다.
한편 베를린에 본부가 있는 국제투명성기구가 지난 12월 1일에 발표한 2011년 한국의 부패지수 (CPI)는 39위에서 43위로 네 단계나 하락했다. 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도 꼴찌 수준인 27위이다. 이 수치는 2008년 이후로 계속 하락세를 보였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는 횡령, 배임, 회계부정을 한 대기업 총수들을 솜방망이 처벌로 계속 풀어 주고 사면복권 시켜준 것이 부패공화국을 키워왔다고 조언한다. 특히 한국의 총수들은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날 때마다 휠체어를 타 병자임을 연출하면 이를 빌미로 정부는 항상 면죄부를 줘왔다고 비난해가며 휠체어를 빌미로 면죄부를 남발하는 한국정부를 꼬집었다. 회계장부 조작으로 20년의 감옥 형을 당한 엔론의 CEO 케니 레이 이야기는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최근 번지고 있는 미국의 월가 시위에서나, 국가부채로 흔들리는 유럽국가에서의 시위, 민주화의 격동기를 겪고 있는 아랍국가의 정치적 시위, 개발도상국의 시위, 이들 시위 현수막에 공통적으로 들어간 화두의 단어는 부패척결이었다. 이런 점에서 청렴 후진국 한국의 부패문제는 화약고 수준이다.
진정성의 결여는 비단 경제계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다른 사회영역에서의 진성성의 결여는 더 심각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정치영역을 들여다보면 경제 영역은 오히려 깨끗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우리나라에서 정치영역의 리더에 대한 진정성의 부재는 전통적으로 뿌리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최근 인사청문회에서 단골로 제시되었던 논쟁도 능력은 있으나 청렴성으로 대표되는 진정성은 거의 모든 정치가들이 문제가 되었다. 대부분의 장관 후보자는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인생을 진솔하게 살아 왔는지의 진정성의 측면에서 모두 낙제점수를 받았다. ‘강부자, 고소영 정권’이라는 말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모든 정치가가 불법 재산증식, 세금탈루, 위장전입 등에서 진정성의 산을 넘지 못했다.
2009년 중앙 선데이, 동아시아연구원, 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한 파워정치인 신뢰와 영향력 조사결과를 보면 한국정치인들의 진성리더십 부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조사에서는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800명 대상으로 유력 정치인 10명이 현 정국에 미치는 영향력과 신뢰도에 대해 조사했다. 조사는 이들 정치인의 영향력과 신뢰도 각각에 대해‘전혀 없다’(0점)에서‘매우 높다’(10점) 사이의 점수를 매기도록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국 최고의 유력 정치인 10명을 뽑아 조사했지만 10명의 평균 영향력 점수가 10점 만점에 4.3점, 평균 신뢰도 점수는 3.7점으로 낙제 점수다. 또한 정부, 국회, 여당 등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도자일수록 신뢰도가 떨어져서 이들의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를 보여주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도 정치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국민의 신뢰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음도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의 극한 대립이 일상적 루틴이 되고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극에 달하고 있다. 비전과 가치에 몰입해서 정치를 하는 진정성 있는 정치인들은 가뭄이 콩 날 정도이다. 누구든 진정성 스토리를 들고 나오면 국민들을 이 사람의 정치적 기반과는 상관없이 감동해 눈물을 흘리고 열광한다.
국민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할 종교지도자들의 진정성은 더 가관이다. 최근 대형 개신교 목사들을 중심으로 한 스캔들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성직자들이 진성리더로서의 자질에 회의를 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종교지도자들은 실제로 많은 신도들에게 직접적 존경의 대상이 되고 이들이 보여주는 리더십은 신도들에게 역할모형으로 학습된다는 점에서 종교영역에서의 리더십은 사회 어떤 영역보다도 영향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훌륭한 성직자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도 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리더로 다시 태어난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혼동과 방황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찾아서 꾸준히 노력할 수 있는 것도 이들이 신도들에게 북극성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이 보여주는 일거수일투족의 바람직한 리더상은 신도들의 마음에 자리 잡게 되어 사회적 시민행동의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최근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드러난 탐욕은 진성리더십과는 거리가 먼 행동들이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켜왔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한 국가의 사회질서를 책임지는 검사 판사들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 검사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떡검, 성접대, 뇌물일 정도로 이들의 부패는 상상을 초월한다. 최근에는 비교적 깨끗할 것으로 믿었던 여검사조차도 변호사로부터 벤츠차를 제공받고 사건청탁을 들어준 사건까지 터졌다. 여검사들의 진정성도 더 이상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검사들은 부패했다. 정치검사들이 판을 치는 분위기를 반영하듯 평판도 조사에서 검사들은 정치인 다음으로 진정성이 떨어지는 집단으로 보고되었다. 전관예우로 자신의 철밥통을 서로 채워주기에 바쁜 판사들도 진정성이 떨어지는 사회적 엘리트이기는 마찬가지다. 다른 사회 영역의 엘리트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 마디로 한국 사회지도층에서는 진정성을 찾아보기란 하늘에 별 따기다. 이들을 보고 배울만한 것이 없다. 이런 사정은 한국사회가 건강한 시민사회로의 성숙하는데 많은 장애가 되고 있다. 이들은 일반 국민들이 진성리더로 태어나는 토양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아이러니컬하게 한국사회는 소위 난다 긴다 허세를 부리는 사회적 엘리트들 득세에 일반서민들이 서서히 진성리더로의 꿈을 잃어가고 있다.
진정성이 있는 사회적 엘리트의 부재로 파생되는 문제를 국가적 차원해서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가 경제적 소득수준은 어떻게라도 해서 선진국을 따라잡는다 하더라도 다른 국가들이 존경하는 성숙한 선진 시민 사회로 진입한다는 것은 요원한 문제이다. 진정성의 기미가 보이는 사회적 엘리트의 스토리가 알려지면 온 나라가 열광할 정도로 진정성에 온 국민이 목말라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진성리더십은 다음과 같이 정의해 볼 수 있다.
진성리더는 한 마디로 가슴을 뛰게 하는 ‘사명 mission’으로 구성원들을 임파워시켜 이들과 함께 ‘사명’이 현실로 구현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다. ‘사명’은 조직이나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 혹은 삶의 ‘궁극적 목적’을 이야기해준다. ‘사명’은 ‘진북 true north’에 비유되기도 한다. 자신과 조직의 ‘진북’을 찾아 떠난 여행은 리더가 가진 모든 ‘진정성’의 정수를 드러내준다. 이 리더십 여행을 통해 ‘진정성’이 몸에 밸 즈음 리더는 리더십의 만병통치약 ‘품성’을 획득한다. 진성리더는 자신의 ‘품성’을 기반으로 사명을 구현하는 일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다. 이들의 ‘선한’ 영향력은 리더십 스킬이나 스타일이 아니라 ‘품성’에서 나온다. 진성리더들은 진정성 있는 품성만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유일한 소통의 도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진성리더는 사명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품성으로 이들의 심금을 울려 구성원들과 함께 ‘차근차근’ 세상을 더 따듯하고 행복한 곳으로 바꿔나간다.
진성리더십에서는 사명을 통한 성찰과 실천을 통한 사명의 검증이 강조된다. 검증된 사명은 삶의 플롯을 구성해주고 이 플롯은 삶의 어려운 장면들과 만나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한 마디로 진성리더는 자신에게 영원히 남을 신화적 역사를 써가는 사람들이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1월 20일에 있었던 취임연설에서 “횃불은 새로운 세대에게 넘겨졌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에 응답해 많은 미국 시민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작던 크던 자신만의 신화적 스토리를 창출해서 지금의 미국을 만들었다. 지금의 한국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시대의 사명을 담을 횃불은 기존의 병들고 부패한 기득권 세력에서 새로운 진정성 넘치는 젊은 세대로 넘겨지고 있다. 역사적 전환점에서 바통을 이어 받을 젊은 세대들은 시대를 어지럽히는 피리소리에 끌리기 보단 시대의 나팔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시대의 나팔 소리는 새로운 세대의 리더들에게 다음과 같은 진정성의 복원을 요청하고 있다.
돈보다 나침반을 선택하라.
자신만의 신화적 삶의 스토리를 만들어라.
소통은 귀가 아니라 가슴에 대고 하라.
혼자 뛰기보다 동행과 같이 걸어라.
품성으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라.
신성한 차이로 족적을 남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