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11-23 10:00
[N.Learning] 전문성은 성과의 시작이지 끝은 아니다: 역량의 독재에 대한 준엄한 경고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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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은 성과의 시작이지 끝은 아니다:
역량의 독재에 대한 준엄한 경고
리비히의 물동(Liebig's Barrel)은 여러개의 나무판을 잇대어 만든 물통이다. 이 물통이 담을 수 있는 물의 양은 가장 낮은 나무에 의해서 결정된다. 물을 더 담으려면 가장 낮은 나무판을 높여줘야 한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조직은 여러 전문성들이 조직이 설정한 목적을 향해서 최적화되어 있을 때 가장 높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전문성의 수준차이가 있을 경우 조직의 성과는 가장 낮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의 성과에 의해서 결정된다. 문제는 이런 사태가 생길 때마다 오히려 조직에서는 높은 전문성을 더 높히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전문적 조직이 성공하려면 이런 전문성의 수준을 높은 수준에 맞춰서 레벨링하는 작업이 더 필수적이다.
레벨링 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높은 분야의 전문성을 더 높여서 문제를 해결하려할 때 생기는 것이 역량의 독재다. 높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역량이 조직의 더 높은 성과에 기여하지 못하는 것에 좌절감을 느끼면 자신의 높은 전문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욕망의 먹잇감이 된다. 이때부터 조직은 높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사유화되기 시작한다.
태드 윌리엄스는 보스톤 레드삭스 사유화의 장본인이다. 태드 윌리엄스는 전설적인 타자다. 평생타율이 4할대이다. 윌리엄스는 래드삭스가 자신의 타율에 의존한다는 것을 이용해서 갖은 카리스마적 전횡을 저질러가며 팀을 사유화했다. 심지어 감독이나 코치도 자기 휘하로 생각하고 이들에게 욕설도 서슴치 않았다. 팀워크가 무너지고 팀이 윌리엄스 중심으로 움직였다. 불행하게도 테드 윌리엄스가 레드삭스에서 역량의 독재를 휘두르는 동안 구단은 수월성을 상실해 한번도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다.
전문성의 독재는 스포츠나 예술분야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지만, 대학교의 교수, 병원의 의사, 교회의 목회자 등 전문적으로 관료화된 집단에서도 나타난다. 결국 기업도 다양한 전문성들이 협업을 통해서 약속한 목적을 달성하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예외는 아니다.
다양한 전문성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이 레벨링이 되었어도 이들의 지속가능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면 이런 경우는 이들이 전문성을 넘어 조직 목적을 미래를 위해 설정하는 존재우위 수준의 차별화에 실패한 경우다. 이런 기업에서는 구축한 전문성의 협업을 통해 달성해야 할 더 큰 목적에 대한 함수관계가 설정되지 못해 각자의 목표의 수준에서 부분최적화가 세워진 경우다. 각 영역의 전문성은 뛰어나도 성과가 부진해진 큰 기업들의 컨설팅을 하다보면 전형적으로 만나는 문제다. 이들의 개별적 전문성의 수준은 뛰어나지만 이 전문성들이 고객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라는 온전한 목적을 위해서 협업으로 최적화되지 못한다. 전문성을 수단으로 동원해 협업하게 하는 존재목적이라는 드라이브가 부재한 회사다.
마케팅, HR, 재무, 운영, MIS, 회계 등에서는 최고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서 All A 플러스라 하더라도 조직의 목적에 대한 약조나 믿음이 불분명한 경우는 목적을 최종적 종속변수로 최적화 시키지 못한다. 각 영역 전문성에서는 All A 플러스를 맞았어도 지속가능한 성과에서는 낙제점이다. 조직의 사명과 목적이 불분명하거나 분명해도 구성원들이 이를 위해 자신이 일하다는 믿음이 없을 경우 자신의 전문성 수준에서 개별 최적화를 벗어나지 못한다. 각자의 전문성을 무기로 역량의 독재를 휘둘러가며 조직 안에 많은 숨은 땅굴을 파고 산다.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리더로서 전문성을 발휘해서 소통, 의사결정, 동기화, 성과관리, 코칭. 변화관리에서 All A 플러스 점수를 획득해도 이 전문성을 자신이 약속한 변화를 달성하는 일에 수단으로 동원하지 못하면 리더로서의 점수는 낙제점이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부분의 경영과 관련한 변수(성과, 전문성, 리더십)는 모두 수단일 뿐이다. 수단이 아무리 중요해도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수단은 목적이라는 종속변수의 독립변수로 최적화될 때 생명력을 갖는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전문성이라는 입장에서 몸, 마음, 정신 영역에서 각각의 전문성을 분절시키지만 지속가능성의 성과를 내는 리더들의 공통점은 몸, 마음, 정신이 자신의 존재이유와 정체성이라는 더 큰 목적 위해서 온전하게 수단으로 통합되어 최적화된 경우다.
개별적 전문성은 코끼리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시각장애인들의 집합과 비슷하다. 각자의 전문성을 추구하면 추구할 수록 자신의 것만 분절적으로 이해하는 시각장애인을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이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더 큰 목적을 위해 각자의 전문성을 협업할 수 있을 때 역량의 독재에서 벗어난다.
세상에 분절되지 않고 온전한 전체로 존재하는 것은 어떤 것의 존재이유를 설명해주는 보이지 않는 목적 뿐이다. 목적은 미래에 실현될 정체성이어서 미래 목적지에 대한 통찰력이 있는 사람들만 지각한다. 존재목적을 종속변수로 설정하지 못하는 모든 전문성은 부분최적화로 종결된다. 부분최적화를 극대화하기 위해 조직에 각자의 전문성을 앞세워 땅굴을 파고 산다.
목적이라는 종속변수의 독립변수로 전략화되지 못한 전문성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전문성의 역설로 지속가능한 성과를 감소시키는 주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