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에는 퇴계선생의 진성리더로서의 면모를 연구하기 위해 도반분들과 성학십도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퇴계선생이 성학십도를 통해 후학이나 왕에게 전하고 싶은 내용이 많겠지만 진성리더십의 관점에서는 가장 부각되는 것은 사단 중의 하나인 측은지심이다. 측은지심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내재화해서 해결해가려는 긍휼감을 의미한다. 측은지심은 사랑(애욕)이라는 일반적 감정이 유교의 근간인 인과 만나서 생성된 윤리적 정서다.
희노애락애오욕이라는 오욕칠정은 일상의 사건과 만나 우리 몸이 불태워지는 일반적 감정이라면 측은지심, 수오지심, 시비지심, 겸양지심으로 일컬어지는 사단은 몸이 아니라 마음을 달구는 윤리적 정서이다. 사단은 희노애락애오욕의 감정이 인의예지와 만나서 만들어진 강렬하고 지속가능한 내재적 에너지다. 감정이 외부의 사건에 의해 공급되어 우리 몸을 달궈주는 휘발성이 강한 일시적 에너지라면 사단은 오랫동안 몸을 넘어서 우리의 마음을 달궈주는 농축된 에너지이다. 우리 마음 속에 사단이 어떻게 조합되고 정렬되고 통합되어 채워지는지가 우리 성품의 결과 무늬를 만들어낸다.
퇴계는 성리학적으로 인간은 인의예지신이라는 품성의 그릇을 가지고 태어난 것으로 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마음의 주인됨을 회복해 인의예지신이라는 그릇에 사단이 채워지지 못한 상태이다. 마음의 그릇인 품성이 빈그릇이다. 품성의 그릇이 사단으로 가득 채워진 사람들로 가득찬 세상인 선인다(善人多)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 퇴계가 꿈꿨던 사명이다.
특히 인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품성의 큰 그릇이다. 인이라는 품성의 그릇에 채워지는 측은지심은 스스로가 마음의 주인이 되어 만들어낸 자신에게 고유한 자신의 삶이 서명으로 봉인된 윤리적 정서다. 인이 품성의 그릇이라면 측은지심은 이 그릇에 담긴 품성의 내용물이다. 측은지심은 각자가 인과 사랑의 애욕을 씨줄과 날줄로 마음 속에 엮어 생성시킨 품성의 스토리이다. 선한 사람이라는 우리의 고유성은 삶 속에서 스스로가 마음의 주인이 되어 측은지심이라는 윤리적 정서를 얼마나 농축해놨는지에 달려 있다.
측은지심이 있는 사람들만 상대의 고통을 원인의 수준에서 파악해서 이것을 의롭고 지혜롭게 해결하는 혁신의 주인공이된다. 측은지심이 있는 사람들만 아픔 때문에 쓰러져 있는 자신과 상대를 치유하고 일으켜 세워서 주인으로 만들어준다. 측은지심은 자신의 아픔조차도 자신의 부분으로 생각하고 온전하게 사랑하는 사랑의 가장 숭고한 감정이다. 애욕으로 들긇는 사랑이 인과 만나 성스럽고 숭고한 형태인 측은지심을 만들어낸다.
퇴계선생이 뛰어난 점은 측은지심이라는 윤리적 정서를 삶 속에서 실천해서 사람들을 주인으로 일으켜 세운 스토리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신 아들이 아이를 낳아서 젖이 안 나와 젖동냥을 위해 노비를 보내달라고 했을 때 퇴계는 노비의 아이가 겪을 고통을 생각해서 이 요청을 거절했다. 이 사건으로 결국 손주는 세상을 떴다. 자신의 부인이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지 못했음에도 죽을 때까지 긍휼감을 가지고 보살핀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성학십도를 저술한 계기도 왕과 선비들에 대한 긍휼감 때문이었다. 퇴계는 이들도 품성의 그릇은 있지만 이 그릇을 채우지 못해 오욕칠정에 시달려사는 안타까운 사람들로 보았다. 타고난 천재이자 당신의 제자임을 스스로 자랑하고 다녔던 율곡보다 사단칠정론에 대한 논쟁으로 자신을 비판했던 기대승에게 더 긍휼감을 보였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율곡의 천재성보다는 자신의 품성을 스스로 고통스럽게 다듬고 깍아내고 있는 기대승에게 인간으로서의 애절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퇴계에게는 애욕이 인과 만나 측은지심이라는 품성으로 온전하게 인격적으로 숙성되어 있었고 이 품성은 퇴계의 일상 속에서 일관되게 영향력이 있는 감동적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선비와 왕조차 퇴계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랐던 이유였을 것이다.
희노애락애오욕이 몸이 풍기는 냄새라면 윤리적 정서인 측은지심을 포함한 사단은 품성이 풍기는 향기다.
향기가 아니라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리더를 독성이 있는 리더(Toxic Leader)라고 부른다. 리더가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Toxic Leader로 회자되는 것은 이들에게 긍휼감이 없기 때문이다. 리더가 긍휼감이 없다면 이들은 부모가 물려준 유전적 우월성만을 선택적으로 사랑하는 자기편애에 빠지게 되고 부풀려진 자기애를 채우기 위해 리더라는 직책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Toxic Leader란 긍휼감이 아니라 자기애의 감옥에 갇힌 리더다.
대한민국의 문제를 근원적이고 지혜고 의롭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긍휼함이 있는 퇴계같은 리더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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