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휴 중 Netflix를 배회하다 우연히 보기 시작한 드라마다. 사실 이 드라마에 눈이 간 것은 미국의 소설가 루이자 메이 올컷이 쓴 자전적 소설 Little Women을 드라마로 만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에 한글 제목인 <작은 아씨>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면 아마도 재산을 중심으로 사랑과 이혼 사이를 오가는 부잣집 딸들의 이야기로 짐작하고 절대로 보지 않았을 드라마다.
보다보니 원작 소설을 한국적 맥락에 맞게 다시 극본화한 한국 드라마였다. 큰 기대없이 미스테리에 끌려 앞 편을 보다가 중편에 이르러서는 졸면서 보기도 하고 그만 볼까 생각했지만 연휴 분위기에 편승해 결국 끝까지 완주했다.
생물학적 여성과 남성의 순수성을 초극대화시켜 생물학적 성별 안에서 성골 진골로 계층을 나누고 진골 성골 여성이 중심이 되거나 진골 성골 남성이 중심이 되어 상대방 성을 자신의 성에 종속시켜가며 독립적 성별 왕국을 만들어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견해를 대문자 여성주의나 대문자 남성주의라고 칭한다. 원작의 의도는 이런 대문자 남성주의에 대항한 소문자 여성들의 연대와 반란이다. 원작 Little Women이 소녀들에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 이유도 여성에 대한 생물학적 편견으로 가득찬 대문자 남성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를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문자 여성들의 삶을 선택해 투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번역한 한국드라마 <작은 아씨>에서는 심지어 부모가 두 언니가 마련해준 막내의 수학여행비를 훔쳐 필리핀으로 도망간다. 대문자주의의 발원지인 부모로부터 일말의 생물학적 지원도 기대할 수 없다. 유전적 부모와 연이 끊긴 운명적으로 작은(Little) 세 자매(Sisters)라는 맥락이 극의 설정이다.
소설에서 Little은 이런 대문자 주의를 극복하려는 소문자들의 반란이라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다. 배경이 없는 소문자 여성이나 배경이 없는 소문자 남성도 사람이라는 더 높은 존재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나, 욕망, 명예, 권력, 부를 넘어 서로 연대해 살아가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다. 작금에 목격하고 있듯이 대문자 여성과 대문자 남성 사이의 한 판 힘겨루기가 아니라 이런 범주에 포섭되지 않은 작은 (Little) 인간들이 협업으로 인간으로의 존재목적을 실현하는 세상을 꿈꾼다. 작은 사람들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차이가 더 이상 문제로 거론되지 않는 더 높은 곳에 만들어진 더 평평한 인간 세상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가장 높고 밝은 곳으로)를 실현시키기 위해 서로 연대한다.
한국 드라마로 각본된 <작은 아씨>도 이런 원작자의 메시지의 흐름을 잘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간혹 흐트러지기는 했어도 결국 소문자 여성이자 자매인 김고은 남지현 박지후가 소문자 남성인 위하주 강훈과 연대해서 현재의 대문자 세상인 정란회의 대문자 남성 후계자인 박재상과 그 부인 대문자 여성 후계자 엄지원을 극복하는 스토리다.
모든 대문자주의는 사회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차별, 편견, 갈등의 원천이다. 이들은 진골, 성골, 혹은 핵관이라는 범주를 앞세워 자신들의 대문자 등급을 정하고 여기에서 벗어난 다른 사람들을 자신들 욕망의 수단으로 종속시키고 차별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진골, 성골, 핵관 등 대문자 주의가 만들어낸 피해가 상상을 초월한다.
대문자 남성주의가 마초적 권위주의 문화나 일베스타일을 만들었다면 이들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문자 여성주의가 극단적 페미니즘이나 메갈리즘을 탄생시켰다. 이들의 극단적 성 이분법을 표로 이용하려는 정치가들 때문에 남성(국힘당을 지지하는 2, 30대 남성)과 여성(민주당을 지지하는 2, 30대 개딸 여성)은 지금도 서로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다. 한국 정치에서 이런 성별 대문자주의 싸움은 이준석류의 정치공학에서 시작되었다. 대문자주의는 국론분열의 원인이기 때문에 선거가 끝나면 반드시 큰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남성 대문자주의 설계자인 이준석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실제로 승리를 안겨준 당으로부터도 토사구팽 당하는 대문자주의의 역풍을 맞고 있다. 대문자주의로 기득권을 누리는 권력이 미래의 대문자를 열망하며 자신들의 자리를 넘보는 이준석을 그냥 놔둘리없다. 역설적으로 이들 정치적 대문자 기득권 세력이 이준석을 엮어낸 죄목도 성비위다.
이 소문자 주인공들의 스토리가 한국 일상에서 실현된다면 아마도 한국정치가들이 젊은 여성과 젊은 남성의 성을 갈라치기 해가며 성을 자기 정치를 실현하려는 도구로 편취하려는 경향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대문자 남성과 대문자 여성 간 성을 기반으로 한 대립과 투쟁을 떠나 각자가 인간으로 대우받아가며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서로 협업하는 삶이 실현되는 더 높고 더 평평한 대한민국을 소망해본다.
소설 <Little Women>의 메시지는 기득권 세력은 자신이 획득한 생물학적 유전자 복권을 토대로 진골, 성골의 사회적 감옥을 만들고 우리를 여기에 가두었다는 사실에 대한 고발이다. 소설의 원작자는 이런 대문자들이 세운 감옥으로부터 탈주해서 인간답게 나답게 살 수 있는 미래를 향한 자유의 여행을 시작하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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