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로서 새로운 치료와 치유의 장을 개척한 스캇 팩(Scott Peck)을 읽다보면 우리는 몸에 병이 나서 마음의 병이 도졌다고 믿는 경향이 있지만 대부분의 병은 마음의 상처가 남긴 흔적이 치유되지 못해 병으로 진행된 것이다.

스캇 펙은 병이란 우리가 태어나서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많은 마음의 문제들이 몸에 남긴 흔적에서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마음의 상처가 흔적을 남기고 이 흔적들이 누적되고 자라나서 암이나 우울증 등의 병으로 발현된다고 본다. 특히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었던 트라우마들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 속에서 잊혀진 것처럼 보이지만 제대로 치유되지 않고 잊혀지면 몸에 상처의 흔적을 남기고 이 상처의 흔적이 씨앗이 되어 몸에 뿌리를 내리면 암이나 우울증으로 전환된다고 본다. 암은 트라우마가 몸에 남긴 상처이고 우울증은 트라우마가 전두엽의 시냅스에 남긴 상처다.

암이나 우울증으로 전환되어 병원을 찾으면 의사는 몸 속에 암을 제거하고 우울증을 완화하는 약물치료를 통해 다시 몸의 상처를 제거한다. 몸의 상처인 암이나 머리의 상처는 외과수술과 약물치료로 완화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외과수술과 약물치료가 암이나 정신질환의 뿌리를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이 뿌리는 외과수술이 끝나고 약물치료가 끝나서 완치된 것으로 믿고 방심하고 있을 때 비슷한 사건이 마음의 상처를 다시 남기면 다시 재발한다.

외과수술과 약물치료에 의한 개선은 마음의 상처라는 뿌리가 만들어낸 잡초 중 뿌리를 남기고 잡초의 드러난 부분을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완치가 아니다. 스캇 팩은 외과수술과 약물치료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치료(Cure)라고 하고 마음의 흔적까지 전체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을 치유(Heal)이라고 규정한다. 자신과 같은 정신과 의사라면 정신과 의사의 소명은 환자의 치료를 넘어서 몸과 마음의 온전한 치유여정을 같이 해야한다고 설명한다. 대한민국에서도 환자의 고통의 뿌리를 이해하고 이들과 치유여정을 함께하는 의사를 의술을 넘어 인술을 베푸는 참의사로 거론한다.

병원도 그렇치만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지나간 자리는 모든 문제해결이 남긴 상처를 치유가 아닌 치료하는 일에 집중하는 성향을 보인다. 사람을 아픔과 고통을 치유해서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아픔과 고통을 산출하는 고장난 기계로 보고 접근한다. 고장난 기계는 원인이 어디에서 시작했던지 항상 비난 받아야할 대상이다. 심지어 요즈음에 유행하는 코칭조차도 문제가 생긴 사람들의 행동을 교정해주는 치료에 집중하지 치유하는 맨토링까지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코칭조차도 신자유주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치유는 자신을 문제를 산출하는 고장난 기계로 규정하지 않고 고통을 해결해서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하려는 열망을 간직한 인간으로 볼 때 발현된다. 온전한 치유는 세상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상처받고 아파 누워 있는 자신의 성인아이를 다윗으로 일으켜 세워 유전자 복권에 기대어 쉽게 살고 있는 내면의 골리앗을 넘어트릴 수 있을 때 완성된다. 세상에 대한 개입이 종결되는 죽음의 순간에 세상에 약속한 존재목적을 깨달고 이 존재목적을 실현하는 다윗을 키워낸 사람들만 치유를 경험한다.

이태원 참사는 대한민국을 고장난 기계라는 사고로 효율성 관점에서 운영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집단사고가 폭발한 인재다. 국가의 안위라는 허울된 포장지에 감추고 있는 자신들의 생존과 안위를 넘어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애처롭게 생각하는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의 파국이 일어날 수 없었다. 국가를 지휘하는 사람들이 이태원 현장에서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살려내기 위해 목이 쉬도록 외쳤던 현장 경찰관이 보였던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국가를 운영했다면 이런 종류의 인재는 발도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이태원 사고는 국민들에게 깊은 마음 속 트라우마를 남겼다.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정의하는지에 대한 국가철학이 바뀌지 않는한 외과적 수술이 시도될 것이다. 트라우마를 외과적 시스템의 문제로 규정하고 메스를 들이대고 책임자들을 잘라내는 치료가 감행될 것이다. 기억이 가물감물할 때쯤되면 치료가 끝난 것으로 규정하고 문제를 종결할 것이다. 이런 방식의 인간의 고통에 대한 치유의 관점이 사라진 신자유주의 사고체계가 유지된다면 앞으로 더 큰 재앙이 예고된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자유는 시장경쟁이 고장난 기계를 고쳐줄 것이라는 신석기 시대의 믿음을 주창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자유나 구석기 시대의 믿음인 주사파 논쟁자들의 이념적 자유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고통을 주체적으로 이겨내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시켜 다윗으로 길러낸 사람들만이 공통으로 누리는 윤리적 주체로서의 자유다. 대한민국에서 사라진 것은 인간을 고장난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 온전하게 규정하고 성장하게 하는 윤리적 주체로서의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