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조용한 이직 quiet quitting이 촉발한 구성원의 심리적 이탈을 고민하는 회사가 많다. 조용한 이직은 실제 사직서를 내지는 않았지만 이미 마음은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한 구성원이 보이는 조용한 일탈과 몰입과 조직시민행동의 결여 현상을 뜻한다. 마음이 먼저 사직서를 제출하는 구성원이 많은 회사는 조직의 제도적 울타리는 있어도 이 울타리를 지지하는 심리적 울타리는 이미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심리적 울타리를 공유하는 사람들과만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고 사랑을 통해 서로를 치유하고 학습하는 자유로운 말건넴을 시작한다. 제도적 울타리만 있고 심리적 울타리가 무너진 조직에서는 아픔과 실수가 적극적으로 감춰지고 수많은 상처와 문제가 감춰져 사고의 조짐을 보여도 서로 징후를 못본척 한다. 쉽게 막을 수 있었던 사고는 재앙으로 번진다. 이태원 참사와 같은 대형사고는 대부분 심리적 울타리가 무너져서 생긴 인재다.

심리적 울타리가 무너지면 다른 사람을 위해 한발 더 가주는 시민행동을 하지 않는다. 경쟁에 치이지 않고 스스로 살아남는 것이 삶의 최우선 순위가 된다.

윤활류에 해당하는 시민행동이 사라진 상태에서 차를 계속 운행하면 결국 차는 얼마가지 않아 영원히 멈춰선다.

심리적 안정지대의 울타리와 제도적 안정지대의 울타리의 차이를 예로 들어보자

교수, 법관, 공무원처럼 심사를 통과하면 퇴임시까지 정년을 보장해주는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정년보장은 제도적 안정지대를 확보해주는 것이다. 교수를 예로 들면 교수는 정년을 보장받으면 해고의 위협없이 안정지대를 기반으로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명에 더욱 몰입할 것같지만 실상은 녹녹치 않다. 교수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내가 보기에도 진짜 교수와 유사교수는 정년보장이후에 판명된다. 유사교수는 정년보장 후 자신이 보장받은 제도적 안정지대를 가르치고 연구하는데 쓰기보다는 개인적 꿍꿍이와 속셈을 채우는데 본격적으로 내놓고 이용한다. 미국 대학의 경우는 이런 제도적 정년보장의 폐해가 더욱 심각하다. 정년보장 때까지 자신의 은밀한 속셈을 숨기고 산 셈이다.

공무원들도 누구보다 고용안정이라는 제도로 보장된 안정지대 울타리는 있는 것같은데 그렇다고 이분들이 울타리 때문에 학습과 혁신에 매진하지 않는다. 실제로 공무원이 되려는 분들 대부분은 제도가 보장해주는 안정지대의 인센티브 때문이다. 제도가 보장해주는 안정지대만 믿고 손을 놓고 있다면 사회는 혁신의 동력을 잃게 된다.

상대를 믿고 사랑으로 상처에 대한 말건넴이 가능한 심리적 안정지대는 제도 울타리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심리적 안정지대의 울타리는 철학과 사명으로만 만들어진다. 사명과 목적을 잃은 조직이 이런 심리적 안정지대의 울타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혁신이 상수로 받아들여지는 초우량기업의 심리적 안정지대의 울타리는 대부분 사명과 회사의 철학으로 만들어졌다. 이 사명과 철학의 울타리를 공유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서로를 자연스럽게 운명의 파트너로 받아들인다. 이들은 틈만나면 사명과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서로의 학습을 격려한다. 혁신은 사명의 울타리를 공유한 사람들이 제대로된 학습을 진행할 때 저절로 따라온다.

사명의 울타리 안에서 벌어진 실수는 사명을 염두에 두고 있는한 모두 학습으로 축적된다. 실수는 그자체로 보석이고 사명은 이 보석들을 꿰어 보석 목걸이로 만들어주는 줄이다. 사명이 없다면 실수는 보석이 아니라 그냥 쓸모없는 연속된 실패일 뿐이다. 사명의 울타리를 공유한 조직에서 실수는 자연스럽게 혁신으로 이어진다.

많은 분들이 왜 사명이 뚜렸한 병원이나 교회가 군대식 문화로 물들게 되는가에 대해 질문한다. 사명의 울타리가 걷히고 대신 제도의 울타리가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사명의 울타리가 거세된 조직에서는 사명을 구현하기 위한 보다 더 나은 역할 전문성에 대한 학습보다는 실수나 사고가 생겼을 경우 이를 누가 일사분란하게 책임질 것인지 책임소재 파악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다. 이런 조직에서는 변화와 혁신이 금기시된다.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고를 줄이기 위해 경험이 부족한 직원들을 철저히 군대식으로 다뤄야 한다. 구성원들도 혁신하다가 사고치기보다는 중간수준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무난히 어울려사는 무사안일주의를 표준으로 받아들인다.

사명의 울타리가 없거나 사명의 울타리를 잃어버린 조직에서 격는 비극이다. 생명과 직결되는 인명사고가 없어야되는 병원에서도 사명의 울타리가 있다면 지속적 혁신은 상수가 된다. 생명을 살리고 의료사고를 줄이기 위해 의사와 간호사간 아니 모든 직원간 피드백과 소통이 활성화된다. 모든 학습의 결과가 공개된다. 환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 없으므로 모든 혁신적 시뮬레이션 기법을 동원하여 사고 제로를 향해 혁신적으로 훈련한다. 훈련은 생활의 달인 수준이다. 이 모든 혁신활동이 가능한 것은 병원에 사명의 울타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명의 울타리가 무너지는 순간 병원은 의료사고를 줄이기 위해 경험이 많은 의사중심으로 돌아가는 군대가 된다. 의사간 간호사간 실수의 전조가 될 수 있는 시그널들이 있으면 피드백되거나 공유되지 못하고 숨겨지다가 사고로 터지고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옷을 벗고 이런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군대식 통제는 더 강화된다. 병원의 존재목적이 의료사고를 내지 않는 것으로 치환되었다. 자발적 학습이 일어나지 않아서 의료의 질은 떨어지고 퇴출의 수순을 밟는다. 이런 병원에서는 환자체험이라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사명의 울타리가 없는 조직은 아무리 정년이 보장이 되어도 군대식 통제의 문화가 지배적인 특성이 된다. 이들이 사명의 울타리를 상실한 댓가로 치뤄야하는 비용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다.

사명의 울타리가 거세된 대형화된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대형교회들은 일반 공무원 조직이나 군대보다 더 관료제화 되어 담임목사의 카리스마 지휘력이 군대에서 사단장처럼 일사분란하게 발휘된다. 직분자들도 사명에 몰입하고 실현하는 일보다는 성도들의 신앙을 관리하는 관리자일 뿐이다. 사명의 울타리가 사라진 성전은 신의 무덤이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램을 복원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성벽을 복원하는 일이었다. 심리적 안정지대를 만들기 위해서다.

진성리더(authentic leader)들은 사명과 철학의 울타리를 만들고 이 울타리를 보수하는 임무를 다른 누구에게도 위임할 수 없는 임무로 생각한다. 진성리더는 이 울타리가 만들어낸 운동장 안에서 사명을 구현하기 위해 자신의 전문성을 신장하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을 사명의 파트너이고 어른으로 생각한다. 진성리더에게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이들을 소중한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