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1-07 21:00
[N.Learning] 유전자 당첨자의 불운: 뫼비어스의 띠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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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복권 당첨자의 불운
뫼비우스의 띠
자신이 어떤 부모 밑에 태어난 것은 전적으로 운이다. 이런 점에서 연예인급 외모를 타고 났거나 머리가 비상하게 태어난 것, 예술적이나 체육의 재능을 타고 태어난 것, 뛰어난 건강을 가지고 태어난 것 등등은 유전자 은행이 운영하는 복권에 당첨된 것과 같다. 한번 당첨되면 마치 건물주가 된 것처럼 이 은행에서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복권 당첨금을 렌트비로 챙겨 타가면서 인생을 편하게 사는 운이 억세게 좋은 사람들인 것이다.
유전자 은행이 운영하는 유전자 복권의 로또 판을 돌리는 것은 본인이 아니다. 부모도 아니고 자식도 아니다. 신이 대신 돌려 뽑아준 것이다. 부모의 조상님의 조상님 중 어느 한 쪽의 데이트 스케쥴만 어굿났어도 우리는 지금의 부모 밑에서 태어날 수 없었다. 수백만의 정자를 제치고 한 정자가 되어 난자에 안착할 수 있었던 것도 운이다. 부모와 조상의 정자의 정자 중 하나만이라도 난자에 도달하는 것에 실패했다면 역시 오늘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이런 엄청난 경쟁을 뚫고 태어난 것 자체가 운이지만 여기에 더해 뛰어난 머리와, 재능과, 외모와 건강 모두를 가진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것은 수차례의 복권이 동시에 당첨된 것이다. 북한이 아닌 대한민국의 경상도나 전라도의 남자 혹은 여자로 태어난 것도 누군가가 대신 뽑아 준 유전자 복권의 결과다.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을 기초한 롤즈(Rawls)는 신이 관여해서 결정한 유전자 복권에 관한 운명의 문제를 인간이 되돌리는 것은 정의에 어굿난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유전자 복권의 문제는 논외의 대상으로 삼아 여기에 무지의 커튼(Veil of Ignorance)를 쳐놓고 일단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난지의 문제는 더 이상 따지지 말고 태어난 사람들이 가장 정의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해가며 정의 이론을 기초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정의론이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기회의 평등, 과정과 절차의 투명성, 결과의 정의로운 사용이라는 현대적 정의이론이다.
문제는 유전자 복권을 타고난 사람들이 롤스 정의론의 선한 의도와는 달리 최고의 수혜자가 되었다. 좋은 머리와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기회의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복권에서 배제된 사람들과 같은 선상에서 출발하는 혜택을 누리고, 과정과 절차의 투명성으로 다시 한번 당첨자들이 이길 수 밖에 없는 경기를 응원하고, 이렇게 해서 얻은 우월한 결과를 개인이 경기에 참여해서 노력으로 얻었다는 이유로 모두 개인들에게 귀속시켜준다. 롤스의 정의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유전자 복권 당첨자의 행운을 이중 삼중으로 세탁해서 불평등을 정당화해주는 역기능을 가져온다. 롤스의 정의의 이론을 받아들일수록 세상은 더 불공정한 양극화가 정당화된다. 이렇게 얻어진 재정적 혜택으로 결혼시장에 개입해 자신의 가계에 태어난 자손들이 유전자 복권 당첨 확율을 키운다. 자녀들이 누구와 사랑하는지의 문제에 개입해 유전자 복권을 조작하는 이런 현상은 인간 유전자 조작과 비슷하다.
탈무드에는 수학선생과 굴뚝 청소부 이야기가 나온다. 두 명의 굴뚝 청소부가 똑 같이 굴뚝을 청소하고 나왔는데 한 사람의 얼굴은 깨끗하고 다른 사람의 얼굴은 새까맣다. 선생은 누가 얼굴을 먼저 씼을 것이냐고 학생에게 묻는다. 학생은 당연히 얼굴이 새까만 사람이 먼저 씼는다고 대답한다. 선생이 개입해 두 굴뚝 청소부는 거울이 없기 때문에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자신의 얼굴을 확인한다고 힌트를 준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학생이 그럼 얼굴이 깨끗한 굴뚝 청소부가 먼저 씼는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선생은 이 학생의 대답도 틀렸다고 이야기해준다. 둘이 똑같이 굴뚝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했는데 한 사람은 깨끗하고 다른 한 사람은 더럽다는 전제가 틀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궁에 빠진 학생들에게 선생은 이것이 바로 뫼비우스의 띠의 원리라고 설명한다.
인간사회의 정의의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현실적으로 벌어진 유전자 복권에 무지의 커튼을 치고 이야기를 진행하면 롤스의 정의론은 뫼비우스의 띠가 된다. 롤스의 정의론은 똑 같이 굴뚝을 청소한 두 학생이 있는데 유전자 복권에 당첨된 학생은 멀쩡한 상태로 나오고 유전자 복권에서 배제된 다른 학생은 만신창이가 되어 나오는 것을 정당화하는 불공정성 이론이다.
정의의 문제를 제대로 논의하기 위해서는 롤즈의 정의론의 전제에 따라 베일 속에 숨겨놓고 쉬쉬하던 유전자 복권 당첨자들의 탐욕을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롤즈의 무지의 커튼에 힘 입어 유전자 복권 장본인들은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운이 좋아서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모든 결과를 자신이 스스로 땀 흘려 일군 것으로 주장해왔다. 억세게 운이 좋은 것도 자신이 남들과 달리 특별하기 때문에 그런 기회를 얻었다고 포장한다. 이 모든 것을 자신이 다 일군 것처럼 스스로도 믿게 되면 마치 세상을 다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은 권능감을 가지게 되고 어느 순간 더불어 커져가는 거만과 탐욕을 스스로도 통제하지 못한다. 거만과 탐욕이 거인처럼 커지게 되면 결국은 탐욕으로 이카루스의 날개를 달고 추락하게 되는 운명에 처한다. 모든 복권당첨자들이 불운하듯이 이점이 바로 유전자 복권 속에 숨겨진 불운의 그림자이다.
외모는 그렇지 않을 수 있지만 머리가 좋은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특히 학벌을 산출하는 제도교육을 통해 이 불운의 당사자가 될 개연성이 높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학교에서는 스스로 공부를 해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노력이 가미되는 것을 과도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머리가 좋으면 똑 같은 시간을 공부해도 더 좋은 성과를 내고 칭찬을 받을 운명이다. 자신의 노력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일단 성과를 내면 이 모든 것을 자신이 일구어 낸 것처럼 주장해도 큰 문제가 안 생긴다. 주변에서도 공부를 잘하면 칭찬만 받으며 살기 때문에 더 기고만장해질 개연성이 높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처음부터 무지의 커튼을 걷고 자신이 얼마나 행운의 사람인지를 스스로 인정하고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콕 집어서 이런 엄청난 유전자 복권을 당첨하게 만든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질문한다. 유전자 복권 당첨자의 눈으로 본 세상은 소수의 당첨자들과 대다수의 비당첨자로 나눠어진 것을 본다. 비당첨자들은 자신이 복권에서 배제된 것도 모르고 자신의 운명으로 맨땅에 헤딩해가며 온 몸에 피를 흘리고 산다. 복권당첨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불운과 고통에 마음이 아파하는 사람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제다. 자신들이 얻어낸 당첨금의 일부를 비당첨자들도 주인으로 살 수 있는 더 높은 곳에 평평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쓴다.
JTBC <재벌집 막내아들>의 주제이기도 하다. 주인공 송중기는 처음에는 흙수저 집안 윤현우로 태어났다. 윤현우는 유전자복권 당첨에서 배제된 인물이다. 윤현우는 사고로 죽고 재벌집 막내 아들인 진도준으로 다시 태어난다. 재벌가의 아들로 태어난 것은 유전자 복권 중 가장 큰 복권이다. 극에서 송준기는 자신을 재벌가의 아들로 태어나게 해준 분의 의도를 묻는다.
우리나라 법조인 출신 정치가들을 보면 대부분이 유전자 복권당첨자들이다. 이들은 정치가가 되어도 율사출신답게 외치는 것은 공정과 상식이다. 그렇지만 유전자 복권 당첨 사실을 숨기고 살았을 뿐 아니라 자신들을 내밀하게 다시 진골, 성골, 육두품으로 분류해가며 유전자 복권이 가져온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골몰해왔던 이들이 외치는 정의, 공정, 상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국민은 없다. 이들의 현란한 법기술을 동원한 선택적 정의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솔로몬의 지혜가 될 수 없다.
시대는 AI나 로봇이 발전할대로 발전해서 유전자 복권의 의미를 급격하게 퇴색시키는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 유전자 복권 당첨자들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시대의 상투점에 도달한 것이다. 먼저 회심하고 새로운 초뷰카시대의 전령이 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많아지는 대한민국을 열망해본다.
자신도 뛰어난 머리를 물려받은 복권당첨자임을 인정하고 유전자 복권으로 포장된 검사들의 선택적 정의와 치열하게 싸우던 노무현 대통령이 그립다. 그당시 법란을 일으켜서 검사와의 대화라는 방송에 출현했던 검사들은 대학을 나오지 못한 대통령에게 대학입학 학번을 묻는 만행을 서슴치 않았다. 같은 유전자 복권을 타고나 법조인이 되었어도 대통령은 자신들 성골 진골에 비해 육두품이니 자신들 급이 아니라고 폄하한 것이다. 이런 검사들이 아직도 승승장구해 법조계와 정치를 주름잡고 있으니 정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법조출신으로는 유전자 복권이 가동되는 뫼비우스의 띠를 끊어 유전자 복권에서 배제된 사람들에 대한 애도의 띠로 만들어 제시한 유일한 정치가이다. 시대를 앞서 산 마음이 뜨거웠던 긍휼의 정치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