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1-07 21:01
[N.Learning] 토끼의 간에 관한 이야기: 주체성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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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의 새해 다짐
새해는 토끼의 해인 기묘년이다. 토끼에 관한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김부식의 <부토설화>에 나오는 토끼 간 이야기다.
줄거리는 병이난 용왕이 토끼의 간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별주부인 거북을 시켜 토끼를 잡아 오라고 명한다. 평소 잔꾀를 부리며 욕망대로 살던 토끼의 약점을 이용해 용궁에 가면 산해진미며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살 수 있다고 꼬여서 토끼를 성공적으로 납치한다. 용궁에 가서야 상황을 제대로 인지한 토끼는 자신의 간은 너무 영험해서 모두가 탐내 가지고 다닐 수 없다고 속인다. 숲속에 숨겨놨으니 거북이와 같이 보내주면 찾아올 수 있다고 말한다. 물밖으로 성공적으로 탈출한 토끼가 거북이에게 이 멍청한 놈아 "어떤 살아 있는 것이 자기 간을 몸 밖에 떼어놓고 다닐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토끼의 마지막 질문은 사실 거북이에게 한 말이라기보다는 자신에게 한 통렬한 성찰이었다. 간은 삶의 주체성을 관장하는 기관인데 토끼는 이것 없이도 살 수 있는 것처럼 주체성 없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마치 간을 자신 몸 밖에 떼어놓고 살 수 있는 것처럼 주체성 없이도 살 수 있는 것처럼 살다가 주체성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달은 용왕에게 간을 넘겨줄 뻔했던 사건에 대해 반성한 것이다.
용왕의 간경화 병은 아무리 왕이라는 직책으로 모든 것을 호령하고 살아도 간(주체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용왕답게 살 수 없는 것을 상징한다. 사회적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간(주인됨)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고유한 생명은 사라진 무미건조한 삶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내 주변에 쓸개인 담낭을 제거한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담낭에 담석이 생겨서 극심한 통증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간은 매일 1 리더 정도의 담즙을 생산해 소화작용에 쓴다. 쓰지 못한 담즙은 다시 재생된다. 담즙 일부는 담낭에 6배 내지는 10배의 고농도로 비축된다. 간이 정상적으로 기능한다면 담낭은 담즙의 재고창고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핵심은 담즙과 담즙의 기능이다.
담즙이 없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쓸개와 간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유하는 말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담즙과 관련해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는 표현이 있다. 아부와 배신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을의미한다. 줏대가 없고 정신이 혼미해진 사람을 "쓸개 빠진 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친한 사이여서 간이고 쓸개이고 다 보여준다는 간담상조(肝膽相照)라는 고사성어도 있다. 토진간담(吐盡肝膽)은 간과 쓸개를 다 토한다는 뜻으로 자신이 내면의 모든 것을 드러내 보여가며 진정성을 도모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간과 쓸개가 없어서 담(쓸개)즙이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삶은 자신만의 주체성이 상실된 삶을 상징한다. 담즙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자조적으로 "쓸개(께) 없다"는 말을 자주 내뱉는다. 자신의 것으로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말이다. 남의 주체성을 마치 자기 것으로 취하는 행위에도 최소한의 상도의가 있어야 한다는 말로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라는 속담도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해서 이를 갈고 가슴을 두드린다는 절치부심(切齒腐心)하는 행동도 담즙의 분비를 촉진하기 위한 임시처방이다. 이를 악물고 자신의 담즙을 촉진하기 위해 간과 쓸개가 있는 부위인 가슴을 두드린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은 장작 침상에 불편하게 누워서 쓸개를 핱아가며 보복을 준비한다는 뜻이다. 담즙을 핱는 이유는 자신이 주인이 되고 왕이 되는 주체적 삶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실제 담즙의 역할은 음식물을 섭취했을 때 이것을 분해해서 우리 몸에 맞는 영양소로 전환하는 역할과 여기서 부산물로 생긴 몸의 독소를 배출하는 일이다. 담즙이 역할을 못해 몸이 영양소를 흡수하지 못하면 몸이 붓고 노래지는 황달이 생긴다. 담즙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분량을 넘는 음식을 지속적으로 섭취하면 콜레스트롤 찌꺼기가 모여 담낭에 돌을 만든다. 섭취한 음식물이 내 몸을 키우기 위한 원재료 즉 날줄이라면 담즙은 이것들에게서 내 몸에 필요한 영양분으로 분해, 추출, 변환하여 몸에 공급하는 씨줄의 역할을 수행한다. 담즙이 없다면 아무리 영양가가 많은 음식을 많이 먹어도 한 치의 몸도 키울 수 없다. 고통의 원천인 치석만 키울 뿐이다. 반대로 음식이 공급되지 못하고 담즙만 있다면 몸은 마른 장작처럼 새까맣게 타들어갈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씨줄이 되어 나의 고유성과 주체성을 만들어주는 담즙이 없다면 우리는 누구의 아바타이자 복제품의 삶을 사는 것이다. 남의 아바타이자 복제품의 삶은 대체가능한 삶이다. 지금은 역할이 주어져서 온전하게 서 있지만 언제든지 상황이 바뀌면 남들에 의해서 대체품으로 전락해서 쓰러지는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항상 남들에 의해 대체될 수도 있다는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마디로 존재우위가 없는 삶을 사는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당나라 선승이었던 임재선사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교훈으로 담즙이 있는 삶을 강조했다. "어디에 가던지 자신의 담즙을 회복해 상황의 날줄에 자신의 씨줄을 끼워넣는 주인이 되는 삶을 복원하면 하는 일 모두가 진실로 드러난다"는 의미다. 우리가 열심히는 살지만 평생 허구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통렬하게 지적한 것이다.
원흉은 간 때문이다. 간이 제대로 담즙을 생산해내지 못한다면 많이 먹어도 삶의 활력이 떨어져 식물인간처럼 누워 살아야 하는 상태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토끼 해에 토끼의 방방 뛰는 잔머리에 빠져 간을 빼주는 우를 범하지 말고 간을 소중하게 잘 챙겨야 할 것같다. 자신의 간을 떼어놓고 남의 간에 붙었다 남의 쓸개에 붙었다 사는 즉 남의 노예로 사는 삶도 경계해야할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