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4-03 16:49
[N.Learning] 바쁘게 살다가 잊고 지내는 질문 Why? 5 Why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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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살다가 잊고 지내는 질문
Why? 5 Why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보고 맛보고 느끼고 듣는 모든 것은 객관적일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자신이 세상을 이해하는 지도인 정신모형에 의해서 해석된 자료이기 때문이다. 정신모형은 자신의 과거의 성공적 경험에 의해서 작성된 지도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 다르다. 자신이 평소 좋아하는 것이 빨간색 계통이라면 똑같은 것을 보아도 빨간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고, 평소 파란색 계열을 좋아하면 파란색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는 것이다. 이처럼 일단 우리 머리 속에 들어온 모든 자료는 고유한 정신모형에 의해 해석된 자료이기 때문에 주관적 자료이지 객관적 자료는 아니다.
정신모형은 어린이도 있고 노인도 있고 사람이라면 다 있다. 이 정신모형에서 다른 사람과 충돌하지 않는 정신모형을 가지고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을 현자라고 칭한다. 지도에 그려지지 않은 새로운 상황을 만나서 지도가 공회전할 때 우리는 맨붕이라고 묘사한다. 맨붕이란 Mental Collapse로 극단적으로 새로운 사실을 만나서 정신모형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다. 맨붕이 오면 해석은 고사하고 잘못된 행동도 못한다. 우리가 잘못된 행동도 자신있게 하는 이유는 잘못된 정신모형이라도 그나마 돌아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삶에서 똑같은 것을 놓고도 논쟁이 벌이는 이유는 이 정신모형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하고 행동하고 말하고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조언을 더 세련되게 바꾸면 "네가 다른 사람과는 다른 정신모형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라"는 조언으로 바꿀 수 있다.
평소에는 다른 정신모형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를 야기하지 않지만 큰 이익이 달려 있거나 정치적 논쟁거리가 될 때 둘 사이의 차이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상황에 도달하면 그림에서 묘사하듯이 숫자를 놓고 6이라는 주장하는 사람과 9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서로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싸우는 장면이 연출된다. 얼마전 모든 국민들의 청력 테스트 실험에 몰아넣은 <바이든> 대 <들리면>도 같은 맥락이다. 다른 정신모형을 가진 사람들이 상대에게 자신의 정신모형을 받아들이라고 싸우는 장면이 연출된다. 이런 논쟁의 결과는 차이가 극복되기보다는 더 벌어지는 비극을 초래한다.
모든 사회적 갈등은 자신이 세상을 다른 정신모형으로 관조해서 객관적 데이터가 주관적 데이터로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객관적이라고 주장하는데서 시작된다. 우리 인간은 정신모형 때문에 주관성을 벗어날 수 없고 이 간주간성이 우리가 구성해낼 수 있는 가장 합의된 객관성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 간극을 줄이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사회질서는 항상 파행과 불통과 갈등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다. 상대가 나와 다른 정신모형으로 객관적 데이터를 가공하고 있다는 현실을 알기만 해도 소통문제의 80-90%는 즉각적으로 해결된다.
대부분 이런 차이가 발생할 때 사람들이 해결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첫째는 권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방식이다. 권력을 이용해서 상대에게 내 정신모형이 맞다고 가르치고 이에 복종하지 않을 때 상대를 괴롭히는 방식이다. 푸코는 이런 점을 지적해서 힘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정신모형의 감옥에 힘이 없는 사람을 포획해놓고 가르쳐 노예로 부리는 현상이 권력의 본질이라고 해석했다. 푸코에 따르면 힘있는 권력기관(학교, 사법기관, 병원, 정부, 종교단체)이 나서서 어떤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지속적으로 공신력이라는 이름으로 코멘트를 해대는 내용의 대부분은 구성원들에게 자신이 만들어 놓은 안전한 정신모형의 감옥 속에서 말 잘듣는 죄수로 조용히 살라는 경고라고 설명한다. 권력으로 제도화된 정신모형은 순응의 기제다. 제도화된 권력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차별과 편견의 원천이 된다.
두번째 방식은 자본주의 방식이다. 돈으로 상대를 사서 계약적으로 내 정신모형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방식이다. 돈을 주는대신 자신의 정신모형을 포기하고 내 정신모형이 세상을 해석하고 구성하는대로 따라오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나름 깔끔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더 이상 돈을 줄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면 상대의 정신모형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경기가 좋을 때는 작동하지만 경기가 않좋아져서 돈을 지급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계산기를 꺼내들어가며 두드리고 셈을 제대로 해달라고 동요하고 해지지 않으면 정신모형에 대해 사보타지를 감행한다. 실제로 경기가 좋던 시절 기업들은 구성원들에게 돈을 줄테니 회사에 올 때 자신의 생각과 정신모형은 문밖에 걸어두고 몸만 가지고 와서 회사의 정신모형이 시키대로 일하고 자신의 정신모형은 퇴근할 때 찾아가라고 주문했었다.
하지만 차이를 극복하는 방식이 이 두 가지로 한정된 것은 아니다. 가장 효과적이면서 사람들이 잊고 있는 생산적인 방식이 존재한다. Why에 대한 질문을 통해 자신과 상대의 정신모형의 존재를 확인하고 각자 정신모형이 세상을 보는 포괄적인 눈을 획득하지 못했음을 깨달는 방식이다.
왜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면 각자의 정신모형 속에 감춰져 있던 의도가 드러난다. 정신모형 지도 속의 의도가 원인이 되어서 모든 행동, 태도, 말이 발아된다. 문제는 자신의 의도의 진실성을 주변사람들이 판단하고 의도가 진실할 때 이 사람의 말, 행동, 태도를 믿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도의 진실성을 끊임없이 포장하고 연기한다. 자신의 실제 의도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입장에 맞게 포장해서 전달하고 이 포장해서 전달하는 것이 사단을 만든 다. Why에 대한 질문은 지금까지 믿었기 떄문에 믿거나, 돈을 지급했기 때문에 믿거나, 상대가 권위가 있기 때문에 믿은 것에 판단중지하고 상대와 자신의 진실된 의도를 검증하는 유일한 질문이다. why 질문으로 습관, 권력, 돈 때문에 서로 숨기고 있던 의도의 차이에 대해 진실성을 검증하고 진실에 어긋날 때 진실을 담은 더 큰 목적(진실)의 정신모형 지도를 제시하는 사람이 뛰어난 리더다. 큰 목적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물안의 개구리가 된다. 자신의 정신모형이 작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차이가 극복되지 못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진정성의 부재 때문에 생긴 문제다. 진정성이란 자신에게 말하는 내면의 의도와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의도가 같은 상태를 의미한다.
최고의 진정성은 목적에 대한 의도가 내면과 외면에서 같은 상태로 전개될 때 증명된다. 모든 진정성의 종착역은 목적에 대한 진정성이다. 결국 이런 간극을 극복되지 못하는 이유는 양편이 공감할 수 있는 공유된 목적이자 존재이유에 대한 믿음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목적에 대한 믿음과 비전이 없는 상태에서는 자기 집단 목표가 마치 목적이고 비전인 것처럼 제시된다. 결국 수단과 목적의 전치되고 이 결과로 극복할 수 없는 디커플링이 발생한다. 디커플링은 차이를 벌려놓는 힘이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이 Why에 대한 질문을 한번 던져서 속에 숨겨진 진실된 의도를 발견하지 못한다. 따라서 질문에 대한 초기값을 얻었다면 이것을 기반으로 why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지고 던져서 답이 먼저 답이 순환되는 순간까지 던져야 얻고자 하는 답에 대한 본질에 도달한다. 소위 5 why라고 칭하는 방식이다.
자신과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과 사회의 목적에 대해서 진실된 믿음이 정신모형에 내재화되지 못한다면 차이는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갈등을 중재하고 연결시켜서 해결할 수 있는 존재목적 자체도 없는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될 경우 차이는 극복할 수 없는 계곡을 만들어 조직과 사회를 지속적으로 분열시킨다.
진성리더는 미래에 대한 공유된 목적에 대한 진성성을 소구해서 차이를 극복하고 극복된 차이에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협업으로 동원해서 새로운 더 나은 차이를 만드는 변화를 실현시키는 사람들이다. 우리 조직, 사회, 국가에 진성리더의 육성이 시급한 이유이다.
진성리더는 이 모든 과정에서 Why에서 시작해서 5 Why를 던질 수 있는 Why에 대한 근력을 가진 사람이다. Why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만 삶의 진정성을 확보할 수 초석을 가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