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4-03 16:52
[N.Learning] Web 3 세상에서 인간의 등급 인간, 아바타, 좀비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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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3 세상에서 인간의 등급
인간, 아바타, 좀비
초연결사회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연결된 것들이 다 카메라가 달려 있어서 데이터를 세세하게 기록하고 필요할 때는 공유하게 된다. 빅 데이터로 축적된 것들이 분석되어 제품과 서비스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개인은 지속적으로 탈개인화된다. 인공지능이 작동하는 공장인 매트릭스는 탈개인화된 인간을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어서 개인에게 맞는 아바타로 생산해낸다. 매트릭스가 꿈꾸는 세상은 인간을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아바타를 우상화시켜 아바타의 노예로 종속시키는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탈개인화 -> 아바타 생성 -> 아바타의 우상화 과정 -> 좀비화가 진행되는 공정을 묘사하고 있는데 chat GPT의 출현은 이런 매트릭스에서 우려하는 세상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경고한다.
무서운 상상이기는 하지만 초연결이라는 채널로 나와 연결되어 있는 모든 고리들이 나에게 빨대를 박고 나에게서 데이터를 빨아 먹고 있다. 각종 쿠기로 유혹해 나에게 센서를 심어놓고 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해 xAPI 데이터를 축적한다. 정신줄 놓고 인공지능의 추천을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내 영혼까지 탈탈 털린다. 이재에 밝은 기업들이 공모해서 빅데이터를 모아 나보다 나같은 아바타를 만들어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조정하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과거를 잊고 사는 인간의 속성을 이용해서 과거를 모아 나보다 더 나같은 나를 만들어 내 안의 주체적인 Authentic Me를 몰아낸다.
주객전도 현상이 심화되면 주인이 된 아바타는 아침에 일어나면 인스타와, facebook을 먼저 보라고 시키기도 하고, 양치질을 할 때는 반드시 무슨 치약을 쓰라고 이야기한다. 시리얼, 비타민, 각종 건강보조식품은 반드시 무슨 브랜드를 먹어야 한다고 점잖게 권유하기도 한다. 자기 전에도 반드시 트위터나 인스타를 점검하고 자라고 명령한다. 또한 핸드폰은 반드시 머리맡에 놓고 자라고 명령하기도 한다. 내가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다 내 시녀인것처럼 활동하는 아바타가 조정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chat GPT까지 가세해서 사피언스의 자존심이었던 개념을 만들고 인지적 문제해결을 위해 자신의 머리 근력을 쓰는 것을 불필요하게 만들었다. 인공지능이 내 몸이 치장하고 소비하는 것을 넘어서서 인간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인지적 근력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사실 자신이 직접 머리를 써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챗 GPT에게 외주를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더 효율적이다. 쳇 GPT에 중독될수록 자기 머리로 독립적이고 성인처럼 생각할 수 있는 사고 근력이 빠진다. 인지적 문제해결의 과제들이 완벽하게 GPT에게 넘어가면 결국 머리는 과거수준에 성장하지 않아서 성인아이를 거쳐 과거의 기억조차 잊혀지는 공간을 GPT가 파고들면 결국 문제해결력이 전무한 치매환자가 된다. 치매환자에게 아바타가 끼워넣어지고 아바타를 우상화하는 공정이 진행된다.
가끔은 자아가 살아나서 아바타가 시키는대로 하지 않을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바타는 내가 네이게이션을 무시하고 내맘대로 길을 갈 때 경고를 날린다. 네비게이션을 무시하는 방법은 네비게이션을 끄는 방법이지만 문제는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길이 생겨나서 결국은 네비게이션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아바타와 맞서 싸우는 삶에 지쳐 싸움을 포기하다보면 진짜 나는 아바타에게 삶의 주권을 넘겨주고 아바타를 우상화한다. 아바타의 노예이자 좀비로 전락한다. 내 삶에 대한 주체성과 욕망은 사라지고 공부, 일, 사랑, 가족, 등등 세상 모든 것에 대한 나의 태도가 미지근해진다. 미지근함은 좀비 삶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다. 아바타의 삶보다 더 못한 불행한 삶이 아바타를 우상화하여 아바타의 노예로 사는 좀비 삶이다.
초연결사회는 인간의 몸, 정신, 마음의 근력을 빼서 주체성을 박탈하해 아바타를 만들어내고 이 아바타를 우상화해 아바타의 좀비로 만드는 부정적 국면도 있지만 일면 긍정적 측면도 있다.
첫째의 긍정적 기능은 유전자 복권의 무력화다. 지금까지는 적어도 사회적으로 전문성을 가진 직업을 가지고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려면 좋은 부모에게 머리, 외모, 건강을 물려받아야 한다. 이런 부모 밑에 태어나는 것은 자신이나 부모의 선택과는 무관한 신이 돌려준 유전자 복권에 당첨되는지의 문제였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출현인 이런 유전자 복권에서 사람들을 해방시켰다. 머리가 뛰어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의사, 판사, 변호사, 검사, 회계사, 컨설턴트 등등 전문가의 일을 쳇 GPT는 아무 비용도 요구하지 않고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유전자 복권 당첨자들의 강압적 위세가 없는 더 평평한 세상의 지평을 열어준 것이 첫째 기여라며 나쁜 리더들이 득세할 수 있는 개연성도 죽였다.
초연결사회는 모든 연결된 것에 감시 카메라가 붙어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어서 사회를 투명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이전에는 몰래 나쁜짓을 하고도 능력만 출중하면 잘 살아 남을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개연성은 전무하다. 연기하지 않고 모범생처럼 성실하게 사는 것이 가장 편하게 사는 것이 되었다. 특히 내가 잘 나가는 사람일 경우 내 정보는 더 쉽게 털리고 더 쉽게 공개된다. 나쁜 쪽으로 모난돌들은 인공지능의 공장에서 말잘 듣는 아바타로 다시 제조된다.
초연결 디지털 사회의 인공지능 매트릭스가 나를 아바타로 만들때 쓰는 프로토콜이 있다. 일단 나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할 경우 빅데이터를 이용하여 나에게 추천 알고리즘을 작동시킨다. 빅데이터에서 내가 아닌 나와 비슷한 나이, 취미, 성별, 직업, 학력, 외모 등 취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크로스 매치시켜 나의 전형을 찾아내서 이 사람들의 소비행태를 추천한다. 이렇게 해서 나와 가장 비슷한 나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내면 비슷한 사람의 데이터로 옷을 입혀서 나를 외재화시킨 아바타가 생성된다. 아바타는 탈개성화된 나(Depersonalized Me)이다. 매트릭스 인공지능 공장은 모든 사람에 대해 맞춤화된 <탈개성화된 나>라는 수억개의 공정을 가지고 돌아간다.
평소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주변의 시선에 더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추천된 제품과 서비스를 거절할 수 없다. 완전히 포로가 되어 빅데이터가 만들어준 내가 아닌 탈개성화된 나에 빠져 살게 된다. 탈개성화 전략이란 빅테이터를 이용해 복제품으로서의 나의 알고리즘을 만들고 나를 그 속에 분류해 종속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탈개성화 전략의 목적은 나를 씨없는 수박 즉 정체성 없는 아바타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빅테이터에 의해 내가 씨없는 수박으로 분류되는 순간 나의 존재이유는 소멸되고 나는 알고리즘에 의해서 아바타로 재탄생된다.
초연결사회가 심화될수록 죽는지 사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아바타로 변한 우리가 아바타를 우상화해가며 아바타보다 더 낮은 등급인 좀비로까지 전락하는지의 문제다. 좀비는 자신의 아바타를 신처럼 우상화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좀비로 전락했다는 것은 아바타로 변화한 자신을 우상화 시켜가며 자신을 더 낮은 등급으로 강등시킨 것을 의미한다. 좀비는 그나마 아바타에 있던 Authentic Me의 흔적을 완전히 잊는다. 아바타의 밑등급인 좀비는 인간이 아니라 대체가능한 물건일 뿐이다. 좀비는 내 자신을 나답게 만드는 씨가 완전히 해소되었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실존을 상실한 식물인간보다 못한 개체다.
이런 초연결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이 Authentic Me를 복원하는 재개성화(Re-personalization) 전략이다. 나에 대한 과거, 현재, 미래의 데이터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고 내가 생활을 영위하는 삶의 경계가 가져다 주는 맥락은 나만이 알고 있다. 개성화된 나의 모습을 나의 삶의 맥락에 배태시켜 나만의 근력으로 나에게 고유한 나무를 길러내는 작업을 통해 나는 완전히 민주적이고 씨있는 나인 Authentic Me를 복원할 수 있다.
주기적으로 나에게 빨대를 박고 있는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끊어 버리고 내가 누구인지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에서 해방된 시간을 이용해 내 맥락을 찾아서 자신과의 대화와 성찰을 통해 정체성의 근력을 회복해야 한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잃어버지지 않고 더 잘 알기 위한 삶의 맥락을 찾아 떠나는 성찰여행에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스마트 폰을 내려놓고, 블루터스를 끄고, 전자기기와 단절한 상태로 책을 읽던지, 여행을 하던지, 산책을 하던지, 친한 친구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들을 확보해야 한다. 이 시간을 통해 내 삶의 스토리가 내 삶의 맥락에 전달하는 메시지의 진정성에 대해서 근육을 재생해야 한다.
초연결사회가 심화될수록 아바타들에 맞서 싸울 진실된 나만의 삶의 근육이 있는지 없는지가 아바타의 노예인 좀비로 살 것인지 인간으로 살 것인지의 운명을 결정해줄 것이다. 대학에서의 시험도 쳇 GPT가 문제를 해결해준 것인지 자신의 몸, 정신, 마음의 근력을 직접 써서 문제를 자신이 주체적으로 해결한 것인지를 판별할 수 있을 때 판별타당도를 높히는 시험을 개발하기 위해 사활을 걸 것이다.
초연결사회가 심화될수록 정체성에 대한 진정성(Authenticity)이 시장의 화폐처럼 개인의 지위를 결정하는 화폐가 될 전망이다. 진정성이란 True to oneself로 정체성을 구성하는 안과 밖이 같은 상태를 지칭한다. 진정성이란 자신이 산출한 모든 결과물이 온전하게 자신의 근력을 이용해서 주체적으로 직접 산출했는지의 문제다.
진정성이란 어떤 결과물의 저작권이 AI나 로봇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임을 주장하는 특정 개인에게 귀속되었는지의 문제다. 사실 대학을 넘어 사회에서 이런 저작권의 진실성을 검중하기 위해서는 블록체인이나 NFT 발매가 성숙된 상태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chat GTP의 등장은 블록체인 연구기반이나 NFT에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 다시 미래 플랫폼을 지배하는 새로운 거버넌스를 만들어낼 것이다. 5차산업 혁명은 블록체인과 NFT가 일상화되는 오픈 디지털 플랫폼 세상이다. Web 3.0시대의 기반은 블록체인과 NFT의 상용화를 의미한다. GPT의 발행은 그간 지지부진해진 블록체인과 NFT에 대한 연구를 급속도로 활성화시켜 Web 3.0 사회를 앞당기게 될 것이다.
좀비나 알고리즘에 의해 대체되어 도구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조직이나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좀비나 도구의 삶을 살면서 다른 사람을 이끌 수 있는 리더가 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자신의 존재목적과 울림이 있는 삶의 맥락을 이해하고 이 맥락 속에서 Authentic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지금까지 산업사회의 경쟁력 기반이라고 언급되던 모든 역량은 AI와 로봇가 대신해줄 것이기 때문에 이런 역량으로 다른 사람과의 차별적 경쟁력을 유지할 방법은 없다. 역량에 의한 차별적 경쟁우위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일 뿐이다. 새롭게 떠오르는 변수는 이런 기술적 역량을 날줄로 삼고 자신의 존재목적에 대한 약속을 씨줄로 삼아 자신만의 태피스트리를 만들 수 있는지이다. 태피스트리는 자신 삶의 맥락을 담고 있는 고유한 무늬이다. 누구에게나 제공되는 기술을 이용해 자신의 존재우위에 대한 약속을 실현할 수 있는 근력을 만들 수 있는지가 성공적 삶의 본질이 되었다.
죽은날까지 자신이 진정한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는 자신의 존재우위를 입증할 진정성의 근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적어도 하루의 가장 중요한 일정 시간은 매트릭스에서 레오가 했듯이 빨간약을 먹고 의도적으로 빨대에 해당되는 휴대전화기를 내려놓고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 자신에게 고유하고 의미 있는 현재의 지평을 실험하는 자기성찰과 자기규율에 시간을 쏟아야 할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고유한 정체성을 상실하는 순간 우리는 그냥 대체가능한 소모품으로 전락한다. 인간사회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민권을 상실하게 된다. 블록체인과 NFT가 발매되는 Web 3 세상에서 인간으로서의 삶의 목적과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근력인 진정성은 시민권을 보증하는 패스포트이다.
지금 당장 이런 인간으로서의 시민권을 회복하기 위한 훈련을 통해 인간의 근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아바타와 대등한 지위를 유지하는 인간으로서의 진정성 훈련이 필수적이다.
자신의 삶의 스위치를 존재목적이 실현되는 미래를 향해 돌리는 빨간약을 마련하지 못했다면 매일 아침 일어나 자신의 볼이라도 꼬집어보자. 통증을 느낀다면 살아 있는 인간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아직은 식물인간이 아니라는 증거다. 로봇과 AI가 인간에게 주는 것은 통증을 잊게하는 진통제다. 이런 진통제에 중독되기 전에 삶의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자신의 통증을 찾아서 자신의 몸, 마음, 정신을 일으켜 세워 달릴 수 있는 근력을 만들어보자. 자신에게 고유한 통증을 느끼고 이를 주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은 Authentic 인간이다.
인공지능의 공장인 매트릭스가 우리를 아바타에서 좀비로 가스라이팅 할 때 약속하는 것이 통증이 없는 가공의 세상이다.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면 살아 있는 인간의 고유성은 통증과 이 통증을 주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몸, 마음, 정신의 통합된 근력에 의해서만 증명된다. 삶의 진정성이란 이런 통증을 자신의 십자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근력으로 고통을 극복해 자신이 삶의 주인임을 입증하는 일이다.
이런 일을 혼자할 수 없다면 통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서로를 연결해서 서로를 환대하고 치유해서 자신 삶의 주인으로 세워주는 공동체(Community)를 복원하는 작업에 힘을 보태야 한다. 공동체의 본질적 의미는 긍휼감으로 자신과 상대의 아픔과 고통을 인정하고 이를 온전하게 치유하기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주인으로 일어섬>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향해 협업하는 플랫폼이다. 실제 공동체라는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cum'과 'munus가 합쳐진 단어다. 'cum'은 '함께라는 뜻이고, 'munus'는 '선물을 준다는 의미다. 한 마디로 공동체란 서로 간에 아픔을 치유해 주인으로 세워주는 선물을 주고 받는 연대를 의미한다.
요즈음 글로벌 초우량기업이 사활을 걸고 있는 HR 사업도 회사 안에 이런 공동체를 복원해서 구성원이 어떤 상황에서도 주인됨을 잃지 않게 만드는 일이다. 공유된 존재우위를 앞세워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공동체가 없이는 구성원의 주인의식도 없다는 것을 초우량기업들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매트릭스 영화에서 공동체는 자이언(Zion) 세상으로 불린다.
나의 지금 지위는 어디인가?
인간일까? 아바타일까?
아니면 좀비일까?
나를 치유해 주인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Zion 공동체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