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4-03 16:59
[N.Learning] 치유되지 않은 리더의 비애 자신 안의 가시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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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되지 않은 리더의 비애
자신 안의 가시
요즈음 종종 자신이 온전하게 치유되지 못한 사람이 임원직책을 얻었을 때 리더십에서 탈로하는 현상을 종종 목격한다. 왜 승승장구해야 될 사람들이 기대와는 달리 리더십 철길에서 탈로하는 것일까?
본인은 치유되지 못한 리더의 슬픔 때문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온전한 어른이 되는 것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생긴 고통을 나름대로 잘 극복해왔기 때문이다. 이 고통이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해결되지 못한 고통은 성인아이로 전락한다. 성인아이는 자신을 내면에서 찌르는 가시다. 부모의 과도한 기대에 부응해서 갖은 노력을 다해 성적을 내거나 조직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과도하게 몰입해 살다보면 자신이 가진 고통의 문제를 성숙하게 해결하는 능력을 상실한다.
이들이 운이 좋게 리더의 직위에 오르게 되면 자신이 자신을 찌르던 가시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직책을 가시로 삼아 부하들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물론 직책을 가시로 부하를 괴롭히는 이유는 객관적 성과나 일이다. 하지만 본질은 자신의 성인아이의 가시가 자신을 찌르는 고통을 잊기 위해 부하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직책으로 찌르는 행동이다. 직책이 없었을 때는 자신의 가시를 스스로 감내해야 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직책이 생기면 투사행위를 통해 자신의 고통을 전가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내면의 고통이 성숙하게 다뤄지지 못하면 죄없는 피해자들이 양산되는 고리를 끊을 수 없다.
JW그룹과 협업해가며 10분의 슈바이처급의 의사분들을 연구한 <환대>라는 책을 집필하면서 리더십의 본질은 리더가 자신의 아픔을 인정하고 이것을 해결함을 통해 자신 삶의 주인으로 세워지는 과정이라는 것을 배웠다. 자신의 고통을 긍휼로 사랑하고 이것을 극복해 삶의 온전한 주인됨을 성취한 사람들만 다른 사람을 손님으로 초대해 환대하고 이들의 치유를 도와 이들도 삶의 주인으로 서게 돕는다. 스스로로 치유를 못해 주인됨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들이 주인처럼 손님을 초대해 환대한다면 환대가 아니라 환대의 연기다.
노상강도가 칼로 위협하며 나에게 돈을 안 내놓으면 칼로 찌르겠다고 협박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이 노상강도는 나에게 존재감이 있을까? 당연이 있다. 아주 위협적인 존재감이다.
다음은 어떻게 어떻게 해서 노상강도에게서 칼을 빼앗았다고 가정해보자. 칼을 빼앗긴 노상강도는 나에게 존재감이 있을까? 당연히 없다. 노상강도가 돈이 필요하면 지금부터는 강도행각이 아니라 나에게 거지처럼 구걸을 해야한다.
자신의 아픔을 온전하게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리더가 되었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 리더의 갑질이다. 갑질이란 리더가 자신의 아픔을 주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직책을 핑게로 주변 구성원을 위협하고 찌르는 노상강도 행위이다.
지신의 고통을 온전하게 사랑하는 진성리더들은 갑질이 아니라 자신이 고통을 이기고 주인이 되어 터득한 존재목적의 선한 의도를 상대방의 마음 속에 끼워넣어 상대로부터 자발적 협업을 이끌어낸다. 세상의 모든 큰 변화는 갑질이 아니라 리더의 선한 의도가 구성원의 마음 속에 끼워져 생긴 자발적 행동에 기초해서 만들어졌다. 심지어 종교단체의 구성원들은 돈을 헌금해가면서 자발적으로 봉사까지 마다 하지 않는다.
아무리 팀장 임원 등 높은 직책을 가지고 있어도 자발성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이들에게 리더라는 직책은 자신의 아픔을 투사한 노상강도의 칼에 불과할 뿐이다. 리더십이란 직책처럼 물리적 존재감을 보조해주는 도구가 없어도 상대의 마음 속에 나를 심어 자발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런 근력은 내면의 고통도 자신의 것으로 인정해 받아들이고 자신을 온전하게 긍휼로 사랑하는 훈련을 통해 획득한 것이다.
상대의 마음 속에 내가 들어가 있어서 상대가 나때문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할 수 없다면 상대의 아픔을 치유해 자인 삶의 주인으로 세울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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