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4-03 17:06
[N.Learning] 부화와 부활의 차이를 아시나요? 탄생과 성장의 비밀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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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화와 부활의 차이를 아시나요?
탄생과 성장의 비밀
줄탁동시(啐啄同時)란 어미닭이 병아리의 부화과정을 설명하는 말이다. 신중한 어미닭은 병아리가 부화하고 있는 알을 성급하게 깨지 않는다. 병아리가 충분히 알 속에서 성숙해져서 알이 병아리에게 좁다는 느낌이 들 때 병아리는 어미닭에게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어미닭은 조용히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가 신호를 받았을 때 쪼기 시작한다. 어미닭은 병아리가 성숙하지 않은 부리로 자신의 위치를 지정해주면 이 지점을 정확히 찾아서 알을 깨준다. 어미닭은 병아리가 충분히 부화하지 않았음에도 급한 마음으로 알에서 깨게 한다면 자기 병아리가 깨진 알 속에서 사산한다는 것을 안다.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줄은 병아리가 안에서 쪼는 동작이고 탁은 어미닭이 밖에서 쪼는 동작이다. 동시는 이 두 동작이 같이 이뤄진다는 의미이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알에서 부화한다. 인간에게는 어머니의 태가 알이고, 식물의 씨앗도 알의 껍질에 해당하는 씨앗을 둘러싼 껍질이 있어서 이 껍질을 뚫고 뿌리와 입사귀를 낼 수 있을 때 생명으로 탄생한다. 알 내부처럼 씨앗도 성장을 위한 영양분을 담고 있는 배젖, 태아에 해당하는 배를 가지고 있다. 알에서 자란 생명이 세상에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부화(Hatching)다.
알에서 깨어나는 부화를 위해 누군가는 즐탁동시를 한다. 태아가 생명을 얻고 어머니의 태속에서 10개월을 지나면 병아리가 어미닭에게 신호를 보내듯이 양수를 터트리며 신호를 보낸다. 인간의 부화를 위해 나서는 사람이 산파다. 산파가 아이를 대신 나아주는 것은 아니다. 산파는 아이를 사산시키지 않고 고통을 줄어가며 낳도록 즐탁동시하는 사람이다.
식물의 부화를 위해서는 자연이 즐탁동시에 나선다. 자연의 토양은 산소, 물, 온도를 통해 알에 해당하는 씨앗 속의 생명을 깨운다. 자연은 토양에 물, 온도, 산소를 제공함을 통해 생명을 즐탁동시한다. 적정한 온도와 수분을 공급함에 의해 알껍질에 해당하는 씨앗의 껍질을 부드럽게 연화시킨다. 연화작용을 통해 부드러워진 씨앗의 껍질에 산소를 제공함을 통해 씨앗이 생명으로 깨어나도록 돕고 배젖을 화학적으로 활성화시켜 깨어난 생명이 뿌리와 줄기로 자라도록 영양분을 공급한다. 태아에 해당하는 아기뿌리와 아기줄기가 충분히 성장해서 씨앗의 껍질을 깨고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세상에 줄기와 떡잎을 내미는 순간이 식물의 부화다.
예수는 요한복음에서 생명의 부화를 씨앗 껍질의 죽음으로 설명한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24)." 씨앗의 죽음은 씨앗의 알에 해당하는 껍질이 연화작용으로 토양에 녹아내려진 상태를 의미한다. 연화작용으로 껍질이 녹아내리지 않고 생명이 탄생하는 방법은 없다. 온도, 산소, 물을 공급해 연화작용을 해내는 것이 자연이 씨앗에 보내는 생명의 즐탁동시인 셈이다.
예수는 마가복음 4장에 연화작용이 안되도록 씨를 부리는 농부의 예를 제시한다. 어떤 농부는 돌밭에 뿌리기도 하고, 어떤 농부는 길가에 뿌리고, 어떤 농부는 가시떨기나무에 뿌린다고 설명한다. 당연히 제대로된 농부라면 자연의 즐탁동시인 연화작용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름진 땅에 제대로 뿌려야한다고 설명한다.
생물학적 생명의 프로토타입인 씨앗, 태아, 병아리가 알을 깨고 세상에 처음 모습을 보이는 것은 탄생을 위한 부화이지만 성장하다보면 보이지 않는 알에 다시 갇히고 다시 알을 깨고 나오는 작업을 성공해야 생물학적으로 성장한다. 뱀이 성장을 위해서는 자신의 껍질을 지속적으로 벗겨내야 한다. 껍질은 새롭게 생긴 알이다. 인간도 알에 해당하는 피부를 가지고 있고 8년에 한번씩은 몸을 쌓고 있는 피부의 전체 세포가 바뀌는 것으로 알려졌다. 80까지 산다면 적어도 10번을 알에서 다시 깨어나는 성공적 생물학적 부화를 경험한 것이다. 성인이 된 사람들의 생물학적 죽음이란 어느 시점에서 생물학적 세포가 연화작용에 실패해서 부화하지 못하고 알 속에 갇혀 사산하는 모습이다. 64세까지 생물학적 수명을 유지했다면 8번의 부화에 성공했지만 9번째의 부화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알에서 생명으로 부화하지 못하는 것은 생물학적 죽음을 가져다 주지만 육체를 넘어 정신을 가지고 있는 인간에게는 심리적 죽음의 문제가 더 큰 실존적 문제다. 실존적으로 정신의 알에서 깨어나 심리적 죽음을 극복하는 문제는 부화(Hatching)가 아니라 부활(Resurrection)이다.
헤르만 헷세도 성장소설인 <데미안>에서 인간 정신의 성장과정을 몸의 성장을 넘어서 자신의 정신을 옥죄는 감옥인 알에서 깨어나오는 부활의 과정으로 묘사하고 있다.
<새는 알에서 깨어나오기 위해 몸부림을 보내지. 알은 새의 세상이야.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자신의 알에서 깨어나오지 않으면 안되지. 새는 알에서 깨 자신도 신을 향해 날아가고 싶은 열망에 몸부림치는 거야.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라고 부르지>
데미안이 언급하는 아브락사스는 야뉴스처럼 좋은 면과 어두운 면을 다 가지고 있는 신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악과 선, 탄생과 파괴, 좌 혹은 우, 변화와 안정, 여성과 남성, 음과 양 등등 이원론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신적 감옥인 알에서 부활해 자유를 향해 날아가는 새를 상징한다.
사도 바울은 예수의 생물학적 죽음의 의미를 정신적 부활로 해석해 기독교를 정초했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전서에서 "우리는 매일 죽는다"고 선언함을 통해 부활은 생물학적 수명이 다할 때까지 매일매일 정신적 알에서 깨어나는 부활을 감행해가며 되어감(Becoming)을 수행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바울은 부화는 대부분 남들이 해주는 과정이지만 부활은 자신을 주체적으로 개입시켜야 실현할 수 있는 과정임을 설파하는데 평생을 보냈다. 자신을 삶이 꿈꾸는 존재 목적에 대한 약속을 정하고 이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을 사랑, 소망, 인내로 일으켜 세우는 사람들만이 예수의 부활에 버금가는 일인칭의 주체적 부활을 경험한다고 설파했다. 바울은 매일의 부활을 체험하기 위해 위해 사랑, 소망, 인내로 자신을 즐탁동시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한 마디로 즐탁동시의 주도권을 타인에서 자신에게도 넘겨받을 것을 강조했다.
진성리더십(Authentic Leadership)에서는 심리적 죽음 내지는 새로운 정신의 탄생으로 이끄는 알을 정신모형이라고 부른다. 제대로 된 정신모형은 태아를 길러내듯 가능성을 잉태시키는 태반이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과거의 정신모형 속에 갇혀지내는 사람에게는 감옥으로 작용한다. 일신우일신을 감행하지 못해 결국 과거의 정신모형을 깨고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죽음을 선사한다. 진성리더는 성장과 성숙의 단계에 맞춰 정신의 집이자 성전인 정신모형을 스스로 디자인하고 공진화시키는 사람을 지칭한다.
진성리더는 정신모형의 알 속에 갇힌 것을 인지하는 아포리아와 알을 깨고 혼돈의 세상으로 날아오르는 디아스포라를 스스로 반복해가며 자신의 정신모형을 공진화시킨다.
정신모형의 알을 제대로 디자인하지 못해 심리적 죽음을 당한 사람들은 내면에 부활하지 못한 성인아이를 사산아로 품고 산다. 성인아이는 부활에 실패해 정신모형의 태반에서 죽어가는 아이다. 진성리더로 성장하는 과정은 자신의 알인 자신의 정신모형을 깨고 더 나은 정신모형의 알로 진화시키는 과정이다. 우리가 세상에 대해 개입이 끝나는 순간까지 적어도 N번의 정신모형의 부활을 감내해가며 자신 속 내면의 성인아이를 제대로 된 천사로 키낸다. 천사로 길러낸 자신에게 세상을 자유롭게 하직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선사하는 사람이 진성리더다.
부화는 몸이라는 알을 통해 생물학적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라면 부활은 정신의 태반에서 새 생명이 탄생한 것이다. 몸과 정신은 죽는 순간까지 N번의 부활과 N번의 부화를 반복한다. 삶에서 진정한 행복이란 N번의 부화에 버금가는 N번의 부활에 성공했는지의 문제다. 살아 생전에 생물학적 몸은 100번의 부화를 했지만 정신은 한번의 부활밖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평생을 식물인간으로 산 셈이다.
진성리더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무는 N번의 몸의 부화에 버금가는 N번의 정신의 부활을 감행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물리적 죽음에 직면할 때까지 N번의 성공적 부활을 위한 정신모형의 즐탁동시가 필요하다. N번의 성공적 부활을 실현한 사람들만 죽음의 강을 건넜을 때 영원한 부활인 영생을 꿈꿀 수 있다.
인간에게 영생이란 내가 죽음과 직면해서 남겨놓은 천사의 조각상이 후세의 마음을 울려 이들의 정신과 마음 속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한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천사란 자신의 존재목적에 대한 약속을 긍휼의 태반에서 살아 있는 생명으로 길러내 탄생시킨 유산을 의미한다. 이 유산이 우리가 세상을 하직한 후에도 사랑하는 후세의 몸과 정신 속에서 천사로 부활해서 다시 생명의 날개를 달고 죽음의 계곡을 건너 자유를 향해 날아오르는 모습이 우리가 이 생의 삶에서 그렇게 간절히 꿈꾸던 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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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나이
詩 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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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 아침 아잔 소리 울릴 때
악세히르 마을로 들어가는 묘지 앞에
한 나그네가 서 있었다
묘비에는 3·5·8… 숫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이 마을에 돌림병이나 큰 재난이 있어
어린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했구나 싶어
나그네는 급히 발길을 돌리려 했다
그때 마을 모스크에서 기도를 마친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오며 말했다
우리 마을에서는 묘비에 나이를 새기지 않는다오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오
사는 동안 진정으로 의미 있고 사랑을 하고
오늘 내가 정말 살았구나 하는
잊지 못할 삶의 경험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자기 집 문기둥에 금을 하나씩 긋는다오
그가 이 지상을 떠날 때 문기둥의 금을 세어
이렇게 묘비에 새겨준다오
여기 묘비의 숫자가 참 삶의 나이라오
-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