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4-03 17:10
[N.Learning] 경계의 역설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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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역설
경계의 역설(paradox of boundary)이란 평소 통용되는 기준보다 더 엄격한 기준으로 자신의 행동의 경계를 정해서 사는 사람들에게 사회는 자기조직화를 위한 더 많은 행동의 자유가 허용된다는 원리다. 이유는 이런 엄격한 기준으로 사는 사람들의 투명성을 누구나 신뢰하기 때문이다.
1977년 비평형 열역학에서 소산구조론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일리야 로마노비치 프리고진(Ilya Romanovich Prigogine: 1917년 1월 25일 - 2003년 3월 28일)는 모든 분자구조를 가지는 것은 스스로 규제할 수 있는 <경계>가 내재화되어 있을 때만 자기조직화를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경계를 유연하게 확장해가며 진화한다고 밝히고 있다.
국가도 경계가 있기 때문에 이 경계내에서 참여자들이 목적을 세우고 자기조직화가 가능하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경계가 없는 도시는 자족적으로 진화할 방법이 없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조직의 경계가 없다면 적절한 활동범위와 이 활동의 수혜자를 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 몸도 경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기관들이나 분자들이 이 경계의 범위 내에서 자기조직화 하는 방식으로 신진대사를 하고 이를 통해 우리를 성장시키거나 축소시킨다.
경계의 역설이란 스스로 탐욕으로 마음의 벽을 쌓아가며 물리적 경계를 확장하려고 노력하면 사회는 더 엄격한 기준으로 행동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반면 탐욕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켜 내재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행동 자유를 허용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인간이 만든 최초의 경계는 모닥불을 둘러쌓고 모인 부족 사람들이 만든 경계다. 원시부족 사람들은 낮에는 사냥하고 농사를 짓다가 저녁이 되면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 앉아서 내일 해야할 협업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경계를 만들며 빙둘러 앉은 이유는 동물이나 적의 공격으로 부터 서로의 등을 지켜주기 위함이다. 이렇게 만든 경계를 통해 인류문명이 탄생했다.
성경에서 경계를 가장 잘 활용한 선지자는 느헤미야다. 페르시아의 왕으로부터 이스라엘 성전을 복원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유수되었던 사람들이 예루살램에 돌아와 처음 시작한 것이 성전복원 공사였다. 하지만 복원 공사는 번번히 실패했다. 이방인들의 방해 때문이다. 느헤미야는 이전의 선지자들과는 달리 성전이 아니라 성벽을 먼저 쌓아올렸다. 성벽의 경계 안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고 성전을 복원하는 공사를 시작해 결국 성전복원에 성공했다.
경계의 역설은 우리가 합심해 지연, 학연, 혈연 등의 태생적 기준에 의해 쌓아진 성벽이 만들어낸 마음의 벽을 허물고 목적과 보편적 가치기준에 의해서 경계를 다시 진화시킬 때 가장 넓은 기회의 울타리를 확보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런 점에서 탁월성을 보이는 초우량기업들이 사용하는 울타리는 가치의 울타리이다. 초우량기업에서 핵심인재가 되는지 못되는지도 이런 가치기준을 내재화해서 회사가 정한 공유된 목적을 실현하는 협업에 능력을 발휘하는지의 문제다.
3월 11일 화엄사에서 열리는 4대 종교 평화 음악회 ‘수도자들의 영혼의 울림’은 종교의 경계가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 음악회에는 노래를 통해 포교하고 사목하는 불교(정율·무상 스님), 원불교(한청복·김성곤 교무), 천주교(정범수 신부), 기독교(김선경·구자억 목사) 등 종교인들과 합창단이 출현한다. 아마 이들 종교인들의 모습이 인류가 처음 문화를 시작하기 위해 모닥불을 중심으로 둘러 앉아 만들었던 경계의 모습을 가장 현대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아마 이 평화 음악회에는 종교에 반감을 가졌던 일반인들도 참여하여 영혼의 소중함에 대해서 체험할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으로서 참답게 사는 모습을 담은 삶의 경계를 확장하는 체험이다.
이처럼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맞춰 경계를 확장시키는 신선한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반대편에 서서 경계를 지속적으로 축소시켜 기회를 경계 밖으로 내쫒는 정치꾼들도 있다. 소위 검찰공화국이라는 기준으로 국가의 경계를 세우는 사람들이 그 부류다. 검찰이라는 특수한 기준으로 설정한 경계는 보편적 기회가 울타리 안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성벽을 더 높이 올려 만든 경계다. 심지어는 국민연금 간부에 검찰출신이 임명되는 사건도 목격하고 있다. 검찰로 쌓아올린 높은 성벽 안에서 이들이 정한 기준에 따라 살고 싶은 대한민국 국민은 얼마나될까? 이 정부는 좁디 좁은 경계에 사람들을 가두어놓고 무슨 일을 벌이려는 것일까?
대한민국 국민은 오랫동안 피나는 투쟁을 통해 얻은 보편적 경계가 가져다 준 자유를 소중하게 체험하고 살았던 사람들이다. 조만간 질식할 수 밖에 없는 높은 경계의 감옥으로부터 탈출하는 자유인들의 탈출러시가 눈에 생생하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