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4-03 17:25
[N.Learning] 쳇 GPT 세상에서 살아남기 I II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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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GPT 세상에서 살아남기 I
지행격차 문제
chat GPT는 초뷰카시대(Hyper VUCA)의 전령사다. 초뷰카시대는 AI와 로봇이 추동하는 기술적 변화가 가속화되어 불확실성, 모호성 , 예측가능성, 변동성, 복잡성이 인간의 머리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는 시대를 의미한다. 이 시대에 아무리 역량이 뛰어난 기업과 천재적 인간도 모두 길을 잃을 수 밖에 없다. 길잃음이 본질인 시대가 초뷰카시대다.
이런 초뷰카시대도 인구의 15%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나 기업들은 잃었던 길 속에서 다시 길을 찾아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지평을 뚫 새로운 차원을 끊임없이 제시한다.
이런 사람들과 기업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을까? 이런 초뷰카시대를 살아가는 리더들이 가져야할 소양과 생각과 철학에 대해서 책 시리즈를 기획해보았다.
첫째가 지행격차의 문제다. 지행격차는 아는 것과 이 아는 것으로 새로운 것을 실행하는 것 사이의 격차를 의미한다. 아는 것을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헛똑똑이라고 부른다. 지행격차의 문제는 초뷰카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기 전에도 문제가 되었다. 전문가들은 어떤 특정분야에 심도 있는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주로 했던 일은 문제를 가진 사람과 기업에 전문적 지식을 컨설팅해주는 일이다. 전문가들이 사회의 엘리트 층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이유는 컨설팅 지식을 제공해주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실행은 고객이 책임져야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지와 행의 주체가 다른 것을 이용해서 전문적 지식만 제공하는데 특화되었던 직업군이다.
chat GPT 기술에 의해서 전개되는 세상은 전문가를 민주화시킨 세상이다. 실제로 chat GPT는 변호사, 회계사, 의사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고 있다. 고난도의 수순을 의사가 손으로 하기보다는 실수를 할 수 없는 전문적 로봇이 담당한다. 전문성의 최대 약점이 깊이가 있지만 문제라는 것이 한 가지 전문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이 처방한 문제해결이 문제를 온전하게 극복하기보다는 땜방식의 일시적 처방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chat GPT는 이런 전문성과 전문성을 연결할 수 있는 연대적 전문성의 길을 열어줌에 의해서 인간 전문가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답안을 제시한다.
chat GPT는 특정한 계층의 인간에게 자격증이라는 이름으로 높은 벽을 쌓고 향유하던 특권을 무너트리고 있다. 소위 전문성의 민주화 시대를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성이 민주화되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전문성을 가져다 보다 깊이 있고 문제와 관련된 범위를 포괄하는 지식을 알더라도 이것을 실행하는 근력이 있어서 성공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아는 지의 문제는 전문가가 아니라 chat GPT에게 맡겨도 이것을 실행하는 행의 문제는 여전히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사람들에게 달린 문제다. 결국 전문적 해답에 대한 지식은 chat GPT가 담당한다면 초뷰카시대에 살아남는 사람들은 이런 전문적 지식을 이용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행격차를 극복하는 행의 근력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한다.
인간의 문제해결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답을 알아내는 인지적 능력과 이것을 실행해낼 수 있는 역량적 능력에 의해서 결정되었는데 이중 전문가들이 향유하던 인지적 능력은 더 이상 차별화의 포인트가 되지 못한다. 초뷰카시대를 선도하는 리더들은 알려진 지식을 자신에게 적용해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행동의 근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지행격차를 잘 극복하는지 문제는 어려운 문제 상황에서 해결책으로 제시된 답안을 검증해서 실행하는 근력인 GRIT의 문제다. 최고의 GRIT을 누리는 사람들은 머리와 행의 문제를 관장하는 발 사이에는 가슴이라는 징검다리를 이해하고 생각과 다리를 연결해주는 가슴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사람들이다.
리더는 마음의 교량이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키기 위해 인센티브로 해결하려 한다. 지행격차가 완전히 극복되는 것은 가슴을 바이패스하고 몸만 일으켜 세우는 전략인 인센티브가 아니다. GRIT은 마음이 자발적으로 근력을 획득했을 때 형성된다. 마음의 근력인 GRIT은 답안으로 제시된 것이 진정성 있는 삶의 목적과 연동되어 있을 때 일으켜 세워진다. 목적과 연동된 문제에 대한 답안이 마음을 울리고 이 울림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발적 행동을 습관화시킨 것이 GRIT이다. 자발적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삶의 목적적 스토리가 없다면 돈이 많아도 마음의 근력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진실된 목적에 의해 일으켜 세워진 마음의 근육이 없다면 어려움을 만나서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없어진다. 자발적 행동이 축적될 때만 마음에는 근육이 생긴다.
마음이 근육이 어린이 근육이라면 조그마한 어려운 일이 있어도 다 포기한다. 실제로 갖 태어난 어린이에게 에버르스트 산을 정복하라고 할 수 있다고 시키는 것과 같은 비 현실적 현상이 조직 내에서도 비일비재하고 일어난다. 마음의 근육이 없다면 고난을 뚫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마음의 근육을 만드는 자발적 행동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마음을 일으키는 답은 어떤 생각이나 아는 것이 진정성 있는 목적 스토리와 정렬되어 있을 때이다. 진정성 있는 목적 스토리는 그 스토리가 구현될 경우 세상이 어떻게 따뜻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줌에 의해서 사람들에게 상상적 "체험"을 제공해준다. 일관된 체험이 축적되면 근육이 된다. 진정성 있는 목적 스토리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고 행동이 자발적으로 동원되고 어려운 상화에서도 이 행동이 지속되어 습관화될 경우 어느 순간 그 스토리는 사람들에게 믿음으로 전환된다. 자연스런 자발적 행동의 뿌리는 믿음이다. 어떤 스토리에 믿음이 생겼다는 것은 자발적 행동을 습관처럼 할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의 근육이 생겼다는 것은 지행격차가 극복되어 자신의 삶이 동사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쳇 GPT와 로봇이 삶의 파트너인 시대에 의사나 변호사나 회계사 등등 전문가의 자격증을 따서 자신의 미래를 담보해보겠다는 것은 자신이 AI와 경쟁해서 이길 수 있다고 믿는 눈먼 자만심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파국의 운명을 향해 치닫는 설국열차에 올라타서 먼저 미래의 종말을 향해 날아가는 불나방이 되는 지옥 체험을 먼저 해보겠다는 만용일 뿐이다.
전문성이 민주화된 초뷰카시대 우리 모두는 길 잃은 상태에서 각종 사이비 종교와 같은 cult 집단에 빠져 설국열차를 타고 교주의 노예로 삶을 종결하는 삶을 택할 개연성이 높다. 이런 설국열차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답안의 근거에 해당하는 목적을 각성하고 이 목적과 연동된 지식을 자발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을 훈련한 사람들이다. 초뷰카시대에는 자발적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삶의 목적적 스토리가 없다면 전문적 답이 공짜로 주어지고 재원도 무한대로 주어져도 한치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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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GPT 세상에서 살아남기 II
문제정의 엔지니어링
chat GPT는 초뷰카시대(Hyper VUCA)의 전령사다. 초뷰카시대는 AI와 로봇이 추동하는 기술적 변화가 가속화되어 불확실성, 모호성 , 예측가능성, 변동성, 복잡성이 인간의 머리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는 시대를 의미한다. 이 시대에 아무리 역량이 뛰어난 기업과 천재적 인간도 모두 길을 잃을 수 밖에 없다. 길잃음이 본질인 시대가 초뷰카시대다.
이런 초뷰카시대도 인구의 15%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나 기업들은 잃었던 길 속에서 다시 길을 찾아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지평을 뚫 새로운 차원을 끊임없이 제시한다.
이런 사람들과 기업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을까? chat GPT세상에서 살아남기 I에서는 민주화된 전문성을 넘어 전문성을 실현하는 지행격차의 극복하기 위한 근력(Discipline)의 문제를 다뤘다. 이번 시리즈 II에서는 문제정의의 엔지니어링 속에 숨겨진 비밀을 다뤄본다.
초뷰카시대의 문제는 대부분이 모호하다. 다양한 문제가 발생될 때 여기저기 널려있는 뜨네기 전문성을 동원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한다. 문제해결이 모호해지는 이유는 주변에 널려있는 전문성은 문제의 원인 수준에서 처방된 것이 아니라 문제가 해결되지 못해 나타난 결과와 같은 수준에서 단순상관관계가 높은 것이 제시되기 때문이다. 원인의 수준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의 수준에서 문제를 덮는 처방이 판친다. chat GPT 세상에서 돌아다니는 대부분의 처방은 상처에 대해 근원적 치료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거나, 진통제를 주거나, 비타민제를 처방한 수준이다. 당연히 이들 처방에 따르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상처가 덫나고 상처 부위에 고름이 생기고 여기에 구더기가 생기면 사람들은 이 구더기를 안보이도록 돕는 거적을 처방이라고 믿는다. 초뷰카시대 chat GPT가 처방한 문제해결은 마치 거대한 코끼리가 초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님들이 모였고 각자가 찾아낸 코끼리의 실체를 정의해서 코끼리에 대한 해결책을 도출한 상황과 다르지 않다.
chat GPT에 의해서 전문성이 민주화되어 쉽게 문제해결에 대한 전문적 처방을 요구하면 결과수준의 처방이 제시되고 따라서 문제는 해결되기보다는 더 심하게 곪아터진다.
결국 chat GPT에 의해 전문성이 민주화된 시대에는 문제의 정의에 대한 엔지니어링 능력을 가진 사람들만 진정한 전문가로 대접받는 시대다.
상대성 이론으로 문제해결의 최고전문가임을 입증한 아인쉬타인은 문제에 직면했을 때 자신은 문제를 푸는 시간보다는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데 총시간의 90%이상을 사용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에게 책을 쓰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에 대한 질문을 종종한다. 마찬가지다. 써야될 주제 즉 문제에 대해 원인의 수준에서 개념화 작업인 문제정의에 책쓰는 대부분의 시간을 할당하지만 정작 문제의 수준에서 개념화 작업이 끝나면 솔루션를 제시해가며 책을 완성하는데는 한달이상 걸리지 않는다.
아인쉬타인은 문제에 대한 제대로된 정의란 문제의 원인, 문제자체, 결과의 인과적 관계를 상정했을 때 문제가 모습을 나타낸 결과의 수준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원인의 수준에서 정의해서 문제가 발생한 원천을 제거하는 솔루선을 도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문제를 원인의 수준에서 정의해 엔지니어링하는 사람들은 어떤 유형의 전문가들일까?
문제가 초래한 결과는 아픔이다. 이 아픔의 실체를 책상에 앉아서 추상적으로 chat GPT에게 물어본다고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픔의 실체는 이 아픔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의 현장에 내려와서 아픈 사람들의 삶과 얼굴표정을 보고 찾아내야 실마리가 보인다. 얼굴은 삶의 고통이 상영되는 리얼리티 스크린이다. 이런 현장감각과 아픈 사람들에게 대한 긍휼감이 없다면 문제의 원인은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현장은 문제를 키워낸 토양이고 문제가 토양을 뚫고 사건화되었다는 것은 고통받고 있지만 드러나지 않은 사람들이 한 사람이 아니라 많다는 뜻이다.
문제해결 전문가가 긍휼감(Compassion)이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내재화해서 문제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현장을 떠나지 않고 이들과 손을 잡고 같이 해결하는 행동을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의 고통을 내재화해서 자신의 문제로 정의해낸다는 것의 의미는 문제가 원인을 드러낼 때까지 현장에서 아픈 사람들과 상처부위 여기저기를 두드려가며 문제의 원인을 지속적으로 괴롭혀서 문제의 원인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자신을 드러낼 때 찾아진다. 현장을 떠나 문제에 대한 추상적 보고서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엔지니어들에게는 이런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다.
지금까지 문제를 가장 혁신적으로 해결한 디자이너들은 모두 긍휼감으로 무장하고 문제정의를 한 사람들이었다. 종교를 창시해서 사회적 혁신을 수행한 예수, 석가, 공자 등은 이런 점에서 최고의 긍휼감을 무장한 사회문제 전문가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근원적 사회혁신을 도출하기 위해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원인의 수준에서 정의하고 긍휼감으로 이 원인에서 제기된 문제를 해결한 성인이다. 기독교의 긍휼, 불교의 자비, 유교의 측은지심은 모두 Compassion이다.
chat GPT가 마치 새롭게 등장한 구글신(The New God of Google)처럼 떠받들어지는 시대의 위험성은 이들이 제시하는 근거없는 결과 중심의 전문적 제안을 진정한 문제해결의 처방이라고 받아들일 때이다. 초뷰카시대는 긍휼감으로 문제를 원인의 수준에서 정의해내는 문제정의 엔지니어링 능력을 갖춘 전문가들만 Authentic 전문가로 대우받을 것이다. 긍휼감을 상실한 엔지니어링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문제를 정의한 후 해결을 위한 엔지니어링 명목으로 현장을 떠나는 것을 변명하지만 긍휼감으로 무장한 최고수준의 엔지니어들은 절대로 현장을 떠나지 않는다. 현장에 숙소를 마련하고 아픈 사람들의 손을 놓치지 않는다. 이들 Authentic 엔지니어만이 자신들이 문제정의를 chat GPT에게 명확한 한계조건으로 알려주고 이런 한계조건의 범위에서 찾아낸 솔루션만을 솔루션으로 제안하라고 명령한다.
초뷰카시대 최고 수준의 Authentic Expert는 chat GPT를 문제정의와 솔루션까지 다 해낼 수 있는 신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이들은 문제정의는 창의적 인간, 고통받는 인간만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문제정의에 대한 주도권을 사람에게 돌려놓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가장 높은 수준의 문제정의에 대한 엔지니어링은 긍휼감을 동원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각성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왜 chat GPT나 로봇을 자신이 정의해낸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찾아내는 도구로만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이해한 사람들이다.
문제를 원인의 수준에서 제대로 정의해내기 위해 현장을 떠나지 않는다. 문제의 단서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표정과 삶 속에 깊숙히 숨겨져 있다. 이들의 아픈 손을 절대로 놓치 않는다. 문제해결을 위한 솔루션이 작동하는지는 현장에서 아픈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서 검증한다.
chat GPT가 활성화된 세상이 심화될수록 아픈 환자들이 거주하는 현장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로 등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