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4-03 17:38
[N.Learning] 한국, 일본, 독일 공통 정서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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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일본, 독일
공통 정서
동아대 사학과 김학이 교수가 독일인의 감정을 연구한 <감정의 역사>를 출간했다. 김학이 교수는 다양한 문헌 등에 드러난 독일 사람들의 집단정서 특히 16~20세기 독일을 지배하던 국민 감정의 변화를 분석했다. 김교수는 집단감정이란 “도덕 공동체 구축의 핵심 기제”라고 규정하고 시대별 ‘대표 국민 감정’이 존재해왔다고 주장한다.
책에서 김교수는 공포의 감정이 지배적이었던 나찌이후의 독일인들의 대표적 정서는 차분함, 따뜻함, 진정성이라고 설명한다. 나도 유럽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다양한 학생들을 가르쳐본 적이 있어서 이들의 정서와 품성의 차이에 관심이 많았다. 나름 이들 마음 속에 어떤 정서가 흐르고 있는지를 나름 비교분석한 적이 있다. 김학이 교수가 잡아낸 독일인에 대한 감정 포착에 동감한다. 독일학생들을 보면 차분하고 모범생의 품모가 풍긴다. 모범생이라면 부모와 교사의 열망을 더 내재화한 순응기제에 따를 것같지만 실제 독일학생들과 직접 이야기해보면 이들에게는 자아에 대한 자기 진실성이 있다. 현대독일 사람들의 차분함, 따뜻함, 진정성은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학대했던 것들에 대한 자기반성을 토대로한 감정에 대해서도 자기규율을 행사해온 결과로 보인다.
한국사람들에게는 어떤 정서가 흐를까?
원죄와 대비되는 한의 정서가 한국을 대표하는 정서라는 주장이 있었지만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내가 느끼는 한국인들에게는 화, 열정, 주인감이라는 정서가 공통적으로 흐르는 것같다.
한국사람들이 남들에게 당하는 한과 슬픔은 현대에 와서 개인에게는 화로 집단에게는 타집단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는 것으로 보인다. 외국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의 표정을 읽을 때도 가장 먼저 읽는 것이 화난 모습이다. 외국사람들 보기에 한국인은 화가 폭발하기 직전의 사람이어서 다가가기가 조심스러웠다는 고백을 많이 한다.
둘째로 한국 사람들은 차분한 독일 사람들에 비해 뜨겁고 열정적이다. 열정 Passion이란 말의 어원은 고통이다. 열정은 고통을 해결했을 때 느끼는 희열이다. 한국사람들 마음 속에는 열정의 에너지가 넘친다. 하지만 열정이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서 얻은 에너지를 더 큰 목적의 실현으로 연결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뜨거운 마음만큼이나 한국인들은 자신의 열정이 고통의 뿌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놓치거나 더 큰 목적을 향해서 에너지로 전환해 사용하는 것을 자주 놓친다. 어느 정도 고통이 해결되면 고통의 뿌리를 뽑는 일이나 고통들이 연결되어 있는 큰 문제로 전환해 열정을 지속하기 보다는 금방 다른 고통에 관심을 돌린다. 열정들을 모아서 신바람을 만들어내거나 광화문 촛불혁명과 같은 정치변혁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열정이 목적과 정열되지 못하고 고통의 근원과도 연결되지 못해 냄비처럼 금방 식는 것도 특성이다.
내가 느낀 또 다른 한국인을 대표하는 정서는 주인으로 대접받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한국인들은 용의 꼬리보다는 닭의 머리를 택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감정이 꿔다놓은 보리자루 취급을 받는 일이다. 한국인은 자신이 주인으로 앞장서서 가오를 잡고 싶어하는 성향이 어느 민족보다 강하다. 한국인들이 돈, 명예, 권력에 특히 집착하는 이유도 이런 지표들이 자신의 주인됨의 확고한 사회적 지위를 판단해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주인으로 대접받고 싶어하는 마음은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것과는 다른 감정이다. 주인으로 대접받으려면 스스로를 주인으로 세울 수 있어야 하는데 스스로를 주인으로 환대하고 자신의 아픔을 치료할 수 있는 근력은 없다. 대접은 받고 싶지만 대접받을 행동에는 미숙하다. 한국인들은 자신이 주인으로 대접받고 싶은 심정에서 한턱 쏘는 행동을 많이 한다. 한턱 쏘는 행동은 주인됨에 대한 허세다. 자신이 스스로에 주인되지 못함을 덮는 연기다. 심지어 북한은 이런 한국인인 주인에 대한 이율배반적 정서를 이용해서 주체사상을 만들어냈고 주체사상 이념을 이용해 장기독재에 성공했다. 주인으로 대접받고는 싶지만 스스로가 주임되지 못하는 성향을 이용해 북한주민들을 교묘하게 가스라이팅 한 것이다.
일본 국민들을 움직이는 감정은 어떨까?
내가 개인적으로 만난 일본인들은 예의바른 사람들이다. 남들에게 해를 끼지치 않으려는 굳건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일본인이 보이는 이런 종류의 환대는 수동적인 겉환대이지 내면을 바쳐서 적극적으로 환대하는 진환대는 아니다. 일본인들의 환대는 내가 당신을 이렇게 환대해주니 당신도 나에게 해를 끼치지 말아주세요라는 메시지다. 공무원들이 아침에 출근하면 차를 마셔가며 서로에게 덕담을 주고받는데 덕담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오늘 하루동안 서로에 대해서 뒷담화나 공격을 하지 말자는 휴전선언 세레모니다. 일본 사람들의 겉환대의 말에 속아서 상대의 경계 안으로 들어가려고 시도를 하면 일본사람들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내가 아는 일본사람들에게서 느끼는 두번째 정서는 집단주의 성향이 강해 자신을 사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강하다. 일본인들이 일본 안에서 살 때는 편안함을 느끼지만 일본이라는 맥락을 벗어나서 타국에서 살 때는 누구보다 다른 개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개인으로 전락한다. 일본이라는 배경을 벗어버린 일본인들은 스스로가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니 크게 성공하는 사례도 드물다. 일본이라는 집단 맥락을 벗어난 일본사람은 누구보다 자신 개인이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취약성에 시달린다. 자신 주체에 대한 취약성이 역사적으로 일본 사람 개개인을 국가가 집단적으로 주도하는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동원되게 만들었다.
같은 맥락이지만 일본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느꼈어도 개인이 나서서 국가와 집단을 대표해서 사과하는 것은 주제넘은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잘못을 사과하고 털고 가고 싶어도 국가가 사과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면 자신의 잘못을 덮고 자신도 용서받았다고 생각한다. 독일이 국가가 나서서 사과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독일인들의 자신에 대한 차분함과 진정성에 대한 근력이 모여서 국가에게 사과하도록 독려한 것이다. 독일국민들은 개인들에서 시작되는 자기조직력이 있지만 일본에서는 천왕을 제외한 개인을 통해 자기조직력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개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있는 일본에서는 개인들이 사과의 감정을 느껴도 집단에 대한 믿음과 집단에 대한 심각한 의존성은 이들 개인들의 입과 행동을 봉쇄한다. 결국 집단에 대한 광적인 믿음을 가진 강성의 성향이 주도하는 집단사고가 필연적이다. 이런 일본인의 정서가 지금처럼 일본을 자신의 잘못을 절대로 사과하지 않는 민족의 전형으로 자리잡게 만들었다.
한국, 일본, 독일 국민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이런 분석은 어디까지나 내가 만나본 사람들을 통해 느낀 바를 쓴 것이다. 어디까지 내 개인적인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