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7-15 08:00
[N.Learning] 어떻게 우상화에 빠질까? 명사형 삶의 비극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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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우상화에 빠질까?
명사형 삶의 비극
기업이던 사람이던 생명이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본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형이다. 명사인 의자나 책상 등 사물은 세상에 존재로 태어나기 전에 자신의 본질인 목적이 정해진 상태로 태어난다. 책상이라는 명사형 사물은 목공의 머리 속에 책상을 어디에 써야 한다는 본질적 목적이 정해진 다음 책상이 만들어진다. 본질과 존재가 어그러지는 법이 없다.
인간은 다르다. 목적이 정해져 태어난 사물과는 달리 우리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올 때 자신의 세상에 태어난 본질적 목적을 정해놓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몸이 존재로 세상에 먼저 던져지고 자신이 태어난 본질적 목적과 이유를 찾아가며 동사형으로 되어감의 삶을 사는 것이다.
살면서 자신이 이 세상에 왜 태어났은지의 이유를 깨달고 유레카를 외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유레카를 외칠 수 있는 순간까지 결국 나는 내 이름이 있지만 그냥 다른 사람들의 삶과 대체가능한 보통명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설사 어머니 뱃속에서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각성하고 동사형 삶을 살아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사람들도 문제다. 이들이 성공을 통해서 얻어낸 명예, 부, 지위 등 번쩍이는 명사형에 의해서 마음이 장악되면 다시 몸과 마음의 균형을 책임지던 의식이 사살 당해 식물인간으로 변한다. 이런 보이는 물질적 성공에 의해 의식의 자유가 제약되어 자신이 물건으로 전락한 상태를 물상화(Reification)라고 하고 한 발 더 나아가 돈, 명예, 권력, 성공을 가진 어떤 특정한 사람을 자신의 역할모형으로 투사해놓고 이 사람의 복사품으로 사는 삶을 택하는 것을 우상화(Idolization)이라고 부른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돈, 명예, 권력 등을 신으로 모시고 이런 물건에 자신의 의식을 종속시키는 물상화의 우를 범한다. 이들은 자신을 명사형으로 만드는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사이비 교주나 목회자가 자신을 우상화의 대상으로 설정한 잘못된 신관의 노예로 전락하면 명사형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두 상황 모두 몸과 물건에 의해 의식이 죽음을 당한 식물인간의 상태다.
식물인간으로 전락하기 전에 명예, 부, 권력이 가져다 준 성공의 두꺼운 알을 깨고 다시 태어나는 동사형 삶을 회복하는 사람들만 공진화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달성한다.
인간의 삶이란 성공이 가져다 준 뚜꺼운 알을 부수고 매번 다시 태어나는 N번의 탄생과 탄생한 이유를 동사형이 되어 실현시키는 되어감(Becoming)의 과정이다.
결국 지속가능한 존재우위를 가진 인간의 삶이란 죽을 때까지 동사형의 삶을 유지해가며 자신이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의 이유인 목적과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어떤 난관에도 동사형 삶이 가져다 주는 살아 있음에 대한 의식을 잃지 않고 존재 목적을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의 일인칭 주체로 우뚝 서 있있을 수 있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는 돈, 명예, 권력이 많이 모인 곳이나 신자들이 많이 모인 예배당을 성전으로 모시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의 존재목적을 실현하는 사명의 터전이라면 어느 곳이든 성전이다. 신약 성경 마테복음 27장(50 - 51절)에도 예수의 사망과 동시에 성소의 제막이 찢어졌고 그 이후 하나님은 건물로 지은 성전에 거하지 않으셨다고 경고문이 나왔다 (사도행전 17:24).
존재목적을 실현하는 일을 사명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이 존재목적에 기반한 선한 영향력으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성스런 동사형 인간이다. 동사형 인간이 존재목적의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삶의 터전은 모두 성전이다. 성전은 고정된 건물이 있는 장소가 아니라 동사형 인간이 자신의 영, 혼, 마음을 일으켜 세운 몸이 거하는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