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7-15 08:02
[N.Learning] 물리적 경계와 내재적 경계 경계의 역설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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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경계와 내재적 경계
경계의 역설
경계의 역설(paradox of boundary)이란 평소 통용되는 기준보다 더 엄격한 기준으로 자신의 행동의 내재적 경계를 정해서 사는 사람들에게 사회는 감시의 눈초리를 거두고 자기조직화를 위한 더 많은 행동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원리다.
1977년 비평형 열역학에서 소산구조론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일리야 로마노비치 프리고진(Ilya Romanovich Prigogine: 1917년 1월 25일 - 2003년 3월 28일)는 모든 분자구조를 가지는 것은 스스로 규제할 수 있는 <경계>가 내재화되어 있을 때만 자기조직화를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 국가도 경계가 있기 때문에 이 경계내에서 참여자들이 목적을 세우고 자기조직화가 가능하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경계가 없는 도시는 자족적으로 진화할 방법이 없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조직의 경계가 없다면 적절한 활동범위와 이 활동의 수혜자를 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 몸도 경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기관들이나 분자들이 이 경계의 범위 내에서 자기조직화 하는 방식으로 신진대사를 하고 이를 통해 우리를 성장시키거나 축소시킨다.
경계는 겉으로 드러나는 물리적 경계도 있지만 인간은 행동의 기준들을 자율적으로 내재화해서 행동경계를 정하는 내재적 경계도 있다. 행동의 경계를 정하는 내재화된 경계에 따라 허용되는 자율과 자유의 범위가 결정된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경계로 법, 상식, 철학적 윤리를 들 수 있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법은 사회질서의 가장 널널한 기준이고 그 안에 더 엄격한 울타리는 상식과 예의 울타리이다. 최고로 엄격한 경계는 상식과 예를 넘어 가치와 철학의 규율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다. 모든 사람들이 상식과 예를 넘어 가치와 철학적 윤리에 따라 자기규제를 하고 산다면 법은 의미가 없는 경계이다.
다음은 법에 의한 물리적 지배가 얼마나 초보적 사회인지를 가르치는 다산의 경세유표의 서문이다. 다산이 오래전에 우려하던 생각을 우리 위정자들을 지금도 여전히 깨우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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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경세유표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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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논한 것은 법(法)이다. 법이면서 명칭을 예(禮)라고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옛날 임금[先王]들은 예로써 나라를 운영하고 예로써 백성을 지도하였는바 후세에 예의 기능이 약화됨에 따라 법이라는 명칭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법으로는 나라를 다스릴 것도 되지 못하며 백성을 지도할 것도 되지 못하는 것이다.
천리(天理)에 비추어 그와 합치되며 인정(人情)에 적용하여 그와 조화되는 것을 예라고 한다면, 사람을 공포에 떨게 하고 불안에 휩싸이게 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감히 위반할 수 없게끔 하는 것을 법이라고 한다. 옛날 임금들은 예로써 법을 삼았다면 후세의 임금[後王]들은 정말 법을 법으로 삼았다. 이것이 예와 법의 서로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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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이 경세유표를 통해 가르치고 싶어 했던 국가의 질서를 세우는 원리는 명확하다. 법의 집행에 사활을 거는 정권은 가장 성숙한 내재적 경계인 철학, 가치, 문화에 의해서 경계가 만들어진 시민사회와는 가장 거리가 먼 폭력정부다.
회사가 운용하는 경계의 원리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기업들에 대한 반기업 정서가 하늘을 찌르자 경계를 다시 정립하는 ESG 운동을 펼치고 있다. 물건을 만들기 위해 자연에 상처를 준 것에 대해 반성하고, 고객과 협력업체, 경쟁업체, 공동체에 상처를 준 것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기업 내부의 종업원들을 인적도구로 취급해 상처를 준 것에 대해 반성하는 차원에서 ESG 운동을 펼치고 있다. E는 환경과의 경계를 다시 정립하는 가이드라인, S는 회사 밖의 행위자들과의 경계를 정립하는 가이드라인, G는 회사 안의 구성원과의 새로운 경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다.
세 가지 경계 중 가장 중요한 경계는 내재적 경계에 해당하는 G(거버넌스)이다. G가 제대로 규제되기 위해서는 기업의 목적, 사명, 철학을 분명히 하고 회사의 비즈니스 모형과 의사결정이 회사의 목적, 사명, 철학이라는 내재적 경계에 가이드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ESG를 외치는 기업들은 이런 내재적 경계를 함축하는 거버넌스에 목적, 철학, 문화를 거세시키고 이사회 구성 문제가 거버넌스의 모든 것이라는 착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런 회사에서 외치는 ESG는 자신들에게 내재적 질서를 허용하는 진실된 거버넌스를 새롭게 새우는 것이 아니라 측정이 가능한 E에 집중한다. 결국은 ESG washing하는 회사로 전락한다. 기업의 철학, 목적, 가치, 문화가 거버넌스를 장악하지 못한 회사는 자기조직적으로 의미있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ESG에서 거버넌스가 가지는 의미를 파악해낼 수 있는 회사만이 제대로 ESG를 통해 반기업적 정서라는 감시의 눈초리로부터 자유로운 회사가 될 수 있다.
요즈음은 디지털 세상이 성숙되어 한 순간이라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노자가 호접몽에서 경험했던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순식간에 겹치거나 모호해지는 세상이다. 노자는 지금처럼 가상의 체험을 현실로 가져오는 메타버스의 세상을 오래전에 예언했다는 점에서 스티브 잡스를 넘어서는 천재 중 천채였음이 분명하다.
모호해진 경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생산적이고 지속가능하게 사는 방법은 르네 마그네트가 그림에서 묘사하고 있듯이 내재적 경계와 물리적 경계를 구별하고 내재적 경계의 원리인 자신의 목적, 철학, 가치에 의해 자기조직적으로 규제되는 울타리를 세우는 일이다.
내재적 경계는 다른 경계를 초월하고 포섭하는 초월적 경계다. 내재적 경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외재적 경계에 의해 포획된 삶을 극복할 수 없다.
디지털 혁명이 성숙되는 초뷰카 시대에는 명료하게 경계지워진 내재적 철학과 목적의 울타리 안에 외재적 세상을 내재화 시키고 이 내재화 한 세상에 의미 있는 자기조직적 질서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람과 조직만 정체성을 가지고 번성을 구가한다.
개인, 기업, 사회, 국가가 내재적 경계를 세우는 철학과 존재 목적이 없다는 것은 그자체로 비극인 셈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초유의 대혼란은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음에도 내재적 경계를 세우지 못해 결국 질서를 의미있게 자기조직화해내지 못함에서 초래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