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7-15 08:04
[N.Learning] 기업의 정당성 위기 반기업 정서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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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정당성 위기
반기업 정서
기업하시는 분들은 기업은 고용과 가치 생산을 통해서 우리를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고마운 존재인데 왜 문제만 생기면 기업을 싸잡아서 비난하는 반기업 정서가 갈수록 커지는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반기업 정서의 극한을 경험한 것은 2008년 경제 위기 때이다. 자본가의 탐욕에 대해 항의하며 벌어졌던 월가의 대대적 시위는 반기업 정서에 현주소를 보여주었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반기업 정서는 시대적 분위기로 정착되고 있다.
초연결사회로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가 해결되자 일반인들도 기업이 기여하는 부분과 해악을 끼치는 부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게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기업에 대한 현실적 견해를 내고 있다. 이런 판단의 결과 예전에 비해 기업이 사회에 기여하는 기여분 대비 사회에 해악이 되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급증하고 있다고 판단을 내리고 있는 셈이다.
반기업 정서는 기업에게는 심각한 경고다. 기여분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데 비용이 되는 부분이 지금 추이로 증가한다면 어느 순간 기업은 사회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라이센스를 박탈당할 수도 있다. 반기업 정서는 이런 정당성 위기에 경고를 보내는 중요한 시그널이다. 기업이 당장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기업이 사업을 영위하는 토양은 산성화되고 황폐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반기업 정서가 심각해지는 상황이 현실이라면 기업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을까?
ESG가 결국 기업의 인류에 준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기업이 스스로의 문제를 분류한 것이기 때문에 기업이 인류에 가하는 침해 문제에 대한 이해도 ESG의 범주에 따라 시도해볼 수 있다.
첫째, E의 측면에서는 기업이 탄소배출을 통해 온난화의 주범이라고 지목되고 있다. 산업화가 시작된 시점에 비해 지금까지 지구는 탄소배출을 통한 온난화로 온도가 2도가량 상승했다. 지금의 온도 상승 속도를 추계하면 2100년까지 지구온도는 지금에 비해 3도가량 상승해서 결국 지구는 멸망의 궤적을 밟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안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탄소배출을 0으로 만들어야 지구에 희망이 있다. 기업은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자연에서 재료를 취해 자연에 상처를 준 주범이기도 하고 이 채취던 재료로 가치를 만드는 과정에서 탄소배출의 주범이기도 하다. 결국 지구를 멸망에 주도권을 쥐고 있는 주체도 기업이다.
둘째, S의 측면에서 기업은 경쟁과 양극화로 공동체의 유대감을 파괴시킨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 기업은 가치를 산출하기 위해 노력한 측면도 있지만 산출된 가치를 생산하는데 고객에게 공여되지 않는 부가가치분을 늘려서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이윤을 극대화시켜 양극화의 주범으로 몰렸다. 또한 과장광고나 감성광고를 통해 이런 행위를 정당화했다.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해주는 고마운 측면도 있지만 이를 빌미로 과도한 이윤을 챙긴 것이 화근이다. 경쟁사와의 과도한 경쟁, 고객과의 불신, 통제불가능한 리콜, 협력업체의 착취 등은 결국 기업이 이런 공동체의 유대감과 신뢰를 무너트리는 주범으로 지목되게 만들었다.
마지막이 Governance에 관련된 비용이다. ESG에서 관심을 두고 있는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과 투명성은 가버넌스의 빙산에 일각에 해당된다. 진정한 의미의 거버넌스는 기업의 또 다른 주체인 종업원을 경영자와 같이 기업의 존재이유를 세우고 이를 실현하는 의사결정의 주체로 인정하고 참여시키는지의 문제다.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기업에 대해 종업원들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면 기업의 정당성 위기를 극복할 방법이 없다. 경영자들이 정당성 위기를 극복하는 전략을 고안해내도 이것을 실현하는 사람들은 종업원이고 이들이 이 실현에 회의적으로 임한다면 결국 전략을 제대로 실행할 방법이 없다.
지금까지 기업은 이윤과 성과를 내야 기업이 생존할 수 있다는 논리를 앞세워 종업원들을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도구로 취급해왔다. 이윤과 성과를 충분히 내고 있을 때도 미래의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이윤과 성과 목표를 더 높게 세우고 종업원들을 몰아 세웠다. 심지어 어떤 기업은 종업원에게 생각은 회사 문밖에 걸어두고 몸만가지고 와서 열심히 시키는대로 일하라는 주문을 내기도 했다. 종업원들은 점점 번아웃되었고 생계를 넘어 회사에 가서 열심히 일해야 하는 의미를 잃었다. 종업원들은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고 의미를 찾아야 할 일에서 톱니바퀴의 단순한 부품으로 전락해 일의 의미를 상실하고 노동 소외세력으로 전략했다.
반기업 정서와 사업의 정당성 위기는 기업의 돈받고 가치를 제공해주는 이면에 지구에 상처를 주고 공동체를 양극화 시키고, 구성원들을 톱니바퀴의 부품으로 만들어 상처를 준 것이 장기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축적된 문제다.
기업이 지구와 공동체와 종업원의 마음을 산성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다 아는 입장에서는 고객이 기업에 대해 자발적 지원군으로 나서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결국 아무리 뛰어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사업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반기업 정서는 기업의 정당성 상실이라는 사망선고를 받게 만든 암덩어리인 셈이다.
기업은 정당성을 회복하기 위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런 상태에 대한 근원적 변화가 시행되지 않는다면 기업은 서서히 삶아 죽어가는 뜨거운 냄비 속의 개구리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급선무다. 밖의 온도가 서서히 높아져 온도가 80도가 넘으면 개구리도 뛰쳐나가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지만 온도가 80도가되면 개구리는 깨달음을 얻었어도 몸과 마음이 제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결국 끓는 물속에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자신을 관조하고 빨리 죽기를 채념하는 방법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기업는 탄소배출로 지구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뜨겁게 만들고 있고, 공동체를 구성하는 고객, 경쟁업체, 협력업체의 경쟁을 부추겨 공동체를 갈등으로 뜨겁게 달구고 있고, 종업원의 엔트로피를 높혀서 기업 안의 무질서의 온도를 상승시키고 있다. 기업이 주도한 행동의 결과가 피드백되어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고 기업은 끓어오르는 냄비 속 개구리 운명이다.
기업은 기업의 반기업정서가 막바지에 이르기 전에 이런 근접한 미래의 고통의 문제가 남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직면해야 할 고통이라는 것을 엄숙히 받아들이고 자신이 죽어가는 아픔에 대해 긍휼로 환대하고 치유하고 일으켜 세우는 근원적 변화를 위한 영웅여행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
삶아 죽어가는 개구리가 된 자신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왜 치유되어 사업의 주체로 다시 세워져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을 찾아서 기업과 구성원을 일으켜 세우는 스파크로 사용해야 한다. 기업은 자신의 정당성을 소구하는 목적을 세우고 이 목적을 비지니스를 통해 실현하는 사명의 울타리를 둘러야 한다. 이 울타리 안에서 종업원들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뛸 수 있는 운동장을 제공해야한다. 진정성을 가지고 운동장에서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고객이나 협력업체 경쟁업체을 초대해서 이들도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이 치유를 통해 자신의 삶의 주체로 일으켜 세워지도록 도와야 한다. 고객이 회사가 만들어낸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치유되는 체험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한 발 더 나아가서는 사명과 목적에 대한 약속을 실현하는 내재적 가치의 울타리 안에 상처받은 자연도 초대해서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해 자연, 고객, 협력업체, 공동체, 종업원, 경영자, 주주 모두가 100년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운명의 파트너로 협업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낼 때 기업은 정당성의 위기를 극복하고 영웅의 여정을 마무리할 것이다.
다행히 기업은 자신의 아픔을 긍휼로 환대하고 치유할 수 있는 재정적 자원과 최고의 기술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 또한 혁신적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해 고객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역량도 있다. 문제는 임기가 정해진 경영자들의 자신의 임기문제를 넘어 지구를 구하고, 공동체를 구하고, 종업원들을 구한다는 생각으로 100년 기업을 향한 치유의 여행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을 가질 수 있는지가 변수다. 지속가능한 100년 기업의 타이틀은 기업이 반기업 정서를 용기있게 받아들여 현실로 인정하고 이것이 가져온 고통을 극복해 기업의 정당성을 회복하는 기업에게 먼저 주어질 것이다.
기업이 스스로 나서서 자신과 공동체와 자연을 치유해야 하는 이유인 기업의 존재목적에 대한 끌깨가 없다면 ESG 운동을 모두 ESG Washing으로 전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