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7-15 08:14
[N.Learning] 근면/성실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 가야할 길을 가고 있음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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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면/성실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
가야할 길을 가고 있음
진성리더십 아카데미 도반들과 소크라테스 클럽에서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을 읽었다. 스캇 펙은 이 책에서 게으름을 "24시간 중 몇 시간을 열심히 일하는지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규정한다. 진짜 게으름은 중력이 짓누르는 관성 때문에 깨어 있음에도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야할 길을 가지 않고 있음"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스캇 펙의 근면함을 증거하는 "인간으로 마땅히 가야할 길"의 여정은 어떤 것일까?
신화학자인 캠벨이 지적하고 있듯이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한 여정은 안락한 자신만의 동굴에 갇혀 살았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에서 시작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인간은 원래 동굴맨이었다. 이 동굴맨은 밖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동굴 밖을 나가보지 못하고 동굴 밖에서 들어오는 빛을 통해서 동굴 벽에 자신의 그림자가 비치는 모습을 보고 자신과 세상을 이해했다.
스캇 펙이 말하는 근면함이란 플라톤이 상정한 동굴맨의 상태를 벗어나 자신을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노력을 의미한다. 동굴 밖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밖을 외면하기보다는 동굴 안에서 자신의 그림자만을 보고 사는 삶을 게으른 삶의 전형이라고 규정한다.
동굴맨이 온전한 정상적 인간이 되어가는 근면함은 어떻게 성취되는 것일까?
첫째는 자신의 그림자가 자신이 아님을 깨닫는 치열한 노력이다. 우리는 우리의 맨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모형이라는 우리의 경험치로 만든 암묵적 눈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이 암묵적 지도로 이해하는 세상은 동굴 속에서 그림자로 본 세상이다. 스캇 팩은 자신이 정신모형이라는 그림자 지도로 세상을 이해하고 사는 동굴맨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 근면함을 보여야 한다고 설명한다.
자신이 동굴맨이라는 사실을 각성하지 못할 경우 그림자로 본 세상을 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보이는 세상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고 마치 세상을 다 이해한 것처럼 결론내린다. 세상은 거대한 코끼리이고 동굴맨은 장님인 셈이다. 장님이 되어 동굴 속에서 본 것을 세상이라고 생각할 뿐 아니라 자신이 본 동굴 속에서 본 그림자 세상과 다른 세상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상식을 벗어난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이들과 싸움을 벌인다. 이들을 차별하고 억압하고 권력과 돈을 이용해서 자신이 본 동굴의 세상을 강요한다.
첫 번째 근면함을 성취하지 못한 사람들은 차이를 틀림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편견과 아집과 고정관념에 찌든 사람으로 전락한다. 이들이 힘을 가졌을 때 하는 모든 행동은 갑질이 된다.
스캇 펙의 주장하는 게으름을 자신의 정신모형이라는 그림자 지도의 실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극복된다. 자신의 정신모형(그림자)을 만들어낸 동굴의 경계를 파악해 이 경계 밖의 세상은 자신도 모른다라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 세상에 대해 물음표를 쳐놓고(Bracketing) 이 물음표 친 세상을 서서히 탐구해가는 노력을 시도한다. 틀림을 다름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이 지적인 근면의 시작이다. 물음표에 답하기 위해 동굴의 안쪽에서 경계 쪽을 탐구해가며 물음표로 표시했던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정신모형을 확장해가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첫 번째 근면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둘째는, 깨어 있음의 근면함이다. 동굴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의 의미를 파악해 자신의 허구적 정신모형 속 지도에서 잠자고 있는 것을 깨우는 근면함이다. 빛은 자신의 존재목적을 의미한다. 존재목적으로 암묵적 정신모형이라는 무의식 속에 잠재워져 있던 지식도 깨워서 지혜로 만들고, 자신에 대한 아집을 사랑과 긍휼로 만들고, 잠재적 분노도 용서와 화해로 만들고, 숨어서 흐르던 다양한 정서와 감정도 감사, 희망, 회복 등으로 일으켜 세우는 작업이다. 자신의 정신모형이 이런 긍정적인 정서와 지혜로 채워지지 못할 경우 세상은 위험한 암흑일 뿐이다. 우리는 세상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신모형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기 때문이다.
게으름의 극복하기 위해서는 동굴에서 탈출해서 세상을 탐구하고 이해해가면서 온전한 자신을 만들기 위해 걸음마를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신과는 달리 처음부터 내달리고 춤추는 삶을 살 수는 없다. 기어갈 수 밖에 없는 어린이 근육을 극복해가며 내달리고 춤출 수 있는 근력을 만들어가는 근면함이 요구된다. 내달리고 춤춰가며 동굴 속에서 만든 허구적 정신모형을 완전히 탈피해서 새로운 세상을 위한 새 정신모형을 만들고 이 정신모형으로 성취한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단계가 마지막 단계이다.
근면함이란 농부의 근면함을 닮아있다. 자신의 몸에 자신이 고유하게 발견한 존재목적의 씨앗을 뿌려서 자신의 몸을 과일나무의 향기가 풍성한 과수원으로 가꾸어내는 근면함이다. 세월과 함께 묘목에 불과했던 과수들을 더 풍성한 과일나무로 길러내 세상사람들에게 자신이 만든 과수를 맛보도록 하는 단계가 마지막 근면함이다. 자신이 찾아낸 존재목적의 씨앗으로 만든 과일의 맛을 공진화시켜 온전한 자신을 완성해 세상에 선보이는 근면함을 의미한다.
근면함의 마무리는 존재목적이라는 씨앗을 믿음의 반석으로 살지만 세상이 공진화하면 믿음 속에 갇히지 않기 위해 더 높은 곳에 믿음의 반석을 옮기는 근면함의 근면함이다. 높은 곳에 세워진 믿음의 반석 때문에 믿음이 없던 사람들도 믿음을 찾아서 동굴을 탈출하고 더 높고 평평한 세상이 있음을 알게하는 단계가 근면함의 마지막 단계다. 이 반석 위에서 온전한 자신을 개입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춤춰가며 살 수 있다면 게으름을 완전히 극복한 사람으로 추앙될 것이다.
인간이 고귀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이 중력이 만들어내는 관성이라는 게으름에 대항해서 자신의 존재목적을 실현하는 온전한 자아의 반석 위에서 자신의 존재목적에 따라 작곡한 교양곡에 맞춰 춤출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춤을 출 수 있을 뿐 아니라 춤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더 의미 있는 삶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기적을 선물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도 게으르지 말자.
가야할 길이 멀다.
무지함을 알자!
깨어있자!
춤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