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7-15 08:23
[N.Learning] 친구의 두 기준 온전한 친구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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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두 기준
온전한 친구
어려울 때 남아 있는 친구가 진짜 친구일까? 아니면 잘 나갈 때 더 잘 나라라고 허심탄회하게 격려해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일까?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울 때 남아서 손을 잡아주고 도와주는 친구가 더 돈독한 친구라고 생각한다. 친구가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자신에게도 물질적, 심리적 손해를 감당해야할 수 있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는 피하고 싶은 상황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피하지 않고 친구의 손을 잡아주는 고통을 감내하는 친구는 대단한 친구다.
현실에서 친구가 잘 나갈 때 부러워하고 배아파하지 않고 친구의 잘 나감을 격려해줄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것도 쉽지는 않다. 격려를 해줘야하는 나도 잘나가고 있으면 상관이 없지만 친구에 비해 그렇게 승승장구하지 못할 경우에도 친구의 성공을 정성껏 응원해주는 것은 쉽지 않다.
첫 번째 조건에 들 수 있는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친구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친구의 손을 잡고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행동력인 긍휼의 사랑이 요구된다. 가족이 아님에도 긍휼의 사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역량이다. 긍휼의 사랑을 보이는 만큼 자신도 취약해질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취약성의 크기만큼에 해당하는 신뢰의 크기에 해당하는 그릇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둘째 조건을 충족하는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적에 대해서 정확하게 각성하고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성장마인드가 필수적이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부러운 이유는 친구의 성장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뒤쳐져 있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자신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면 친구의 성장이 격려가 되서 자신도 친구의 성공을 격려하지만 성장이 멈춰선 경우는 그럴 힘이 없다. 친구의 잘 나감을 격려하지 못하는 것의 문제는 자신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음에 잘못이 있다는 것을 숨기는 방호행위다.
방호행위는 성장에 불꽃을 제공해주는 존재목적이 없을 때 더 극심하게 찾아완다. 각자가 작가가 되어 자신만의 고유한 목적을 세우고 실현하는 과정에서 성장을 경험한다면 비교는 무의미해진다. 친구의 목적과 나의 목적이 다르지만 목적이 분명하다면 비교를 넘어 진정한 미래를 향한 파트너십이 구성된다. 지금 당장은 내가 친구만큼은 못하고 있어도 친구의 성공은 진정 나의 성공에 대한 격려다. 존재목적이 분명해서 정상에서 만나는 것은 분명한 일이어서 누가 먼저 도달하는지는 큰 의미가 없다.
친구관계를 맺고 상호 의존해가며 살 수 있을 때 큰 성공을 할 수 있는 현대 세상에서 좋은 친구는 성공의 잣대다.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은 남들에게 온전한 친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는 것과 같다. 친구가 잘되던 못되던 일관된 친구로 남기 위해서는 긍휼로 남들을 사랑할 수 있는 따뜻함과 존재목적이 분명해 성장을 불꽃이 꺼질 때 스파크를 만들어 성장을 위한 학습을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좋은 친구의 숫자가 많았음에도 사는 동안 초심을 잃게 되고 따라서 친구 자리에서 해고당하는 일이 많이 생긴다. 결국 인생 말년에 친구가 남아 있지 못하는 이유는 이 두 가지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친구를 일방적으로 취사선택하기 때문이다.
인생을 마무리 할 시점이 된 연배에도 두 문제를 다 해결한 친구를 친구로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박사건이다. 이런 친구를 친구로 가진 사람이 큰 성공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누구에게 진정한 친구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성공여부를 떠나 긍휼감과 존재목적을 잃지 않고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온 사실을 검증받은 것이니 대단한 축복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누구에게 이런 자격을 가진 친구인 적이 있었나? 내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나는 나를 친구로 받아들일까? 나도 나를 친구로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친구들에게 나를 친구로 받아들이라고 주문한다면 과욕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