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7-15 08:26
[N.Learning] 김남국 의원의 이중생활 정의란 무엇인가?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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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 의원의 이중생활
정의란 무엇인가?
욕망의 골리앗과 이상을 추구하는 다윗은 한 몸 속에 동거하고 있다. 골리앗은 욕망과 현실에 따라 삶을 살아가기를 주장하고 다윗은 미래의 이상을 추구하라고 촉구한다.
이중몰입(Dual Commitment or Competing Commitment)은 이런 욕망을 추구하는 자신과 이상을 실현하는 자신이 서로 내면의 갈등을 겪고 있는 현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이런 이중몰입의 내부갈등이 상황의 유불리에 따라 달리 표출된다. 상황논리에 의해 다윗의 편을 들었다가도 상황이 불리해지면 골리앗으로 갈아타며 자기에게 더 이득이 되는 쪽을 취사선택한다. 하지만 장기적 시각으로 보면 항상 골리앗이 다윗을 이기는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다윗은 항상 먹고 사는 문제를 빌미로 들이대는 골리앗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은 사망선고 당하는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선출직으로 당선된 공인도 이중몰입으로 고통을 겪지만 이들은 일반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중몰입을 관리한다. 이들은 다윗이 설파하는 이상에 대한 약속을 공개적으로 서약하고 이 약속을 지키는 모습으로 신뢰를 쌓아 골리앗의 욕망을 제어하겠다고 선언한다. 선언이 일반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면 공직에 선출된다. 공직에 선출되었다는 것은 이들의 말을 믿고 국민이 먼저 약속어음을 발행해준 것이다. 몰론 이들 몸 속에서는 골리앗의 욕망이 약속어음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지속적으로 속삭이지만 이 목소리에 넘어가는 순간 공인으로서의 생명은 끝이다. 결국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욕망을 몰래 충족하고 약속어음에 대한 변제를 최대한 뒤로 미루며 산다. 겉으로는 다윗의 이상을 위해 사는 것처럼 포장하고 연기하는 이중생활을 한다.
코인문제로 곤혹스런 상황을 겪고 있는 김남국 의원의 이야기다. 두개의 자아가 서로 경쟁해가며 김남국 의원의 자아를 분열시켜왔다. 이 자아분열의 여파로 의원으로서의 책무에 집중하지 못해 팩트체크가 되지 않은 맥락을 벗어난 발언의 사례도 여러 번 기삿거리가 되었다. 지진이 있기 전에 많은 조짐이 나타나듯이 김남국 의원에게도 이미 자아 균열의 전조가 있었던 셈이다. 몸은 의총에 와 있는데 마음과 정신은 가상화폐시장에 가 있었다. 자아 분열이 노출될 때마다 김남국 의원은 다윗의 이상을 부르짖는 목소리를 다시 높혀왔고 목소리에 넘어간 국민들 덕택에 갈등의 이중구조가 심각하게 발칵된 적은 없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결산법인의 주식투자에 2030 세대의 비율이 32.6%이다. 실제 숫자로 463만 6725명이다.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기준 빗썸을 이용한 MZ세대(2030세대) 투자자의 투자 규모는 전체 중 62.4%에 달한다. 암호화폐시장은 한 마디로 MZ세대 판이다. 여기에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해 통상적 MZ세대는 생각할 수 없는 규모의 투자를 해왔던 정치인이 등장한 것이다.
통상 사람들의 행동을 규제하는 세 가지가 기제가 있다. 법, 상식, 가치가 그것이다. 이 중 법을 지켜 범법자로 전락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가장 널널한 기준이다. 법으로 공정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은 가장 허구적 주장이다. 법과 공정을 기치로 내건 정부가 성공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힘든 일이다. 이미 공정이 굥정이라고 조롱당하고 있듯이 법에 의한 공정은 사회질서를 만드는 가장 널널한 시작점일 뿐이다. 상식의 기준은 법이 없어도 남들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 이해관심의 충돌을 회피해가며 현명하고 착하게 사는 것이다. 법이 없어도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하며 사는 것이어서 법의 기준보다는 더 높은 기준이다. 그럼에도 가장 지키기 어려운 최고의 기준이 가치기준이다. 법과 상식에 맞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넘어서 자신이 정한 몇 가지 보편적 기준에 따라 의사결정을 다시 스크리링하는 내재적 규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상식에 어굿나지 않아도 이 가치기준을 벗어난 의사결정에 팬스를 치고 가치가 지향하는 존재목적을 실현하는 여정에서 탈로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자신이 천명한 가치기준에 어굿나는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규제를 논할 때 네거티브 규제(Negative Sanction)니 파지티브 규제(Positive Sanction)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이런 다른 규제가 작동되는 차별적 조건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네거티브 규제란 하지말라는 몇 가지를 빼놓고 다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규제방식이고, 파지티브 규제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일일이 다 정해 놓고 정해놓은 것 이외의 것을 할 경우는 규제의 칼을 들이대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은 네거티뷰 규제를 해달라고 아우성을 치지만 해주고 싶지 않아서 안하는 것이 아니다. 네거티브의 규제는 행위자가 최소한 법은 어기지 않는 최소한의 기준을 넘어서 법이 없어도 상식적으로 남을 침해하지 않고 이해충돌을 예방해가면서 살 수 있는 수준의 윤리의식이 있을 때 작동한다. 이런 윤리의식이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네커티브 규제를 허용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우리나라 기업에 네커티브 규제가 어려운 이유는 일반 국민들은 기업하는 사람들이 내재적 윤리로 스스로를 규제해서 남이 안 보는 경우에도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할 것이라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김남국의원의 이중생활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법적 경계와 공인이 해서는 안되는 상식이라는 경계의 사이 공간 즉 회색영역(Slippery Slope Zone)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변호사이자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상식적으로 해서는 안되는 책무를 벗어난 행동을 했다. 국회의원만이 가질 수 있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한 거래로 자신이 대변하던 MZ 세대의 이해관계 충돌을 침해해 공정성 시비도 일으켰다.
윤리적 자기규제가 작동되지 않았던 점은 김남국 의원이 평소 자신이 목에 칼이 들어가도 지켜야 할 가치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있었어도 이들이 겉은 화려한 플라스틱 가치였기 때문이다. 이 플라스틱 가치를 통해 구현하려는 김남국 의원의 사회에 대한 열망과 이데올로기도 허구였기 때문이다.
아직 충분히 가진 것을 축적하지 못한 일반 MZ 세대에게 공정성은 가장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자 뜨거운 감자다. 대한민국의 정치적 지각변동을 일으켰던 사건의 중심에는 항상 MZ 세대의 공정성 이슈가 자리잡고 있다. 정유라, 조민, 정순신 아들 등이 부모가 대리인으로 나서서 공정성 이슈에 불을 지폈다면 김남국 의원은 MZ 당사자가 주인공으로 가담한 더 심각한 공정성 침해사건이다.
이준석 전대표가 공정성 이슈를 제기해 여성 남성 MZ 세대 갈라치기에 성공해 집권에 성공했다가 정치공학을 굴리던 속마음이 들켜서 퇴출된 쓰라린 경험이 있다. 국민의 힘에 이어서 김남국 의원의 쇼로 민주당도 MZ 세대에게 퇴출된 셈이다. 미래에 대한 통찰이 없는 우리나라 기성 정치가 미성숙한 MZ 정치인들에게 MZ 정치를 맡겼다가 난동에 휩싸인 사건이다. 결국 기성정치는 MZ 세대에게 해고당했다.
잃어버린 신뢰를 값싼 정치공학적 술수로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MZ 세대의 마음을 다시 돌리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불끄기 방식의 소방수 혁신이 아닌 국가의 존재목적과 MZ가 주인이 될 미래의 더 평평하고 공의로운 운동장에 대한 근원적이고 파괴적인 혁신이 요구된다. 기성정치는 신뢰 회복을 위한 뼈를 깍는 자기 혁신이 시급해졌다. 민주당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김남국 구하기는 시대착오적 부메랑이 되어 민주당을 전멸시킬 것이다. 위험천만한 전략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켜야 할 미래 가치와 존재목적에 대한 사명에 의해서 소구되지 못한 법(Law), 상식(Common Sense), 공정(Fairness)은 절대로 공의로운 정의(Righteous Justice) 사회를 만들어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