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7-15 08:41
[N.Learning] 삶을 환원한다면 무엇이 남을까? 이야기에 대한 기억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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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환원한다면 무엇이 남을까?
이야기에 대한 기억
몇 일전 아들과 이야기 중 과거 아들이 초등시절에 겪었던 어떤 사건의 경험을 상기시켜려 했다가 실패했다. 나는 여전히 그 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아들은 사건의 실마리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유의미한 사건의 경험이어서 아직도 기억의 일부를 장악하고 있는데 그 사건에 대한 체험이 아들의 머리 속에는 말끔하게 지워져 있었다. 그 당시 유의미한 사건을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인 시간과 돈과 노력이 말끔하게 지워진 셈이다.
물론 아들의 머리 속에서 그 사건은 잊혀졌겠지만 그 사건은 다른 사건 속으로 녹아 들어가서 더 큰 사건에 대한 기억을 남겼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이 점에서 사건이 전부 무의미하게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자위해보기도 했지만 기억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허망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지금 당장 우리로부터 살과 뼈와 장기와 모든 것을 제거하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기억 밖에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 결국 인지심리학이 그렇게 기억에 대해서 공을 들여 연구하는 이유다.
인간이 기억하는 방식은 컴퓨터의 메모리의 기억 방식과는 다르다. 인간은 기억을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춘 이야기 형태로 저장한다. 또한 기억 속 이야기는 항상 자신이 주인공이 된 이야기를 중심으로 저장된다. 우리 아들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건을 기억하지 못했던 이유는 아마도 자신이 그 사건에서 충분히 주인공이 되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지심리학을 행동주의 경제학에 적용해 심리학자로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던 카네만은 기억하는 자아와 경험하는 자아가 다르다고 주장한다. 또한 행복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 저장된 이야기의 구조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았다. 행복은 기억하는 자아가 어떤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는 지의 기억구조에 의해서 개별적으로 결정된다는 이론을 폈다.
카네만에 의하면 행복은 기억 속에 기록된 이야기의 구조에 의해서 결정된다. 미천하게 태어나서 왕으로 삶을 마감했다면 누구나 그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결론을 내릴 것이고 왕으로 태어났는데 거지로 삶을 마감했다면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고 기억할 것이다. 결국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는 이야기의 기승전결 중 결론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보았다.
자신의 행복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고 전제한다면 행복은 지금까지의 기승전의 스토리를 이어서 어떤 해피엔딩을 가진 결말로 마무리할 것 인지에 달린 문제다.
이런 이야기로 저장되는 기억의 원리에 따르면 가장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기억하는 스토리에는 세 가지요소가 있다.
첫 번째는 자신이 주체적으로 산 기승전결의 스토리의 에피소드를 풍성하게 가지고 있는 지다. 기억은 자신이 주체적 주인공으로 세워져서 경험한 사건을 중심으로 기억한다. 따라서 삼인칭 관객으로 참여한 대부분의 사건에 대한 경험은 자연스럽게 잊혀진다. 주인으로서의 삶을 산 에피소드가 기억의 양이다.
세상이 부여한 역할과 직책을 넘어 주인으로 산 경험이 없다면 살았던 기억은 그냥 컴퓨터에 저장된 기억처럼 잠시 남아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소실된다. 본인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주장하지만 어떻게 열심히 살았는지 이야기해 달라고 주문하면 할 이야기가 없다. 주인의 삶을 살지 않았던 사람은 존재자체가 불분명한 사람으로 전락한다. 한번도 주인으로 산 경험이 없어서 존재 자체에 대해 의심을 받는 사람은 행복에 대해 논하는 것자체가 불가능하다.
둘째,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에 대한 길이가 길다. 왜냐하면 자신과 경쟁하던 사람이 일 년의 기간을 두고 기승전결의 스토리로 자신이 이긴 것으로 결말을 맺었다면 시간의 길이가 더 긴 사람은 일 년에 한 달을 더 보태서 지금까지 경쟁자가 쓴 기승전결의 스토리의 결말을 전의 스토리로 바꾸고 자신만의 더 나은 결론의 스토리를 구성해서 더 행복한 결말을 구성해낸다.
대부분의 경우 삶의 종지부는 임의적으로 설정된다. 참가자 모두가 끝났다고 선언하지 않으면 게임이 끝난 것이 아니다. 승자는 시간의 길이를 더해 삶의 기승전결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마디를 마무리하고 이 기승전결을 지룃대로 삼아 또 다른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춘 해피엔딩의 스토리를 지속해나가는 방식으로 행복을 지속가능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삶의 매듭과 매듭을 이어가며 자신의 존재목적의 실현이라는 결말까지 연결시킨다. 존재목적이란 우리에게 가장 먼 미래인 죽음의 순간 자신을 통해 변화될 세상에 대한 약속의 내용이다. 존재목적은 시간상으로 본인이 살 수 있는 가장 먼 시간을 가정하고 도출한 약속이다. 존재목적을 각성했다는 것은 사는 시간의 범위을 죽음의 순간까지 확장했을 뿐 아니라 세상이 변화하면 이 변화한 세상에 갇히지 않고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약속으로 약속을 공진화 시킨 것이다. 존재목적을 각성했다는 것은 지금 전개되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가서 세상을 초월적으로 보는 눈을 제공한다. 초월한다는 것은 삶의 결론을 다시 더 높게 쓴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런 과정이 지속된다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속가능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우리에게서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이야기로 기억되는 자신이라는 점에서 치매는 삶에서 가장 무서운 형벌이다. 치매 환자들에게는 기억하는 자아가 사라지고 경험하는 자아만 존재한다. 경험하는 자아의 소중한 경험이 기억으로 축적되지 못하여서 같은 경험을 반복해가며 살아간다. 치매는 시지포스의 돌굴리기 형벌이다.
젊었을 때 비교적 기억력이 좋았던 나도 요즈음에는 보았던 영화 제목을 기억하지 못해 또 보는 경험을 한다. 경험하는 자아가 기억하는 자아와 서로 교류하지 못해 생긴 형벌을 받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