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7-15 08:45
[N.Learning] 반기업, 반리더 정서에 대한 오해 정당성의 등고선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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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업, 반리더 정서에 대한 오해
정당성의 등고선
살아 있는 생물인 사람이나 리더나 기업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큰 영향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동료가 웃고 있으면 옆에 동료는 무의식적으로 따라 웃지 않을 수 없다. 따라 웃게 되면 몸에서 웃음과 관련한 호르몬이 분비되어 기분이 좋아진다. 동료가 슬픈 표정을 짓고 있어도 기분은 전염된다. 이처럼 일반인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는데 리더는 존재 자체로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 기업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살아서 존재하는 것들이 자신 이외의 존재에 미치는 영향력을 경제학에서 외재성(Externality)라고 부른다.
인간이 다른 존재에 미치는 외재성은 긍정적일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한 존재가 미치는 긍정적 외재성의 총량에서 부정적 외재성의 총량을 뺀 값이 존재의 정당성(Legitimacy)다. 뺀 값이 양이면 선한 영향력, 음이면 악한 영향력이다. 선한 영향력은 그 존재가 우리와 같이 공존해도 되는 지를 결정하는 존재 정당성의 원천이다. 강한 정당성을 인정받으면 선한 영향력의 원천으로 존재감이 커지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인식된다. 결과적으로 정당성은 그 존재가 지구와 공동체에서 활동을 해도 되는 지에 대한 라이센스다.
기업에게도 정당성은 비즈니스의 라이센스다. 법적으로 합법이어도 구성원들에게 높은 긍정적 외재성으로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구성원들은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사업하기가 녹녹치 않다. 진성리더와 훌륭한 기업은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성원이 모두 공인하고 있어서 이들의 활동은 공개적으로 지지 받는다. 이런 기업이 진행하는 모든 거래에 마찰력이 없다. 거래비용이 들지 않는 회사다.
한 조직의 중심 리더가 부정적 외재성의 총량이 더 크다면 조직은 한 가운데 쓰레기 장 하나를 유치하고 있는 셈이다. 뛰어난 구성원들이 이 악취 나는 쓰레기장을 피해 회사를 떠난다. 회사를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결국 이 악취를 견뎌가며 일을 하게 되고 이 악취와 피곤은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에 반영되어 고객에게 전달된다. 결국 감동이 없는 제품에 식상해 고객도 회사를 떠난다. 회사는 무너진다.
반대로 한 회사에 긍정적 외재성 총량이 높은 리더가 있을 경우 이 회사는 회사 안에 큰 숲 하나를 유치하고 있는 셈이다. 이 숲에서 품어져 나오는 피톤치드와 산소는 구성원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회사에 활기를 더한다. 소문을 듣고 인재들이 몰려오고 이 리더의 삶은 고객에게 제품과 서비스의 체험으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고객이 몰려오는 지속가능한 회사가 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회사가 운전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불량 부품으로 자동차를 만들다가 소비자의 고발로 강제로 리콜 시정 명령을 받는다면 회사는 부정적 외재성을 가하는 회사로 인지된다. 존재 자체가 사회를 위협하는 회사의 자동차를 마음 먹고 사줄 고객은 없다. 한때 승승장구하던 토요타 이야기다.
폰지 사기인 금융 다단계 회사는 부정적 외재성의 대명사다. 임창정까지 동원한 라덕영 발 금융 폰지 사기가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런 부정적 외재성이 뻔히 보이는 불법 금융 다단계 뿐 아니라 물건의 품질은 고정되어 있는데 비싼 광고 모델을 동원해 터무니 없는 가격을 청구하는 유명 화장품 회사는 부정적 외재성의 또 다른 타겟이다. 마찬가지로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 혁신에 써야 할 돈을 프로모션이라는 이름으로 광고에 쏟아 붓는 회사도 부정적 외재성이 큰 회사라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반기업 정서가 근거 없다고 방어전을 펼치는 기업가들은 정당성의 등고선이 차츰 상승한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풍미할 때는 기업이 망해 사회에 밑주름을 남기지 않고 종업원들의 고용을 유지해주는 것만해도 대단한 긍정적 외재성을 가진 것으로 칭송받았다. 지금은 ESG가 뉴노멀로 제시되어 이런 정당성의 근거인 긍정적 외재성의 수준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망하지 않고 이윤을 많이 남겨서 세금 많이 내고 주주에게 이익을 많이 환원하는 회사를 긍정적 외재성과 비즈니스 정당성을 가진 회사로 간주했지만 지금은 많이 다르다.
이런 회사는 정당성의 수준에서 지평 수준에서 평타를 치고 있는 회사일 뿐이다. 지금과 같은 초뷰카시대 그림의 윗주름에 해당되는 회사는 이윤을 내고 세금을 내고 고용을 유지하는 것 등의 기본을 넘어서 자연을 훼손하지 않아야 하고, 이윤이라는 명목으로 회사의 외부 이해관계자인 고객, 경쟁사, 협력업체, 지역사회의 생명과 번성을 침해하지 않아야 하고, 회사 내부 구성원들의 행복과 번성에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한다. 망하지 않고 이윤을 내는 것을 넘어 자연에 대한 외재성, 회사의 사회적 환경에 대한 외재성, 내부 구성원들에 대한 외재성의 부정과 긍정을 모두 합산한 총량값이 긍정적인 값으로 나와야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경영자가 지구가 공동운명체라는 관점으로 자연에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을 넘어 지금까지 주었던 상처를 치유하거나, 사회공동체에 준 상처를 환대하고 치유하거나, 내부 구성원들에게 상처를 인정하고 치유하는 행동을 할 수 있을 때 정당성의 윗주름을 점하는 회사임을 인정받는다. 자신들의 존재목적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ESG를 통합적으로 해결해나가지 못한다면 이런 수준의 정당성을 인정받기는 힘들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물건너간 일이다. 21세기 초뷰카시대에 그냥 망하지 않고 세금 잘 내고 법을 지키는 수준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CEO가 운영하는 회사라면 언제던지 밑주름으로 가라앉아 싱크홀로 전락하는 운명을 벗어나기 힘들다. 반기업정서에 대한 판단이 지구가 공동운명체라는 관점에서 기업이 정당한 기여를 하고 있는지로 업그레이드 된 셈이다.
지구 온난화 문제 때문에 지구가 언제 망할지 모르는 형국에 부정적 외재성이 누적되어 사람들의 타겟이 된다면 아무리 뛰어난 비즈니스 모형과 제품 서비스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지속가능성은 없는 회사로 전락한다.
주주와 경영진을 넘어 지구, 사회공동체, 내부 구성원을 가족으로 포함시킬 수 있는 회사는 회사의 고유한 존재목적에 대한 고유한 철학을 가진 회사들이다. 회사의 경계가 회사의 존재 목적에 대한 철학과 중요한 핵심가치에 의해서 규정될 수 있을 때 회사는 지구와 자연, 사회공동체, 내부구성원들도 가족의 구성원으로 초대해 환대할 수 있다. 회사의 존재목적에 대한 철학은 회사가 경영자와 주주를 넘어서 지구, 사회공동체, 내부구성원을 회사의 중요한 가족 구성원으로 포함할 수 있도록 경계를 확장한다.
경영진과 주주를 넘어서 지구, 사회공동체, 구성원을 가족으로 포함시켜 경영하고 있는 회사가 더 높은 수준의 긍정적 외재성을 함유한다. 풍전등화로 몰린 지구의 운명이 초미의 관심사가 된 초뷰카시대는 이런 철학을 가진 회사들만이 정당성에 대한 라이센스를 부여받는다. 이런 수준을 업데이트 못한다면 아무리 이윤을 많이 내도 공공의 적으로 규정된다. 지금 당장 이윤을 많이 내도 공공의 적으로 규정된 회사가 지속가능한 회사가 될 개연성은 전무하다. 이런 시대적 맥락을 반영해 최근 등산장비 및 의류회사 파타고니아는 기업의 사명을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 사업한다"로 바꾸었다.
자신의 회사가 가장 높은 수준의 긍정적 외재성으로 정당성과 지속가능성을 보장 받은 회사인지를 알아보려면 다음과 같은 상상적 실험을 해보면 된다.
"내일이 지구 멸망의 날이다. 지구 구하기 위원회에서 지금까지 지구의 DNA를 구성하고 있는 기업들 중 소수를 화성으로 대피 시켜서 상황이 좋아지면 지구의 다시 복원하는 미션을 논의하고 있다. 핵심은 화성으로 이주할 우주선 자리는 한정되어 있어서 어떤 회사를 우주선에 탑승 시킬지 논의 중이다. 본인의 회사가 우주선의 자리를 허락받는 회사로 선정될 기술적 역량과 지구에 대한 철학은 있는가? 본인의 회사가 선정될 개연성은 어느 정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