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7-15 08:53
[N.Learning] 회의가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조직의 재부스팅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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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조직의 재부스팅
(사)한국조직경영개발학회 산하 춤추는 짜라투스라 특강에서 손가연 도반께서 최근에 번역한 책 <부스팅 Boosting>에 대한 특강을 진행해주셨다.
초뷰카시대(Hyper VUCA)는 변화와 위기가 상수인 시대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업이나 리더도 조금만 한 눈을 판다면 모두 특이점을 향해 치닫는 변화의 국면에서 길을 잃게 마련이다. 초뷰카시대는 길 잃음이 시대의 본질이 된 시대를 지칭한다. 길을 잃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자신의 나침반을 꺼내 길 잃은 지점을 찾아내고 구성원과 새롭게 변한 시대의 지도를 그때 그때마다 애자일하게 그려낼 수 있는 지가 초뷰카시대의 기업이나 리더의 핵심역량이다.
책의 도입부에서는 일본 회의문화에 대한 분석을 통해 왜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일본이 고유하게 만들어낸 회의의 목적은 카이젠 즉 개선이었다. 일본은 개선을 목적으로 한 회의 플랫폼을 통해 선진국가에 도달했다. 하지만 시대가 초뷰카시대로 변했음에도 개선만을 외치는 회의는 시대적 맥락과 동떨어져 회의를 위한 회의에 갇히게 만들었다. 결국 고객의 고통을 해결해서 고객가치를 선도해야하는 목적을 잃고 회의는 더 보수화되고 전문화 되어 자신 속에 갇혀버렸다. 회의가 방향을 상실하고 표류하는 동안에 30년이 흘렀다. 초뷰카시대 모든 것이 길을 잃은 형국에서 회의도 예외는 아니었다. 개선을 넘어 회의의 목적을 시대에 맞게 공진화 시키지 못한 것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상징적으로 설명한다.
삼성의 고 이건희 회장은 1996년 디자인 경영 선언을 통해 삼성의 미래 플랫폼을 구축해서 지금 삼성의 기반을 만들어냈다. 이건희 회장이 디자인 경영을 착안하게 된 계기는 그 당시 잘나가던 일본의 살아 있던 회의 방식에 대한 각성체험을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의 밴치마킹 회사로 소니를 염두에 두고 자주 방문하고 있었다. 어느날 이건희 회장을 놀라게 한 소니의 회의방식을 목격한다. 삼성의 회의 방식과는 너무 다른 창의적이고 생산적 방식이었다. 회의를 주제하는 사람이 회의를 생산적이고 창의적으로 이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이 주재자에 대해 탐문해 보았다. 이건희 회장을 놀란 것은 회의를 주재하던 사람이 놀랍게도 엔지니어가 아니라 디자이너였다. 그당시 삼성에서 디자이너들은 엔지니어의 시녀로 제품 개발의 끝 단에서 외형을 멋지게 하는 소소한 일을 담당하고 있는데 소니는 달랐다.
소니에서 디자이너가 회의를 주재하는 이유는 디자이너가 물건의 외형도 마무리하지만 고객의 고통을 최종적 문제해결의 과제로 생각하고 제품개발 전 과정에 녹여내기 때문이다. 제품개발의 전체적 관점을 잃지 않고 개념화시키는 능력과 문제를 해결한 솔루션의 전체적 그림을 그리는 비쥬얼라이제이션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엔지니어가 부분으로 조각 내서 기능은 뛰어나지만 전체를 놓치는 문제를 디자이너들이 해결하고 있었다. 전체적 개념을 놓치지 않는 솔루션, 기능을 통합하는 전체적 미적 마무리를 통해 고객에게 전달해야 할 전체적 가치가 부분으로 분절되어 파손되는 것을 막고 있었다.
한 마디로 디자이너들은 엔지니어와 달리 전체 고객의 통증을 해결하는 목적의 관점을 놓치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에서 회의가 회의로 끝나는 이유를 파악하고 1996년 디자인 경영을 경영전략으로 채택해서 지금의 삼성전자의 기반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삼성전자가 최고의 번성을 누리던 시기가 바로 이건희 회장이 선도했던 디자인 경영시대였다.
책에도 설명하듯이 회의는 회의의 목적을 잃은 순간 회의를 위한 회의로 표류한다. 회의는 회사의 근무시간 중 가장 시간 비중을 차지한다. 회의가 목적을 상실하고 표류하는 회사는 설사 장부상으로는 흑자여도 결국 적자를 면치 못하는 회사로 죽어간다.
리더는 왜 회의의 목적을 잃고 표류하게 될까?
가장 큰 이유는 전체적 관점 즉 회의의 목적을 잃었기 때문이다. 각 전문부서는 자신의 전문적 문제를 회의를 통해 해결하는 동안 이런 해결이 다른 부서의 전문성과 어떻게 결합해서 고객의 가치로 전달되는지 전체적 관점을 놓친다. 부서의 회의라도 항상 회사의 전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회의로 정렬되면 문제가 완화되지만 전략적 목적도 전체적 관점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전략적 목표를 100% 달성했다하더라도 이 달성이 고객의 아픔을 해결해 고객가치를 창출한다는 관점을 놓치면 모든 회의는 결국 회의를 위한 회의로 전락한다. 책에서 강조하는 궁극적 목적이 왜 중요한지의 이유다. 책은 뛰어난 전문적 문제해결도 고객의 통증을 해결해준다는 궁극적 목적에 기여하지 못할 경우 회의를 위한 회의로 표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한 왜 회의를 통해 고객의 통점을 해결해주어야 하는지 자신들의 존재목적을 놓치면 회의를 시대에 맞춰 공진화시키는데 실패한다고 경고한다. 30년 전 일본의 회의가 생산적이었으나 지금은 이런 공진화를 놓치고 잃어버린 30년을 초래했다.
회의의 부분적 목표함수인 아이디어 교류를 야구의 캐치볼로 비유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본인보고 비유하라면 야구보다는 축구에서 공을 주고 받는 예가 더 적절해 보인다. 축구는 공을 서로 패스해가며 골을 넣는 것이 목적이다. 아이디어를 가진 선수가 공을 몰고 가다 골과 관련해 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선수가 눈에 들어오면 공을 그 선수에게 신속하게 패스해야 한다. 이처럼 문제해결(골)을 위한 아이디어 패스의 주고받음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팀이 축구경기에서 승리하게 되어 있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가 있어서 혼자 드리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할 경우 반드시 지는 팀으로 전락한다.
한 마디로 초뷰카시대 회의는 목적을 염두에 둔 협업의 방식이 작동하는지가 관건이다. 목적을 염두에 두고 서로 돕는 것은 협업이다. 목적을 잃은 사람들이 서로 살아남기 위해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은 협동이다. 책은 협업의 방식으로 회의가 운영되고 이를 통해 협동이 자연스럽게 생성될 때 제대로 된 생산적 회의가 달성된다고 설명한다.
회의의 존재목적은 조직의 전략적 목표라는 내부목표를 넘어 고객의 통점을 해결해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초뷰카 시대의 리더라면 한 발 더 나아가서 이 통점을 왜 우리 회의를 통해 달성해야 하는 지의 존재목적을 염두에 두고 회의를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존재목적을 살려낸 회의가 관료제로 죽어가는 조직을 다시 부스팅(활성화) 시키는 비밀인 셈이다.
회의 뿐 아니라 이런 존재목적을 놓칠 경우 초뷰카시대의 모든 행위는 다 길을 잃고 표류할 운명에 처한다. 이건희 회장이 소니의 회의방식을 발전시켜 회사를 살려냈던 것처럼 회의가 존재목적을 찾아서 이것을 실현시키기 과정으로 진행될 때 회의는 구성원들의 정신과 혼과 마음을 부스팅하는 강력한 기제로 작동한다.
시의적절한 시점에 좋은 책을 번역해주신 손가연 도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