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없는 오지랖>은 본인이 자문을 해주는 한 회사의 직원들이 협업하는 방식이다. 아메바 조직을 지향하는 이 회사의 회장께서 틈날 때마다 직원들에게 독려하는 협업 전략이다.

이 회사는 신입사원을 뽑으면 1년간 일을 시키지 않고 다른 직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그냥 지켜보라고 시킨다. 정의된 역할이 없기 때문에 여기저기 기웃거려가며 어떤 국면에서 오지랖을 부려서 1년 후 자신의 시작할 역할의 초기값으로 삼을 것인가를 연구한다.

<대책없는 오지랖>이라고 말은 우스광스럽게 표현하지만 이런 협업방식은 대기업에서 일하는 방식인 관료제적 전문가 집단방식에서 생기는 과정 손실을 최소화 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각 영역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을 모두 모아 놓은 집단이다. 마케팅을 담당하는 부서도 최고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고, 재무, 인사, MIS, 유통, 마케팅 모든 부서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였다. 문제는 이들 각 부문에서 전문가들이 자신의 일을 All A 플러스 점수로 해낸다 하더라도 이런 각 기능에서의 결과가 회사의 서비스와 제품에 녹여져서 고객의 아픔을 해결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결국 최고 전문가들이 포진한 이 회사의 경영은 C 혹은 D 학점인 셈이다. 물론 회사의 CEO가 이런 성과로 귀착되지 않도록 고객을 생각해가며 조정을 하겠지만 CEO 혹은 경영진들만이 모여서 조정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제대로 일하는 회사라면 각 영역의 전문가들이 고객의 아픔을 최종 목적함수로 생각해가며 서로 오지랖을 부려가며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조율하는 협업에 성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대책없는 오지랖 전략은 베스트 셀러였던 Malcolm Gladwell의 책 <데이빗과 골리앗>에도 등장한다. Gladwell은 언더독인 데이빗이 골리앗을 이길 때 쓰는 일반적 전략이라고 소개한다.

이 책에는 다양한 데이빗 언더독 사례가 나오지만 나에게 가장 인상적 사례는 캘리포니아 실리콘벨리 무명 소녀 농구단 이야기다. 이 팀은 오합지졸의 동네 팀이었으나 결국 대책없는 오지랖이라는 나름의 협업방식으로 전문가 조직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과정 손실을 제로화해서 국가를 대표하는 농구팀이 된다.

이 팀은 무명팀이어서 명성이 있는 팀처럼 각 포지션에서 최고의 전문가 선수를 영입할 수 없었다. 무명 선수로 구성된 이 팀이 동원한 전략이 전 코트 압박 All Court Press 전략이다. 대부분의 농구에서는 수비 시 상대가 공을 몰고 자신의 코트로 넘어오기 전까지는 그냥 놔두었다가 자신들의 코트로 넘어오면 방어를 시작한다. 이 팀은 이런 전략을 허점을 꿰뚫고 공이 상대 코트에 있을 때부터 압박을 가했다. 자신들은 엘리트 선수가 없는 언더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공이 상대편 코트에 있을 때부터 압박을 가해 공을 악착같이 뺏었다. 공격을 할 때도 공격수와 수비수를 구별하지 않고 전원 공격에 가담했다. 점수를 얻고 실점하지 않는다는 한 가지 팀 목적만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역할을 뛰어 넘어가며 협업했다. 자신 팀원 중 한 사람이 부상 등으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하면 팀원 누구를 가리지 않고 대책없이 나서서 이 역할을 메꿔가며 협업하게 했다.

이런 전 코트 압박 전략을 사용하기 위해서 각 선수는 자신의 역할에서도 최고의 기량을 훈련했지만 다른 선수가 사정에 의해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 이 선수에 버금가는 역할도 모두 훈련해서 소화했다. 이 무명 팀의 전코트 전략이 먹혀들어 미국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조직이론에서는 구성원 모두가 중요한 목적을 공유하고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서로의 전문적 역할을 크로스로 훈련해서 조직의 불확실성에 대비할 수 있는 버퍼를 만들어 놓는 것을 조직 중첩성(Organizational Redundancy)라고 부른다. 중첩성이란 문제가 생길 상황에 대비해서 자신의 역할을 넘어서 서로의 역할을 중복해서 학습해 저장해 놓는 것을 뜻한다. 조직 충첩성이 가동되는 회사들만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도 조직을 아메바 조직처럼 작동시켜 과정손실을 최소화한다.

중첩성 전략은 아메바 조직의 협업 뿐 아니라 모든 이기는 스포츠 팀의 공통된 협업 전략이다. 프로 축구에서도 공격수와 수비수가 구분되어 있지만 전체의 흐름을 파악해가며 자신의 역할을 수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역할만 잘하는 선수를 모아 놓은 팀은 오합지졸 팀이 된다. 골을 넣고 실점을 막기 위해 상황에 따라서는 공격수도 수비를 해야 하고 기회가 나면 수비수도 공격을 할 수 있어야 이기는 아메바 팀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 선수는 자신의 주요한 역할에서 최고의 전문적 기량을 보이지만 다른 역할에서도 수준 높은 기량을 보이고 상황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수정해가며 전체를 보고 게임을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대기업의 관료적 전문가 조직의 관점에 매몰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각 선수는 모두 대책없는 오지랖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역할의 충첩성이 준비되어 있어도 대책없는 오지랖이라는 협업전략이 먹혀 들어가기 위해서는 조직의 존재목적이 구성원에게 공유되고 심각하게 받아 들여지는 것이 필수적이다. 존재목적이란 스포츠 게임에서는 점수를 취득하고, 실점을 막는 것이지만, 회사에서는 자신의 제품과 서비스로 고객의 아픔을 해결해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가치창출이 다른 회사가 아닌 자신 회사를 통해서 달성되어야 하는지의 이유이다. 존재목적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면 전문적 역할의 중첩성은 협업이 아니라 국지적 협동으로 끝난다.

최고의 자동차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회사에서 자동차의 부품을 수입해서 조합한다고 생각해보자. 험지주행을 위한 4동구륜 시스템은 랜드로바를 차용하고, 운전대 설계는 포르쉐에서, 엔진시스템은 페라리에서 가져오고. 연비시스템은 랜드로버를 차용하고, 자동차의 내장 디자인과 승차감을 위해서는 롤스로이스 시스템을, 전자장치는 마세라티, 동력전달 장치는 람보기니, 브레이크는 볼보 브레이크를, 감성적 디테일은 벤츠에서 빌려오고, 배기장치는 벤틀리에서 빌려와 차를 조합한다면 아마도 최고의 차가 만들어지기보다는 중급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뻔한 차가 만들어질 개연성이 높다. 차의 존재이유를 설명하고 각 부품을 통합해주는 자신만의 철학이 반영된 브랜딩이 없기 때문이다. 각 부분에서는 최고의 수준을 구사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그저 그런 회사가 운영되는 모습과 비슷하다. 조직의 긍극적 존재 목적을 염두에 둔 협업이 아니라 최고의 전문가들이 자신이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협동하는 회사들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전문가들의 협동이 아니라 목적을 공유한 협업만이 최고의 아메바 조직을 만든다.

최고의 자동차가 만들어지려면 자동차 체험을 담을 수 있는 회사의 존재목적을 중심으로 각 부품이 나머지 부품과 통합되고 연결되도록 대책없는 오지랍이 발휘되어야 하는데 그냥 최고의 부품들만 모아 놓은 그저그런 차를 완성한 것이 된다.

대책없는 오지랖이란 협업 전략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협업하는 방식에는 정해진 규칙이 없고 그때 그때 상황 봐가며 가능한 최고의 가능한 대안의 협업을 운용하는 전략이다. 아메바 조직에서 발생하는 협업의 효율성은 오직 협업을 통해 정해진 공유된 목적을 달성했는지가 결정한다.

전 직원이 조직의 존재목적을 염두에 두고 대책 없는 오지랖의 협업방식으로 일한다면 이 회사의 모든 직원은 사장급 직원인 셈이다. 월급은 직원 월급을 받지만 직원 대부분이 사장급으로 일하는 회사가 존재한다면 효율성의 측면에서 어떤 회사도 이 회사를 능가할 방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