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0-09 15:08
[N.Learning] 관종들의 나르시즘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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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종들의 나르시즘 전쟁
Celebrity 드라마
최근 넷플릭스 비영어부분 1위로 떠오른 드라마 Celebrity(셀럽)는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관종들의 나르시즘 전쟁을 다루는 드라마다. 사회심리학적으로도 연구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드라마다.
SNS는 자신을 잃고 헤매던 현대인들을 모두 관종으로 개종시켰다. 관종 중 영향력이 쎈 관종은 셀럽으로 분류된다. 영향력(인플루언스)을 결정하는 것은 활로우어의 숫자가 핵심이다. 관종 중 어느 급간의 활로워를 확보했을 뿐 아니라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 복권까지 동원할 수 있어야 진정한 셀럽이 된다.
드라마는 가빈회라는 성공한 관종이 모인 셀럽 클럽의 행태를 집중 조명한다. 이 가빈회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 드라마의 주인공 서아리다. 이 드라마는 서사를 서아리와 가빈회의 한채희의 대결구조로 이끌고 가고 있지만 관종 전쟁의 본질은 나르시즘 전쟁이라는 점에서 진짜 전쟁은 서아리와 진재희 사이의 전쟁이다. 가빈회라는 관종 끝판왕들이 모인 클럽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사람이 활로워와 부모로부터 유전자 복권까지 물려받은 진채희이다. 유전자 복권을 타고나지 못하면 관종 클럽에서도 육두품 취급 당하는 수모를 벗어날 수 없다. 드라마에서는 한채희가 아니라 진재희가 셀럽 나르시즘의 끝판왕이다. 서아리는 이런 이런 나르시즘의 유혹에서 벗어나 진아(Authentic Self)를 찾아 이들과 싸우는 영웅인 셈이다.
희랍신화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나르시즘이란 호수에 비춰진 자신의 외모에 도취되어 정작 내면의 진실된 자신(Authentic Self)를 잃어버린 사람이다. 호수라는 거울에 비춰진 매혹적인 자신의 외모에 빠져 자신을 칭송하고 있는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자신을 매혹적이라고 생각하고 칭송하고 우상화한다면 사회적 나르시스트가 된다. 혼자서 자신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수동적 나르시즘에 빠진 경우지만 무슨 이유인지 다른 사람도 호수에 비춰진 자신을 매력적이라고 따르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회적 나르시스트가 된다.
현대사회에서는 SNS가 호수에 비춰진 자신을 모습을 확인하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활로워 숫자가 많을수록 나르시스트가 될 개연성은 높다. 활로워와 어느 정도 활로워를 거느린 관종들이 결국 나르시스트를 키우는 숙주가 된다. SNS 활로워를 획득해 인플루언서의 지위에 오른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 나르시스트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따르는 관종이 없다면 그냥 자신의 모습을 즐기는 관종일 뿐이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나르시스트가 되지는 못한다.
어떤 사람들이 사회적 나르시스트가 될 개연성이 있을까? 상대의 정서를 파악하고 읽고 인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공감(Empathy) 능력은 뛰어난데 정작 상대와 자신의 고통을 행동으로 해결하려는 성향인 긍휼감(Compassion)이 떨어지는 사람이 나르시스트로 전락할 개연성이 가장 높다. 공감과 긍휼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공감은 상대의 정서를 인지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고 긍휼은 상대의 정서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아픔을 같이 느끼고 이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행동으로 나서는 성향이다. 공감능력은 뛰어나지만 긍휼감이 떨어지는 사람이 상대를 정서적으로 이해하고 공감능력을 발휘해서 상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부모로 부터 받은 유전자 복권을 자신을 어필하는 매력의 미끼로 삼아 상대를 포획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한다. 마치 감성팔이의 끝판왕이 되어 고객을 포획하지만 포획당한 고객의 주머니를 터는 것에 혈안이 된 광고주들이 전통적 나르시스트지만 관종클럽의 셀럽도 만만치 않다. 이들도 전통적 광고주의 사업모형을 그대로 벤치마킹한다. 실제 셀럽도 포획된 활로워를 대상으로 물건을 판다.
사회적 나르시스트는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는 공감능력이 뛰어나다. 이런 정서적 이해를 기반으로 상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모든 것을 다줄 것처럼 무한 사랑의 폭탄을 퍼붓는다. 일단 이런 사랑의 무한 폭탄으로 저격당해서 나르시스트에게 마음을 내어주고 자신 약점까지 보여주면 나르시스트는 이런 약점을 역으로 이용해서 포획하여 감옥에 가두고 조종한다. 사회적 나르시스트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다. 교주처럼 군림해가며 자신에게 포획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교묘하게 막아 자신의 욕구를 챙기는 종속물로 만든다. 사이비 종교의 교주와 사회적 나르시스트는 같은 범주의 사람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누구보다 뛰어난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상대의 고통을 사랑하는 긍휼은 없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고통조차 자신 것으로 사랑해서 자신답게 키우는 긍휼이 없는 사람들이 사회적 나르시스트나 관종 셀럽 클럽의 우두머리다.
관종과 셀렙이 지배하는 SNS 사회에서 어떻게 자신을 보호하고 진아(True Self)를 지켜가며 살 수 있을까?
술취한 사람이 집 앞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잃어버렸다. 술꾼은 술에 취해서 집 옆에 있는 가로등 밑에서 열쇠를 찾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이 묻는다. 뭐 하시는 거지요? 열쇠를 찾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잃어버렸나요? 집앞에서 잃어버렸는데요. 그런데 왜 역기에서 찾고 있나요? 여기는 가로등이 있어서 밝잖아요.
관종은 술에 만취해 가로등이 없는 집 앞에서 자신을 잃은 사람이다. 관종은 잃어버린 자신을 가로등인 셀럽 밑에서 찾는다. 이유는 셀럽이 가로등이어서 밝기 때문이다.
예수도 나병환지와 앉은뱅이를 긍휼로 일으켜 세우며 이들이 자신을 우상화된 관종으로 믿고 따르는 것을 경고했다. 기적을 행하고 병을 치유하는 은사에 대한 체험은 병자들이 예수에 대한 우상화된 관종적 믿음이 아니라 성령에 대한 환자 자신의 믿음이 만든 것이라 가르쳤다. 이 성령에 대한 병자 자신의 믿음이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음을 알라고 가르쳤다. 이들이 예수 자신을 우상화 시켜가며 관종으로 따르고 추종할까 두려워던 것이다. 현대 교회는 살아 생전 예수의 경고를 무시하고 예수를 우상화된 관종으로 세우고 교회에서 장사 지내는 일을 자처해왔다. 어느 순간 교회가 예수의 무덤으로 전락했다. 예수가 부활한다면 드라마 셀러브러티에서 서아라가 했던 대사를 칭찬할 수도 있다 "나를 죽인 살인자는 나의 활로워였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아픔을 스스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성숙되어짐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외모, 지능, 재능 만을 사랑하는 사랑의 편애에서 벗어나 자신의 아픔을 직시하고 아픔조차 사랑할 수 있는 긍휼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어느 순간 우리도 가로등 밑에서 자신을 찾는 관종이 된다.
사회적 나르시스트들의 숙주로 포획 당하는 삶을 조심해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자신보다 잘 알고 뜬금없이 사랑폭탄을 퍼붓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포획이 확인되는 순간 관종과 셀럽들은 얼굴을 바꿔 포획당한 사람들을 나르시즘의 도구로 전락시킨다.
거울을 닦는다고 자신의 모습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모습을 닦아야 거울에 비춰진 자신도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