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카눈의 북상으로 어수선한데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플랫폼인 전철역에서 누구든 상관없이 무작위로 살해하겠다는 위협이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심지어 어린이들도 이런 가짜 위협에 밈과 숙주로 동원되고 있다. 남성을 향한 여성의 살해 위협도 보고되고 있다.
도대체 먹고 살만하다는 대한민국에 어쩌다 이런 역병이 번지기 시작했을까?
사회학의 설립자 중 한 사람인 불란서의 듈껭(Durkheim)은 이런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아노미(Anomie)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Anomie란 말 그대로 Norm이 사라진 상태를 의미하는 A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용어다. 우리 삶을 가이드 해주던 철학과 규범이 사라졌는데 시대에 맞는 의미 있는 규범이 제시되지 못해서 겪게 되는 규범의 무정부 상태를 의미한다. 듈껭은 이런 무정부 상태가 가져온 사회질서의 혼란을 아노미(Anomie)라고 불렀다. 듈껭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못해서 사회가 붕괴되기도 하지만 이런 아노미 상태에 처해있을 때 사회가 의미있는 새로운 질서를 조직해내지 못하면 사회는 영구히 무너진다고 예고한다.
듈껭이 아노미가 문제라는 것을 특정할 수 있었던 것도 전통적 이유라면 죽을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자살을 선택해 목숨을 잃은 현상을 자주 목격하면서다. 듈껭 당시 불란서에도 갑자기 자살률이 치솟았다. 당시 산업사회가 정착되어 이전 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었는데 이런 경향과는 달리 역설적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더 높아졌다. 이상하게 생각해 분석하던 중 자살하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상태가 규범이 사라진 새로운 사회의 국면에서 적응하고 살아야 할 의미를 상실한 상태인 아노미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살아야 할 의미를 상실해서 차라리 죽음을 택한 자살을 아노미 자살이라고 불렀다. 대한민국 뿐 아니라 현대인의 대부분 자살은 아노미 자살이다.
한 사회가 무너지는 전조는 갑자기 급증하는 아노미 자살이다. 듈껭이 살아서 대한민국을 진단한다면 수년 간 OECD 수위를 점하고 있는 자살률과 특히 노인과 청소년에게 급증하는 자살률을 지적할 것이다. 이 모두가 듈껭이 무너져가는 사회의 전조로 언급하는 아노미 자살이기 때문이다.
칼 융은 사람들이 특정한 고통을 느낄 때 이 고통의 가시를 다른 사람에게 외재화 시켜 희생양으로 삼는 행위를 투사라고 불렀다. 결국 지금 대한민국에 폭풍처럼 번지는 무작위 살해 위협은 삶의 의미를 상실한 무규범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다른 사람들에게 투사하는 행위다. 자신은 이렇게 의미 없이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데 정상적 삶을 사는 사람들처럼 연기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보복행위인 셈이다. 좋은 말로는 투사이지만 한 마디로 정신착란이다.
오래 전 니체도 사람들이 목적과 의미를 잃어버렸을 때 온갖 이해할 수 없는 미친 짓에 몰두하기 시작한다고 예언했다. 로고테라피을 창시한 프랭클은 사람들은 식량을 취득해 몸의 생존을 유지하지만 삶의 번성을 결정하는 것은 의미라고 설명한다. 몸은 생존을 유지해도 의미를 잃은 사람들은 이 의미에 대한 배고픔의 상태를 극복하지 못해 결국 고난상황이 오면 누구보다 쉽게 무너진다는 것을 자신을 비롯해 나치캠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사례로 설명했다.
살아 생전의 스티브 잡스도 유명한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에서 젊은이들에게 Stay Hungry, Stay Foolish하라는 조언을 남겼다. 배고픔의 상태를 의식하고 이런 배고품 상태를 의식했다면 이 배고품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 눈치보지 말고 스스로 추구해서 해결하라는 조언이다. 다른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사는 방식이 아닌 자신이 살아야 할 의미를 찾아서 근력을 세우라는 의미다. 스티브 잡스가 이야기하는 배고품은 육체적 배고품이 아니라 정신과 의미의 배고품이다. 자신만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부러워하는 남들을 카피하는 삶으로는 배고픔을 극복할 수 없다고 조언하고 있는 것이다. 의미의 배고픔을 먹고 사는 배고픔으로 착각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젊은이들이 자신이 왜 무엇 때문에 배고픈지도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종교가 이런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해 목적과 의미의 샘물 역할을 수행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종교가 과거의 성공에 빠져 시대에 맞는 샘을 공진화 시키지 못했다. 이탈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위기를 느낀 종교가 자신들이 제시하는 교리를 바꾸거나 재해석하지 말고 무작정 믿으라고 주문했다. 이런 명령에 따라 도정하기 전의 벼를 주식으로 삼고 살던 신자들이 모두 소화 불량에 걸려 복통을 호소하고 했다. 도정되지 않은 목적을 많이 먹었지만 영양 부족으로 오히려 삐쩍 마른 몸매를 간신히 부지하며 연명하고 있다. 한 마디로 교리주의는 종교의 갑질이다.
종교가 제시하는 목적이란 벼를 생산해내는 플랫폼이자 농장이다. 신자들이 해야 할 일은 여기서 수확한 벼를 자신에 맞게 도정도 하고 잘 씻어서 자신의 방법을 통해 자신의 건강한 식탁을 차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럼에도 종교가 신도수가 급감하자 자신의 문제를 보지 못하고 교리주의를 더 강조해가며 신도들에게 도정과 식탁을 차리는 과정을 공개적으로 금지하고 단속에 나선 셈이다. 목적을 가져다 자신이 나서서 소화가 가능한 식단으로 만든 것이 의미이고 우리는 이 의미를 먹고 살 것인지 죽을 것인 지를 결정한다. 이런 식탁을 만드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종교에 의지하고 있는 개인들의 몫이다. 목적은 종교가 제시하지만 이 목적을 가져다 소화 가능한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은 각 개인의 식탁인 선택과 철학의 문제다. 종교가 개인들이 건강한 식탁을 차릴 권리를 뺏고 배고픔을 호소하면 급하게 나마 스푼 피딩(Spoon Feeding)을 위한 간식을 떠 먹여주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이 의미를 찾아서 삶의 번성을 구가한 대가로 받게 되는 돈, 권세, 명예, 지위를 밥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우리가 죽을 것인지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목적을 통해 얻어낸 의미라는 주식이지 이런 부산물이자 결과물들은 아니다. 이런 결과물들은 식단의 간식이나 디저트일 뿐이다. 이런 간식과 디저트를 의미의 대용품으로 섭취하는 삶에 빠지면 고혈압이나 당뇨병 환자로 전락한다.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문제는 이런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기저질환 환자에게 사회의 건강을 책임지는 막중한 리더십 임무를 맡겼다는 점이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존경받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 위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우리 모두가 길을 잃었음을 용기 있게 인정하고 아노미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일이다. 종교, 정치, 교육, 과학, 산업, 기업 모든 분야가 초뷰카 시대에 맞는 목적의 생태계를 복원하는 일에 협업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번성은 이미 물 건넌 것이다.
한국 사회가 초뷰카시대 목적생태계를 복원하는 일에 나서기 전에 우리 개인에게도 당장 해야할 책무가 있다. 세상과 사회가 아무리 산성화되어 돌아가도 사회와 남들을 탓하기 전에 자신만의 목적의 생태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텃밭을 만들어내고 여기서 얻어낸 고유한 목적으로 자신의 배고픔 상태를 해결할 수 있는 의미의 식탁을 차리는 일이다. 자신이 처한 아노미라는 의미의 배고품의 상태를 해결해서 자신을 먼저 일으켜 세우는 것이 급선무다.
우리도 목적의 농장에서 채취한 건강한 식재료로 자신에 맞는 의미의 식탁을 차려내지 못하면 스스로에게 자살의 유혹을 보내는 아노미 바이러스에 감염된 숙주로 전락할 것이다. 사실 섬뜻한 일이다.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면 감염을 의심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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