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새는 갓 부화한 새끼들을 먹이기 위해 밖으로 날아갔다가 먹이를 구해서 돌아온다. 이 광경을 알고 있던 새끼들은 어미가 밖으로 날아가면 자신들에게 먹이를 가지고 올 것이라는 것을 안다. 이런 어미새와 아기새 사이의 루틴에 문제가 생겼다. 어느 날 밖으로 나간 어미새가 무슨 이유인지 저녁이 될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캄캄한 밤이 되었음에도 어미새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칠흑과 같은 밤에 아기새가 되어 어미를 기다리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어느 순간 머리가 캄캄해지고 의식이 혼미해질 것이다.

우리 삶에서 어미새의 역할과 아기새의 역할은 구분되지 않는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부분을 떼어서 어미새 역할을 할당하고 세상 밖으로 보내야 한다. 대부분의 어미새는 큰 문제 없이 돌아와서 안에서 기다리던 새끼를 부양했지만 어느 날 어미 새가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에게 어미새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신을 끝임 없이 밖으로 투사해야 하는 의식을 의미한다. 어미새로 투사된 의식란 지식의 생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척된 의식이므로 세상과 화해보다는 충돌을 전제한다. 투사는 대부분 자신이 해결해야할 문제를 던지는 행위다. 밖으로 투사된 어미새라는 의식이 어느 순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단단한 현실의 세상에 의해 역으로 포획되었거나 믿었던 바깥 세상이 허구로 판명되어 길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은 세상과 싸워서 장렬하게 전사한 경우보다는 세상이 변해 평상시의 이용하던 지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다.

어미새는 길을 잃고 헤메고 있고 집에서는 어미새의 의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갓 태어난 아기 의식이 있다. 캄캄한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어미 의식을 기다리고 있는 아기 의식이 겪고 있는 고통을 융은 "영혼이 캄캄해진 밤 Dark night of the Soul"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영혼이 캄캄해지는 밤을 만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굳게 믿었던 현실은 의미 없는 허구로 전환된다. 믿었던 현실이 무너져 이런 허구 속에 공허하게 사는 삶을 사회학자인 Durkheim은 아노미(Anomie)라고 묘사하고 있다. 천재지변에 의해서 강제로 목숨을 강탈당하는 것을 제외한 대부분의 자살은 믿었던 탄탄한 현실의 의미체계가 무너지는 경험인 아노미 자살이다. 아노미 자살은 간신히 천신만고 끝에 상처투성이로 살아 돌아온 어미새의 의식이 아기새에게 더 이상은 먹이를 가져올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줄 때 느끼는 절망감이 이끈 자살이다.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도 살지만 단단한 세상이 주는 의미도 먹고 산다. 음식을 공급받지 못해서 기아로 죽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현대인에게는 상당 기간 사는 의미를 공급 받지 못해서 죽을 확율은 몇 백배 크다. 사는 것이 허탈하고 의미 없기 때문에 하는 자살은 모두 아노미 자살이다.

세상이 급변하고 사회적 리더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믿었던 어른들이 사라질 때 그 사회의 아노미 자살은 급증한다. 아노미 자살은 어른들도 경험하지만 자아를 키워내지 못한 청소년들은 특히 취약하다.

우리는 의미를 찾아서 살기 위해서 먹다가 어느 순간 사는 것의 의미를 잃으면 먹기 위해서 사는 삶으로 전환된다. 이렇게 타락한 몸은 마음, 영혼과 최적화되어 건강하게 사는 것에 장애를 가져오고 이런 장애는 비만, 당뇨, 혈압이라는 기저질환을 생성한다. 몸을 유지하는 것이 더욱 힘들어지면 누구나 편하게 목숨이 끊어지는 상황을 희망한다.

조직과 조직의 구성원도 예외는 아니다. 조직의 의미체계를 제공하는 존재목적과 사명을 상실하면 조직은 살기 위해 비즈니스를 하는 생계형 조직으로 전락한다. 조직을 탄탄한 의미 있는 현실로 믿고 살던 구성원들도 어느 순간 조직의 운명에 따라 오직 생계 때문에 회사를 다니게 되고 이런 구성원들로 채워진 조직은 당뇨병, 비만, 고혈압으로 서서히 쓰러진다. 심지어 의미 체계의 제조공장이었던 교회와 종교도 세상의 변화에 따른 의미체계의 공진화에 실패하면 기저질환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종교단체에서는 가나안 교인들이나 신자들이 급증한다.

삶의 의미를 잃으면 조직이든 개인이든 교회이든 모두 아노미 자살에 노출되어 있다. 죽음은 실제 코 앞에 와서 유혹하고 실제 죽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단지 결단의 문제일 뿐이다. 세상은 우리와 독립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이에 맞춰 자신과 조직이 살고 사업하는 의미를 공진화 시키지 못하면 어느 순간 개인과 조직 구성원들은 죽지 못해서 사는 삶으로 추락한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건강하다는 것은 밖으로 보냈던 의식이 충분히 필요한 의미를 발견해 안으로 다시 들어올 수 있는 근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강한 의미를 찾아서 밖으로 나가는 근력과 건강한 의미를 발견해서 안으로 가져오는 근력이 균형되게 발전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반기에 어미가 안으로 반드시 들어와야 하는 이유는 돌봐야할 아기가 있기 때문이겠지만 아기가 성장하면 아기는 성인이 되어 어미와 함께 협업으로 세상의 일을 처리하기 시작한다. 안으로 깊이 뛰기 할 수 있고 밖으로 멀리 뛰기 할 수 있는 자아가 완성된 것이다. 안으로 깊이 뛰기 하는 자아와 밖으로 멀리 뛰기하는 자아의 내러티브가 서로 통합되어 있다는 것은 진정성(Authenticity)의 정의에 해당하는 목적있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적 자아이든 조직의 개별적 정체성이든 충분히 더 높은 목적을 상상하고 달릴 수 있다면 달리는 자아의 다리는 어느 순간 날개로 전환되어 자유로운 비상으로 세상을 더 높은 곳에서 볼 수 있게 된다. 융이 설명하는 초월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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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달리는 사람의 그림에서 배경을 중심으로 보면 이 사람의 달리는 모습은 달려 나가는 모습일 것이다. 그림에서 배경을 무시하고 달리는 사람에 집중하고 있으면 이 사람의 모습은 갑자기 자신에게 달려오는 사람으로 전환될 것이다. 뇌의 의식은 달려나가는 것과 안으로 달려오는 사람을 구별하지 못한다. 배경에 방점을 두고 달려나가는 근력을 훈련하는 것과 달리는 자신에게 방점을 두고 달려오는 근력을 훈련하는 것은 오직 자아가 자신에 대해 어떤 모형을 적용하고 있는지 자신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뇌를 균형되게 훈련시킬 수 있는지 영혼이 어두워지는 밤을 경험하게 할 지는 자아 정체성의 집인 정신모형을 어떻게 설계해서 운용하고 있는지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