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생물과 같아서 환경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공진화시키지 못한다면 도태된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간다면 정치생태계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정치적 다양성이다. 우리 정치를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 있는지 모르지만 건강한 정치를 위해서는 건강한 진보만큼 건강한 보수도 필수적이다. 이들이 서로에게 정치발전을 위한 스파링 파트너 역할을 해가며 정치 생태계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정치의 문제는 건강한 진보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건강한 보수는 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건강한 보수가 없다면 건강했던 진보도 반드시 타락한다.

미국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대표하는 보수를 한 분 추천해 달라고 주문을 하면 레이건 대통령을 추천하는 사람들이 많다.

레이건 대통령이 진정한 보수로 인정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싸움닭의 이미지를 가진 진보와는 달리 <따뜻한 아버지>의 이미지 때문이다. 보수는 젊은 사람들보다는 지킬 것이 많은 나이든 분들이 많다. 레이건이 따뜻하고 넉넉한 아버지의 이미지를 굳힐 수 있었던 것은 꼰대처럼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레이건은 자신의 주장을 내리고 아픈 사람들에 대한 긍휼감을 가지고 이들의 고통을 충분히 듣는데 집중했다. 레이건은 사람들의 고통을 느껴가며 소통하는 리더였다.

레이건과 대화를 해본 모든 사람들은 선입견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다른 나이 든 사람들처럼 훈계조로 자신의 말만 하고 일방적으로 말을 끝낼 것이라는 선입관이 철저하게 무너진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넉넉함과 긍휼감을 가지고 들어줄 수 있는 경청능력 때문에 재직시절 위대한 중재인 the great connector라는 별명을 얻었다. 불같이 논쟁하고 싸우던 사람도 각자가 레이건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 오면 서로에게 찾아가서 사과하며 허그를 청했다. 레이건이 재임 중 항상 하던 말이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 몸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레이건 연설문 담당이던 페기 누난은 그의 재임시절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레이건 대통령이 긴 집무 여행에서 주로 헬기를 타고 돌아오곤 했는데 그의 헬기 소리가 백악관 마당에 들리면 모든 직원들은 동시에 하던 일을 멈추었다. 그러면 직원 중 누가 다른 직원들에게 <아빠가 돌아왔다 daddy's home> 고 외쳤다. 백악관 직원들은 넉넉하고 마음씨 따뜻하고 긍휼감 넘치는 아빠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다 함께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리더십의 진정한 영향력이란 리더가 구성원의 마음 속에 들어가 이들 삶의 중요한 준거로 작용할 때 발생한다. 특히 리더의 정체성의 DNA에 해당하는 존재 목적이 구성원의 마음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리더가 물리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구성원은 마음에 심어진 목적을 수행하는 임무를 자발적으로 수행한다. 진정한 리더십이란 리더가 부재할 때 리더십의 영향력인 임재(Presence)가 작동하는지의 문제다.

리더의 임재가 작동하지 않는 조직은 어린이 놀이터로 전락한다. 리더가 출장이라고 가는 날이면 구성원들은 오늘은 어린이 날이니 신나게 놀아보자고 선언하고 논다. 리더의 임재가 작동하는 조직은 전문가의 놀이터로 전환된다. 설사 리더가 출장을 가도 리더가 자신들 마음 속 준거로 심어 놓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문성을 모아 협업한다. 리더가 돌아오면 리더가 없을 때 수행했던 과제가 온전하게 완수되었음을 설명하기 위해 리더에 달려간다. 레이건에게 달려가는 백악관 구성원들이 달려가는 마음은 하루 종인 전문가의 놀이터에서 맡겨진 사명을 달성했음을 자랑하기 위함이다.

리더십의 임재에 대해 이해하기 힘든다면 집에 어린 딸이 있는 아빠들의 영상을 시청해보라. 마음 속에 아빠가 들어 있는 어린 딸들은 아빠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해가며 아빠가 즐거워할 자기 나름의 일을 묵묵히 수행한다. 아빠가 일과를 마치고 저녁이 되어 돌아오면 마치 레이건 대통령이 돌아온듯이 아빠에게 달려가 하루 동안 자신이 얼마나 아빠가 기뻐할 사명을 제대로 수행했는지를 재잘재잘 설명한다.

우리 대통령이 순방에서 돌아오면 당직자들이나 비서들은 <아빠가 돌아왔다>고 외쳐가며 달려갈까? 국민들 중 누가 아빠가 해외순방에서 무사하게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을까? 아니면 대부분이 먼저 마주치지 않기 위해 부를 때까지 숨어 있을까?

리더에게 목적과 긍휼이 만들어낸 임재가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순간 대통령 용화대는 어린이 놀이터가 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진보다운 진보도 없지만 보수다운 보수는 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젊은이들은 리더를 마음 속 아빠 엄마라고 부르기를 거부하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리더십 부재는 이런 임재를 행사할 따뜻한 어른이 없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대한민국은 식당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 일상에서 젊은이들에게 따뜻하고 긍휼감 넘치는 엄마 아빠로 불릴 수 있는 어른들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