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2-17 11:53
[N.Learning] 정신병원에도 아침이 와요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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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에도 아침이 와요?!
환대와 치유 공동체
우연히 보게 된 병원에 관한 이야기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느낄 수 없었던 진한 감동을 느꼈다. 환자에 대한 환대를 다루는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뿐 아니라, 환대 비즈니스를 하는 호텔, 서비스업 종사자, 회사의 HR 담당자들도 반드시 보았으면 하는 드라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가장 시급하게 보아야 할 사람은 스스로 환자임에도 환자가 아닌 척 연기하는 삶을 살고 있는 CEO, 정치가들이다.
루소는 인류가 동물과 구분되는 문명을 만들게 된 계기는 사냥하고 채집에 나섰던 낮이 아니라 밤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밤이 되면 부족 사람들은 따뜻한 모닥불을 피우고 빙 둘러 앉아서 울타리를 만들었다. 울타리는 동물들의 예측하지 못한 공격에서 동료들의 등을 지켜주는 심리적 안정감을 만들었다. 불은 빛도 주었지만 낮에 잃어버렸던 에너지를 복원해주었다. 사람들은 울타리와 따뜻함으로 심리적 안정지대라는 공간을 만들자 낮에 사냥하고 채집하던 과정에서 다친 사람들을 치유해주기 시작했다. 부락사람들은 이런 치유와 환대를 체험하는 밤을 통해 내일의 아침 해가 떠오를 것을 굳게 믿는 희망의 근력을 만들었다. 루소는 울타리로 둘러진 치유와 환대의 따뜻한 밤이 없었다면 인류가 생존했을 개연성이 없다고 결론내린다.
낮은 당장 오늘을 살아남기 위해 식량을 생산에 집중하는 조직을 만들었지만 밤은 내일의 생존을 위해 아픈 사람들을 치유해주고 에너지를 복원해주는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낮의 생산 결사체와 밤의 환대와 치유의 공동체가 협업해서 문명이 만들어진 셈이다. 사회학자 퇴니스가 주장했던 게마인샤프트(환대공동체)와 게젤샤프트(이익결사체)가 생성되고 이 둘이 서로 협업해서 지금의 문명사회가 만들어진 셈이다.
산업화와 신자유주의는 인간의 삶에서 생산결사체에 삶의 모든 것을 집중했다. 환대와 치유의 문제는 개인과 가족에게 떠 넘겨졌다.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라는 근대 조직 형태가 생김에 의해 생산 결사체는 엄청난 크기로 성장했다. 이에 비해 가족은 점점 붕괴되는 수준을 밟았고 경기가 어려워지자 환대와 치유 공동체는 가족과 회사 모두에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인간이 번성을 누리는 문화를 해체해보면 생산 결사체라는 빙산의 윗부분도 있지만 이 빙산이 중력을 견디고 떠 있게 만드는 부력은 빙산의 보이지 않는 환대공동체라는 밑뚱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밑뚱이 사라짐에 의해서 결국 빙산이 침몰하는 현상이 지금 우리가 지금 직면하는 현실이다.
심지어 환대와 치유의 마지막 성소였던 병원조차 이런 치유와 환대가 자리를 잃었다. 병원에서 환자는 아픈 사람이 아니라 고장난 기계일 뿐이다. 병원은 고장난 기계를 돈받고 고쳐주는 이익결사체로 전락했다. 의사와 간호사는 고장난 기계를 고치는 기술자일 뿐이다.
현대사회를 사는 인간은 자연 혹은 동물과 경쟁하는 원시 사회와는 달리 물리적 상처 때문에 생기는 통증의 문제보다는 변화하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생기는 고통이 누적되어 병을 얻는다. 고통의 문제가 오랫동안 해결되고 치유되지 못하고 방치되면 스트레스가 쌓여 몸에 결석을 만들고 결석은 암으로 전환되던지 아니면 뇌의 시냅스 구조를 기형적으로 바꿔서 정신 질환을 만든다. 직장에서 구성원들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생긴 심리적 상처를 기업은 개인의 문제로 방치했다. 심지어는 이런 상처를 감내하지 못한 사람들을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낙인 찍어서 해고했다. 구성원들은 생계를 위해 자신의 고통과 병을 감추며 감내해왔다. 직장은 이런 사람들을 고장난 기계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대 직장인들의 대부분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직장은 이런 환자들에게 치유의 시간을 허락하기 보다는 전열을 가다듬어 다시 전쟁터로 내모는 일을 지속해왔다. 기업의 생산성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아바타의 모델이었던 나바호 인디언들은 부락에 환자가 생기면 병의 원인을 자신의 내면, 공동체 사람들, 자연과의 에너지 소통에 결석이 생긴 것으로 진단한다. 결석이 에너지를 끊었다고 믿고 환자를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숲으로 옮기고 모닥불을 피우고 마을 사람들이 둘러 앉아서 자연, 공동체, 내면과의 에너지 소통이 복원되는 기도와 치유 의식을 행한다.
정신병원에도 에너지가 충만해지는 아침이 오는 이유는 나바호 인디언처럼 치유와 환대로 밤새 결석이 녹아내려서 에너지가 소통이 되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치유와 환대의 공동체가 결석을 따뜻하게 녹아내리게 하지 못했다면 아무리 아침에 해가 떠도 에너지를 받아들일 방법이 없다.
이 드라마가 가르쳐주는 촌철살인의 교훈은 환자인 사람들이 자신을 속이고 전문성과 능력을 명분으로 환자를 받아들여 치유 행위에 나선다는 점이다. 소위 우리 사회에 리더로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알고 보면 더 심각한 환자이다. 자신이 환자임을 인정하는 용기가 없거나 스스로 환자인지도 모른다. 치유와 환대의 공동체가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번성의 원리를 구성하는 빙산의 밑뚱임에도 사람들은 낮에 보인 이익 결사체에서 능력과 수월성만보고 환자를 리더로 임명한 탓이다.
실제로 지속가능성과 번성을 유지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이익을 공유하는 결사체를 넘어서 사람을 기계가 아닌 사람으로 보고 환대하고 치유하는 공동체 개념을 내재화한 다양성과 포용이 넘치는 회사들이다.
이런 회사에서 최근에 강조하는 종업원 체험이나 고객체험의 핵심도 아파 쓰러져 누워있는 종업원과 고객을 고장 난 물건이 아니라 아픈 사람으로 환대하고 치유해서 자신 삶의 주인으로 역할을 할 수 있게 일으켜 세우는 체험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환대와 치유의 공동체를 내재화 하지 못한 기업들이 이익공유와 돈을 앞세워 뛰어난 과거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던 하지만 지금은 환자라는 사실을 감춘 사람들을 영입하겠지만 이런 회사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