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2-17 11:57
[N.Learning] 광란의 환자놀이: 칼융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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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융(Carl Jung) 다시 읽기
광란의 환자 놀이
칼 융이 붉은 노트에 기록한 내용들을 모아서 책으로 출간한 것이 <붉은 책 The Red Book) 이다. 붉은 책은 Liber Novus(새로운 책)이라고도 불렸다.
융은 제1차 세계 대전을 앞 두고 불안 때문에 심리 상태에 폭풍우를 경험한다. 쓰고 기록하는 것이 자신에 대한 최고의 체험이라고 믿고 있었던 융은 검은 표지의 노트에 자신이 본 꿈이나 비전을 적어가며 마음의 폭풍우를 달랬다. 이때 쓴 저작물을 <검은 책>이라고 부른다. 전쟁이 끝나고 평온을 되찾았을 때 융은 검은책의 내용을 붉은 표지의 노트에 다시 필사하고 수정한다. 후세 학자들이 붉은 노트의 내용을 책으로 출간해 <붉은 책>이라고 명명했다. <붉은 책>에서 융은 검은 노트에 쓴 내용을 수정했다. 또한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색채가 있는 일루스트레이션을 사용해서 노트를 만들었다.
<빨간 책>에 담겨 있는 핵심 내용 중 요즈음 젊은이들이 빠져있는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마이어스-브릭스 타입 인디케이터) 원형이 담겨 있다.
이 책을 보면 마이어와 브릭스가 개발한 MBTI가 융의 생각을 얼마나 상업적으로 왜곡하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융이 생각하는 온전한 자아(Self)란 처음부터 페르소나라는 의식의 가면을 쓰고 밖으로 나도는 Ego와 무의식의 감옥에 갇혀 지내는 어두운 자아(Shadow self)를 모두 의식의 무대로 끌어내서 서로 화해 시키고 스스로가 작곡한 정체성의 교향곡에 맞춰 연주하는 삶을 살거나 왈츠에 맞춰 멋지게 춤추는 삶을 사는 동적 자아다. 융이 열망하는 동적 자아의 본질은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쓰고 사는 Ego라는 이름의 자아와 어두운 자아가 의식의 평면으로 커밍아웃해 서로를 극복하는 되어감(Becoming)이다.
하지만 마이어스와 브릭스가 만든 MBTI는 융의 의도를 무참하게 짓밟아가며 의식으로 간신히 탈출해 해방감과 자유를 느끼던 자아를 다시 무의식의 감옥에 가두었다. 페르소나의 가면을 쓴 MBTI Ego와 무의식의 어둠 속에 갇혀 사는 어두운 MBTI 자아를 화해할 수 없는 자아로 분리시켜 놓았다. 이들에게서 온전한 자신으로 되어갈 수 있다는 열망을 박탈했다. 융이 다시 부활해서 지금의 MBTI가 통용되는 모습을 본다면 자신의 의도를 철저하게 깨부순 MBTI 때문에 아마도 심장마비에 걸렸을 것이다.
자아(Self)가 발달하기 전에는 의식적 자아는 생각(thinking)을 강조하지만 무의식적 자아는 몸이 전달해오는 느낌(feeling)에 따라 행동할 수도 있다. 역으로 생각이 무의식에 갇혀 있고 느낌이 의식 속에서 지낼 수도 있다. 하지만 개별화(Individuation)가 성숙되어 자아의 왈츠 혹은 교향곡이 충분히 작성되면 느낌(feeling)과 생각(thinking) 모두가 의식의 무대에 서게 되고 곡의 흐름에 따라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가며 춤 자체를 즐긴다. 성숙한 개인은 생각과 느낌이 MBTI에서 이야기하듯이 의식이나 무의식에 한쪽에 갇혀 고착되어 살지는 않는다.
다른 차원도 마찬가지다. 자아가 성숙되면 오감에 의해 직접 눈에 보이고 경험으로 잡히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삶을 운영하는 감각(Sensation)이 무의식을 탈출해 의식적으로 삶을 주도하기도 하고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을 믿는 직관(Intuition)이 무의식을 탈출해 의식 속에서 삶을 주도하기도 한다.
외향(Extravert)과 내향(Introvert)도 마찬가지다. 외향이 100% 의식 속에 살고 내향은 100% 무의식 속에 사는 사람 혹은 반대인 사람은 정신병자일 뿐이다. 자아가 성숙되는 삶을 살다 보면 상황과 곡의 내용에 따라 외향적이기도 하고 동시에 내향적이기도 한다. 외향과 내향은 의식과 무의식의 감옥에 갇혀 분절된 채로 제로섬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무대에서 같이 춤추는 자아다.
융에게 성숙한 개인이란 자아의 모든 측면이 무의식의 감옥에서 탈출해서 의식의 무대에 서서 자아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같이 춤추는 동적 모습이다. 어떤 자아는 주인공이고 어떤 자아는 조연으로 고착되어 있지 않다. 춤의 내용에 따라 자아 정체성이라는 춤을 외향이 리드하기도 하고 내향이 리드하기도 한다.
연역(Judgement)과 귀납(Perception)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자신의 철학과 관련된 의식적인 일에서는 철학적 가정에 근거해서 판단하는 연역적 삶을 택하지만 철학적 가정과 조율할 필요가 없는 소소한 일이나 새로운 일은 귀납적으로 조직한다. 춤의 곡조에 따라 연역이 리더하기도 하고 귀납이 리드하기도 한다.
융의 입장에서 세상을 온전한 자아로 산다는 것은 intuition, sensation, induction(perception), deduction(judgement), introvert, extrovert, thinking, feeling 모두를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고유성과 개별성을 구현하는 왈츠와 교향곡에 맞춰 춤추거나 연주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특정한 MBTI 스타일을 강조한다는 것은 모든 자아가 정체성의 춤꾼이나 연주자로 나서지 못하고 누구는 감옥에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MBTI 정말 맞다면 분절되고 병든 환자의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다. 자신을 온전하게 의식적으로 개인화 시키지 못하고 MBTI라는 의식과 무의식 감옥에 가두고 서로에 대해 죄의식을 부가하는 것은 자신에게 패륜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들은 MBTI를 기획해서 한쪽 감옥에 가둔 사람들을 불러내 다른 쪽 감옥의 사람들과 중매 결혼을 시켜가며 돈벌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융의 입장에서 온전한 사람이 되어 세상을 제대로 온전하게 산다는 것은 8가지 요소를 모두 무의식에서 탈출시켜서 진실된 자신(Authentic Self)을 표현하는 의식의 무대 위에서 어울려 춤추고 협연하게 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융은 이런 진실된 자아 상태로 도달하는 것을 성숙한 개별화 (Individuation)라고 불렀다.
개별화로 진실된 자아를 가진 사람은 아래 그림에서 각 차원이 들쑥날쑥 찌그러진 바퀴가 아니라 모두 성숙한 거미집 그림을 만들어낼 것이다. 실제로 성인임에도 오랫동안 찌그러진 자아를 가지고 있다면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경우다. 정신병원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MBTI 처방에 따라 Acting Out하고 있는 셈이다.
젊은이들이 MBTI를 환자 놀이처럼 사용하는 것을 멈췄으면 한다. MBTI 처방을 신의 처방처럼 운명적으로 받아 들여가며 자신을 MBTI 정신병원에 가두고 다른 MBTI와 환자와 짝짓기 하는 환자와 의사 놀이는 자신에 대한 패륜 행위다. 현실에 가상 정신병원을 만들어 놓고 정상인을 가상 환자로 분류해가며 Acting Out하며 살게 한다.
사회 심리학자 Goffman은 정상인도 정신병동에 가두면 어느 순간 정신병 환자처럼 연기(Acting Out)하며 살게 되고 어느 날 진짜 정신병 환자가 된다고 경고한다. MBTI같은 잘못된 사회적 무의식(신화)이 우리가 세운 가상의 정신병원이다. 이런 잘못된 사회적 무의식에 물들면 우리는 암암리에 정신병 환자로 전락한다. 지금 정치권에서 번지고 있는 환자 놀이도 심각한 수준이다. 정신 병동을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 스스로가 환자임을 망각하고 상대를 환자라고 비난하고 저주를 퍼붓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환자 놀이가 광란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