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2-17 12:28
[N.Learning] 진실은 언제 모습을 드러낼까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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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언제 모습을 드러낼까?
온전한 일인칭 주인됨
지금은 변화와 위기가 상수인 초뷰카 시대(The Era of Hyper VUCA) 시대다. 오픈 플랫폼 간 전쟁이 일상이 된 초뷰카 시대를 산다는 것은 마치 꾸불꾸불 얽히고 설킨 고갯길을 운전하는 체험과 비슷하다.
변화무쌍한 언덕이 이어지는 고갯길이나 구부러진 비탈길을 운전하는데 조수석에 앉아 있다고 상상해보라. 아무리 위장이 튼튼해도 구토와 멀미를 피할 수 없다. 심지어 멀미가 심하다는 이유로 조수석도 포기하고 뒷좌석으로 물러나 앉는다면 롤러코스트를 탄 것과 마찬가지다. 구토와 멀미는 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된다. 마음과 정신이 혼미해져 주변의 경치가 눈에 제대로 들어 오지 않는다. 여정을 포기하고 차에서 내려야 한다.
문제는 곡예 길에서도 운전석에 앉은 사람은 구토 하거나 멀미하지 않는다. 멀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운전에 익숙하면 운전을 즐긴다. 곡예 길에서 운전대를 잡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고속도로에 비해 운전이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다이내믹한 사건이 되는지를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지금의 삶이 곡예 길을 운전해가는 상황이라면 운전자의 책무를 버리지 않는 것이 구토와 멀미를 초월(Transcendental)하는 비밀이자 주변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잃지 않는 것이 된다. 심지어는 곡예길 운전수는 같은 차의 탑승자 중 현실이 제공하는 진실을 제대로 보는 유일한 사람이다.
당나라의 선승이었던 임재 선사는 길을 제대로 보는 눈과 세상을 보지 못하는 눈에 대해서 큰 가르침을 준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가르침이 그것이다. "자신이 머무는 곳에서 주인이 되기로 작정하면 가는 곳 마다 진실이 스스로를 드러내 보여준다" 라는 의미다. 자신의 삶의 여정을 고갯길을 운전하는 것에 비유할 때 자신을 조수석에 앉게 하거나 뒷자리에 앉게 하는 것은 멀미로 혼미한 눈을 스스로 선택하는 행동이다. 임재 선사의 가르침대로 조수석이나 뒷자리가 아니라 운전대를 고수하는 사람만 고갯길에 관한 모든 진실을 자신의 몸으로 생생하게 체험하는 사람이다. 고갯길이 일상이 된 삶에서 운전수가 되기로 선택한 사람만 진실이 가르쳐 주는 길을 생생하게 본다. 지금과 같은 초뷰카 시대 남의 써준 삼인칭의 삶에서 벗어나 일인칭 주인공의 삶을 복원해서 이를 구현하는 삶을 선택할 때 삶 자체의 진실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운전대를 잡는 삶이란 스스로가 작가가 되어 대본을 써내는 일인칭의 삶을 구현하는 것을 뜻한다. 일인칭 대본대로 사는 삶이 구현되지 못한다면 공부를 통해 자연과학적 진리는 깨달을 수 있어도 인간으로서 실존하는 삶의 진실은 깨닫지 못한다. 지금과 같은 초뷰카 시대 운전대를 남에게 양도하면 눈뜬 맹인이 된다.
우리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몸, 마음, 정신이 몰입해서 만들어낸 체험을 통해서 생생하게 세상을 본다. 운전석에 앉아서 온전하게 진실을 보아가며 운전한다는 것은 몸, 마음, 정신이 온전하게 몰입된 체험을 취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듯이 몸은 운전대를 잡고 있지만, 마음은 조수석에 가 있고, 정신은 뒷좌석에서 졸고 있는 것은 온전하게 운전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조각난 체험을 통해서는 현실을 명료하게 생생하게 보지 못한다.
AI 알고리즘에게 운전대를 맞기는 순간 운전대를 찾아올 방법은 영구히 사라진다. 운전자의 주체성을 빼앗긴 상태로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이들이 시키는 명령을 집행하는 노예생활이 시작된다. AI 알고리즘에게 운전대를 맡기기 시작하면 구토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본인이 왜 구토에 시달리는지 이유도 간파하지 못한다. 심각한 구토에 시달릴 때마다 운전대를 찾아오기는 보다는 운전대를 더 강력한 AI나 SNS에 맞기기는 우를 벗어나지 못한다. 데이터로 세상을 더 잘보는 것같아도 결국 눈뜬 장님이 되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요즈음 글로벌 기업에서 강조하는 HR 전략이 전인(Whole Person) 전략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정확하게 보고 그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서 일할 때는 몸, 마음, 정신 전부를 가지고 와서 전인(Whole Person)의 상태로 일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일할 수 있다면 하루에 2-3 시간 일해도 충분하니 굳지 8시간 몸만 와서 시간을 채울 필요도 없다고 조언한다. 전인으로 일하면 당연히 생산성도 극대화 되고 이런 상태로는 일하는 직원에게 물리적 시간으로 근무시간을 재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전인적 HR 전략을 실행하는 회사들이 실제로 주 3-4일 근무 만으로 기존의 생산성을 초과하는 성과를 만들어내는 이유다.
지금과 같은 초뷰카 시대 자신을 삼인칭 조수석에 머물게 하는 것은 치명적이지만 더 심각한 우려는 아무 생각없이 AI 알고리즘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경향이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것은 눈이라는 몸을 넘어서 정신, 마음을 통합해 온전하게 몰입한 체험으로 보는 것이다. 온전한 일인칭 주인공으로 일하지 못한다면 일 속에 숨겨져 있는 진실을 보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더 힘들어진다. 일인칭 주인공으로 일한다는 것은 누가 시켜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처럼 일이 자신을 통해서 완성되어야 하는 이유를 깨닫고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