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2-17 12:30
[N.Learning] 경영은 사랑이어라
 글쓴이 : Admini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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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은 사랑이어라
주인의식
51세 되던 해인 1993년 고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를 지금과 같은 상태로 만들기 위해 삼성전자 임원들과 함께 프랑크 프르트로 기약없는 디아스포라의 여정을 떠난다.
그냥 몇 일 선진 독일을 배우기 위해 출장 가는 것으로 알고 속옷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떠난 임원들이 2-3개월의 독일, 영국, 일본, 미국 등 장기 여행을 같이 해야 했다. 이 디아스포라의 여정을 통해 지금의 삼성전자를 있게한 신경영의 청사진을 도출했고 이 청사진을 토대로 지금의 삼성전자가 만들어졌다.
이건희 회장이 51세 되던 1993년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이건희 회장은 후꾸다고문의 보고서를 비롯해서 삼성의 각종 문제를 보고받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회장에 취임한지 6년 동안 그렇게 관리의 삼성을 넘어선 주인의식에 기반한 자율경영을 호소했음에도 삼성은 전혀 변화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수행 비서진에게 도대체 삼성의 근본적 문제가 무엇이지 생각해보라고 화두를 던진다.
비서진이 전략적 분석기법을 동원해 답을 마련해가면 아니라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돌려보낸다. 잠을 안 재워가며 요즈음의 하브르타 방식으로 밤세워 비서진을 코칭한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라고 돌려보내기를 반복하자 같이 있던 홍라희여사가 이러다 비서들 다 잡겠다고 성화를 보이자 이건희 회장은 마음에 담고 있던 생각을 털어 놓는다.
"삼성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왜 이건희 회장은 삼성 문제의 근원을 사랑의 부재에서 찾은 것일까?
철학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아주 단순한 상식적 통찰이다. 연인의 관계에서도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상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상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음은 역설적으로 사랑이 끝났음의 전조이다. 이런 원리는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울 리가 없다. 이건희 회장의 생각은 삼성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복원해야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일을 할 것이고 주인공으로 일할 수 있어야 관리의 삼성을 넘어서 자율과 책임도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세상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이 사람은 자신이 주인공인 삶을 살 수 없는 노예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노예는 무슨 일을 해도 그 공과가 다 주인에게로 돌아가니 스스로의 삶에 주체적 애착을 가질 수 없다. 스스로 애착을 가질만한 주체적 삶이 노예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삶이 모든 초점이 자신의 동물적 쾌락을 늘리거나 고통을 줄이는 신상 필벌에 집중되어 있다. 노예는 주인 삶의 종속물이자 주인의 성공과 부를 위한 수단이다. 노예로 산다는 것은 이런 자신의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말한다. 이런 노예에게 주인 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노예에게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대한 책임과 자율을 요구하는 것 자체도 말이 되지 않는다.
노예의 운명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책임을 요구할 수 없으니 주인이 책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원한 수단이 경영학 X이론에서 제시한 <관리>이다. 관리의 삼성을 극복하고 Y이론에 기반한 자율적 삼성을 만드는 것이 이건희 회장의 필생의 과제였다. 관리의 삼성은 이건희 회장이 평생 사랑을 통해 극복해보고 싶어했던 골리앗이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 삼성은 월급장이의 천국이 되었다. 모든 젊은이들이 들어가고 싶은 직장이다. 월급장이의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이건희 회장의 주문대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을까? 삼성은 경영의 X이론을 넘어서 경영의 Y이론에 도달했을까?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자신에 대한 사랑의 부재 때문에 주체적으로 일하지 못함의 문제를 무마하기 위해 대부분을 월급(돈)과 복지로 해결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직원들을 관리의 노예를 넘어 월급과 복지의 <노예>로 돌려 놓은 셈이다. 지금 삼성 직원들 중 경쟁사보다 월급이 작아진다 해도 사랑하는 삼성에서의 자신의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삼성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때문에 월급장이 노예생활을 과감하게 벗어날 수 있는 삼성 직원들이 얼마나 될까? 더 좋은 연봉과 복지를 제시할 때도 삼성에서 주인됨의 삶을 포기하기 싫어서 이직제의를 거절할 수 있는 삼성직원은 얼마나 될까?
자신의 일을 주체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의 근력이 없다면 책임감과 창의적 일처리가 요구되는 지금과 같은 초연결시대의 변화와 혁신을 선도해나갈 수 없을 것이다.
돈과 기술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빠른 추격자의 시대는 역사적 뒤안길로 급속하게 사라지고 초연결사회가 확장되는 초뷰카 시대가 급격하게 도래하고 있다. 시대의 변곡점에 선 삼성에게 이건희 회장이 던진 철학적 화두 <삼성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함>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더 깊어진다. 종업원도 자신의 회사를 진정 사랑하지 않는 회사가 포장하고 광고하는 방법 말고 초일류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삼성이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직원들이 월급장이 천국을 넘어서서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고, 회사 삼성도 사랑하게 만들고, 국민들이 삼성을 사랑하게 만들고, 글로벌 고객이 삼성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회사로 어떻게 복원할 수 있는 지의 문제이다. 삼성이 초연결시대에 요구되는 창의성, 자율성과 주체성을 복원하는 길은 지금까지 해왔던 기술과 자금력을 날줄로 사랑의 회복과 치유를 씨줄로 엮어 자신만의 고유한 미래에 대한 태피스트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달린 것 보인다.
요즈음 각광 받고 있는 ESG는 따지고 보면 기업의 잃어버린 사랑 복원운동이다. 자연에 상처를 낸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치유하고 사랑하고 환대하겠다는 E와, 고객, 협력업체, 경쟁사, 마을에 이윤을 빌미로 사탕발림 광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상처를 낸 것도 용서를 구하고 치유하고 사랑하겠다는 다짐이고, 회사의 구성원에게 월급을 주었다는 빌미로 기계처럼 일을 시켜서 상처를 준 것에 대한 용서와 치유와 사랑의 복원을 약속한 것이 G이다.
삼성 뿐 아니라 우리의 대기업들이 지금까지의 표면적 성공을 구가하는 동안 정작 잃어버린 것은 사랑이다. 사랑이 없다면 고객이나 협력업체가 돈으로 요구된 것을 넘어서 회사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자원을 자발적으로 동원해주지 않을 것이다. 기업이 사랑 받지 못한다는 것은 중요한 자원이 자발적으로 동원되지 못한다는 것이고 회사가 만든 제품이나 서비스가 가성비를 넘어서 세상에 울림을 주는 가치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어서 초연결 플랫폼 사회의 기업에게는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사랑이라는 소프트한 힘을 이용해서 초뷰카 시대에 지속가능성 문제를 해결한 기업을 글로벌에서는 경애기업(Endearment Company)라고 부른다. 경애기업으로 선정된 기업들은 ESG 중 G를 통해 종업원에 대한 사랑을 복원하고 만들어진 근력을 통해 사회적 구성원과 자연에 대한 사랑까지 복원한 기업들이다.
이들이 지향하고 있는 사랑은 자신의 유전자 복권으로 타고난 머리, 재능, 외모, 등등 유전자 복권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운 좋게 이런 유전자 복권을 타고 태어났음에도 자신에게 부과된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해 오랫동안 기진맥진해 쓰러져 있던 내면의 성인 아이에 대한 사랑이다. 잘난 자신에 파묻혀 쓰려져 있는 아픈 내면의 자신에 대한 사랑을 자기긍휼(Self Compassion)이라고 부른다. 자신이 아파서 쓰러져 있는데 이런 자신을 유전자 복권으로 타고난 재능과 머리와 외모로 감춰가며 없는 사람 취급하며 살아온 긍휼의 부재가 지금의 사태를 불렀다. 이건희 회장이 언급하고 싶었던 것도 유전자 복권에 대한 편애의 사랑이 아니라 이런 자신에 대한 긍휼의 사랑이었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긍휼의 사랑을 유전자 복권에 대한 사랑으로 잘못 읽은 것이 지금의 사태를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주인의식이란 유전자 복권의 편애를 극복하고 자신을 긍휼의 사랑으로 대하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삶의 태도다. 유전자 복권의 엄청난 수혜자여도 자신에 대한 긍휼의 사랑이 부재한 사람에게 주인의식과 관리를 넘어 자율과, 책임과 일에 대한 책무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이들은 유전자 복권의 노예로 살았던 삶을 사랑의 삶이라고 오해하며 살았던 사람들이다. 유전자 복권이 발휘될 때마다 승진과 연봉과 복지를 보상으로 받아가며 부, 명예, 권력이 주어지는 것에 취해 사랑의 진정한 의미가 긍휼이라는 것을 잊었던 사람들이다. 유전자 복권의 노예의 신분으로 살다가 어느 시점에서는 사회가 준 부, 명예, 권력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다. 감옥에 갇힌 것을 자신만 모를 뿐이다.
기업의 주인의식, 책임과 의무, 책무 등은 돈, 직책, 명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자신에 대한 긍휼의 사랑을 복원한 사람들만이 어디에 가든 주인으로 자신 삶의 진실을 발견하는 지속가능한 번성의 삶을 누린다.
본인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오해하며 살았다. 지고지순한 진실한 사랑은 오직 긍휼(Compassion)의 사랑에서 시작된다. 예수의 사랑도 긍휼이었고, 부처의 자비도 긍휼이었고, 유학의 인과 측은지심도 긍휼의 사랑이었다.
글을 정리하면 제목으로 걸었던 "경영은 사랑이어라"은"경영은 긍휼이어라"라는 제목으로 바뀌어야 한다. 경영자가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기술을 현 지평의 수준에 맞춰 업데이트 하고 비즈니스 모형의 알고리즘을 만들어가는 것은 기본이다. 이런 무기 없이 전쟁터에 나가겠다는 경영자는 없다. 하지만 초뷰카 시대 경영자에게는 이런 기본을 초월해 기업을 번성시키는 씨줄의 철학이 요구된다. 초뷰카 시대 경영자라면 자신의 기술과 비즈니스 모형을 통해 고객이 가진 아픔을 해결할 수 있는 긍휼의 사랑을 체험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고객의 아픔을 뿌리로 부터 긍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경영자만이 고객에게 반창고와 진통제를 혁신적 만병통치약으로 포장해서 파는 행동을 멈춘다. 긍휼의 사랑을 가진 경영자들만이 고객 아픔의 근원적 수준에서 파악해서 혁신적으로 해결한 제품과 서비스만을 제대로 된 처방약으로 생각하고 판다.
기업에 주인의식 뿐 아니라 혁신이 사라진 이유도 사랑에 대한 오해에서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