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최대의 현안은 국가, 사회, 조직에서 신뢰가 고갈되어 삶의 터전이 점점 산성화되어 가고 있는 문제다.
신뢰
잔고가 고갈되면 사회는 자신들이 믿을 수 있는 더 작은 핵 인사 집단이나 카르텔 집단으로 갈기 갈기 찢어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집단 내지는 카르텔에 포함되지 않은 불특정 다수는 모두 잠재적 적으로 간주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고 확신되면 대한민국은 조만간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을 믿지 않고 서로의 생존을 위해 각자도생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장으로 전락한다.
신뢰가 고갈되면 CCTV가 감시하고 처벌하는 곳에서는 모두 따르는 척하지만 이것들이 미치지 못하는 사회의 은밀한 구석에서는 더 내밀한 카르텔 범죄와 집단 이기주의, 조직정치가 난무한다. 사회의 운동장이 이런 카르텔과 정치가들이 연합해 만들어 놓은 토굴과 토굴과 토굴이 연결된 토굴로 전락한다. 지금처럼 위기가 상수가 된 국면에서 외부에서 조그마한 여진이 생겨도 허약하기 짝이 없는 사회의 기반이 흔들리고 사회적 인재로 전개되어 사회는 허약하게 무너져 내린다.
신뢰란 상대와의 거래에서 불확실성이 있어도 그것을 감내해가며 거래를 지속할 의도의 개연성을 의미한다. 개인적 손해와 희생을 감내하고라도 상대와 거래를 계속하려는 용기의 원천이 신뢰다.
신뢰가 없다면 모든 거래는 현금 박치기 거래로 쭈그러든다. 대한민국에 신뢰 경보가 발령되어 국민들이 현금 아니면 거래를 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그대로 무너진다. 현금으로 모든 거래가 이뤄지는 곳에서는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동원할 재원이 고갈된다. 결국 미래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각자도생의 나라가 된다. 국가의 미래를 신뢰하지 않고 음성적으로 현금을 쌓아 놓고 살던 마피아 중심으로 거래질서가 장악된다. 뇌물로 받은 현금 다발을 며느리들을 동원해서 세고 묶는 일을 했다는 전두환가 며느리의 고백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의 봄에서 전두환이 마이크를 잡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했던 공정과 상식은 자신들의 탐욕을 숨기기 위한 연기였고 허상이었다는 간증이다. 전두환 일가까지 가지 않아도 최근 공직자 재산 공개 내역을 보면 상식적 재산증식과 알려진 월급 만으로는 축적할 수 없는 부를 축적한 현금 마피아들이 사회의 중요한 자리를 독식하고 있다. 이들이 자본주의 꽃이었던 돈을 악취로 바꾸는 주범이다.
기업, 사회, 국가에서 신뢰잔고가 고갈되어 구성원이 서로를 믿지 않고 모든 거래에서 현금을 요구하기 시작하면 사회가 작동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급증하기 시작한다. 이때가 되면 다급해진 리더들이 나서서 지금부터는 서로 믿고 신뢰하자고 구호를 외친다. 신뢰란 리더가 나서서 윤리적으로 호소한다고 없던 신뢰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생기는 것은 아니다. 신뢰는 나무와 같아서 신뢰의 뿌리가 있어야 하고 튼튼한 나무 줄기가 있어야 하고 꽃이 피어야 하고 이 꽃이 풍성하게 피어야 신뢰로 열매 맺는다. 뿌리도 없고, 나무도 없고, 꽃도 피지 않은 곳에서 어느 날 갑자기 신뢰라는 열매가 고갈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리더가 입으로 신뢰를 요구한다는 것은 결국 그 조직은 더는 신뢰에 대해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산성화된 조직으로 전락했다는 반증이다.
리더십에서 거론하는 신뢰의 뿌리는 리더의 진정성(Authenticity)다. 리더의 진정성은 True to Oneself로 정의된다. True to oneself란 리더가 자신의 내면에게 이야기하는 내러티브와 자신의 밖의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내러티브가 같은(True) 상태를 의미한다. 내면에는 흑심과 사심으로 가득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내면이 발각되는 순간 리더십의 영향력이 사라지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밖으로 보이는 외면은 진실한 사람인 것처럼 적극적으로 포장하고 이 포장이 들키지 않도록 마치 진실한 내면인 것처럼 연기한다. 연기가 주특기인 유사리더(psuedo leader)들은 연기가 발각되는 순간 리더로서의 자리를 내어 놓아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들이 전문 연기자들보다 더 연기, 치장과 광고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이유다.
문제가 된 자신 휴대폰 비밀번호를 자신 있게 제공하지 않는 공직자나, 운명 공동체인 부인 혹은 가족과 관련한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설명과 공개 요구에도 묵묵부답 침묵하는 리더,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끝까지 변명으로 일관하는 리더는 신뢰 뿌리인 내면의 진정성이 썩어가고 있는 경우다. 이들이 아무리 현란한 법 기술과 공적 권력을 통해 자신의 문제 없음을 소구해도 이들에게 신뢰의 나무가 자라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낙타에게 바늘구멍을 통과하라는 주문과 같다. 이들은 자신의 탐욕과 가족 생존 말고는 지켜야 할 진실이 없는 리더들이다.
지켜야 할 진실을 가지고 있는 리더는 자신의 진실을 지키기 위해 자기의 상처를 감내하는 희생을 보인다. 신뢰의 또 다른 정의는 상대와의 거래를 통해서 얼마 정도까지 상처를 받을 용기가 있는 지의 문제다. 친구가 천 만원의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떄 천 만원 못 받을 것을 전제하고 천 만원을 빌려준다면 신뢰잔고는 천 만원이다. 천 만원 범위에서 희생과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용기를 보인 것이다.
상처 받을 용기로서 신뢰 문제는 친구와의 거래에도 통용되지만 자신과의 거래에도 통용된다. 자신의 진실을 지키기 위해 어느 정도 손해와 희생을 감내할 수 있는지의 문제다. 지켜야 할 진실이 있고 이 진실이 상황에 의해서 훼손되고 있어서 이것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희생을 감내할 수 있다면 누구든 이 사람의 진실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십자가 희생을 지켜보던 유대 사람들에게 믿음이 생긴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거대한 로마 제국의 압제에 맞서 목숨을 희생해가며 지키려던 예수의 말씀이 말씀을 넘어 진실이었음을 확인하는 믿음의 토대가 된다.
내면에 대한 진실성을 가진 사람들은 외면의 환경이 이 진실성을 감추고 왜곡하려는 시도를 해오면 더 처절하고 측은하게 내면의 진실성을 지키고 드러내기 위해 희생한다. 내면이 자신의 사욕으로 가득한 사람들은 어려운 난관을 만나면 슬그머니 말을 바꾸기 시작한다. 목적이 자신의 진실성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다 생존을 위해 먹고 살기 위한 전략이기 때문이고 상황이 어려워지면 언제든지 생존이 보장되는 쪽으로 말을 바꿔 탄다. 진정성이 없는 리더는 의혹(연기)을 의혹(연기)으로 덮는다.
신뢰의 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의 제거다. 거래에 신뢰가 생겨 현금이 아니더라도 안심하고 예측 가능하게 거래를 할 수 는 심리적 안정 지대가 만들어진 것이 신뢰가 꽃 핀 단계다. 신뢰가 꽃 피기 시작하면 심리적 안정지대가 생겨서 사람들이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현금수익을 계산하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는 행동이 줄어든다. 이들이 거래에서 계산기를 치우는 행동이 생기는 이유는 꽃은 미래의 열매를 믿어도 된다는 표적이기 때문이다.
신뢰의 열매는 더 나은 미래의 실현이다. 거래가 확장되고 모든 거래에서 불확실성이 제거되어 신뢰비용인 거래비용이 부가되지 않고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노리지 않고 자신이 땀 흘린 만큼 거둬들일 수 있다는 것에 믿음이 생겼기 때문에 자신들이 바라는 미래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투자할 수 있고 이 투자가 실제 현실적 투자의 과실로 돌아온다는 것을 확인 시켜주는 것이 열매이다.
그렇다면 이 신뢰 나무의 근원에 해당하는 씨앗은 무엇일까?
개인에게는 자신의 존재목적이고, 조직이나 사회나 국가에게는 공유된 존재목적이다. 개인, 조직, 사회, 국가는 모두 이 존재목적의 씨앗을 키워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약조를 하고 이 약조를 지켜 미래의 변화를 실제로 구현해내고 이들 주체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신뢰잔고의 가치를 키운다.
존재목적은 진정성의 가장 높은 수준의 준거다. 살면서 많은 진실성이 있을 수 있지만 이 모든 진실성의 근원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존재목적에 대한 진실성이다. 자신의 내면에게 이야기하는 존재목적과 주변 구성원에게 하는 존재목적의 이야기가 같을 때 가장 높은 수준의 진정성을 체험한다. 조직, 사회, 국가도 마찬가지다. 이런 단위를 이끄는 리더와 구성원이 공유한 존재목적이 없다면 신뢰는 말장난으로 끝난다. 존재목적 수준에서 진정성이 담보되면 사람들은 다른 하위 수준의 진정성에 대해서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다.
신뢰가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넘어서 존재목적이라는 제 삼의 실체를 매개로 전개될 때 신뢰는 관계를 초월해서 관계를 조직하는 믿음(Belief)이나 신조(Credo)로 전환된다. 존재목적에 기반한 진정성이 조직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 조직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이 믿음을 위해 자신을 자발적으로 희생하는 시민행동이나 조직시민행동이 일상이 된다. 미래를 창출하는데 생기는 불확실성을 제거해가며 더 큰 운동장을 만들고 결국 개인, 조직, 사회, 국가가 미래로 약속한 존재목적이 유산으로 실현된다. 존재목적을 기반으로 만들어낸 신뢰에 대한 믿음의 소생은 국가, 사회, 조직에 카르텔 세력들이 파 놓은 토굴을 무너트리고 더 평평한 운동장을 만드는 불도저 작업이다.
올해는 대한민국이라는 토양에 이런 신뢰의 과수나무 숲을 만들기 위한 존재목적의 씨앗들을 뿌리는 진성리더와 이들과 협업해 대한민국의 미래의 약조를 실현해가는 구성원들이 많아지기를 소원해본다. 부패의 썩은 냄새가 사라지고 신뢰의 산소가 평펑 품어져 나오는 향그러운 숲을 가진 나라를 소원해본다.
연기하는 리더들에 의해 만들어진 거품들이 사라지고 담백한 나라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조회 : 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