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멘토_모리 #카르피_디엠

#죽음을_기억하라 #현재를_살아라

#생과_사의_직조 #천국과_지옥

죽음은 삶의 가장 중심에 있지만 우리는 마치 없는 유령처럼 취급한다. 죽음을 유령 취급하며 산 사람들은 자신이 무한하게 살 것이라는 가정을 가지고 산다.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있어도 시간이 넉넉하다고 믿기 때문에 고치지 않고 비슷한 잘못을 무한히 반복한다. 무한한 미래가 펼쳐 있다는 가정 때문에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고통은 최대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다. 이들은 오늘을 쾌락으로 즐기는 도파민에 중독된 삶을 죽을 때까지 반복한다.

이런 잘못된 가정을 버리지 않는 한 자신을 중심으로 어떤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죽음을 앞둔 순간 자신이 세상에 빚만 남기고 간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지만 이미 늦었다. 죽음을 유령 취급하고 남의 일처럼 가정하고 사는 사람들이 생을 종결하는 방식은 삶아 죽는 개구리 방식이다.

개구리는 변온동물이다. 개구리는 세상의 온도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사는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재능에 믿음이 있는 개구리는 세상의 온도가 끓는 냄비처럼 올라가도 자신은 원하면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에 갇혀서 변화하지 않는다. 온도가 비등점까지 도달하면 이제는 끊는 냄비에서 뛰쳐나오지 않으면 삶아 죽는다는 것을 깨달고 밖으로 튀쳐나오려 시도한다. 하지만 온도가 비등점까지 올랐다는 것은 이미 팔다리는 삶아서 마비된 상태다. 또렸해진 정신으로 팔다리를 움직여보지만 움직일 수 없다. 죽음에 이르는 시점까지 삶아 죽어가는 자신을 그대로 감내해가며 고통스럽게 죽어야 한다. 고통 때문에 죽는 순간까지 눈을 감지 못한다. 개구리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마지막 순간에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한다.

생과 사는 빙산의 윗둥과 아랫둥으로 비유된다. 죽음에 비유되는 아랫둥이 없다면 삶에 해당되는 윗둥은 물위로 떠오를 수 없다. 충만한 죽음에 대한 밑둥을 가진 빙산의 윗둥만 찬연한 삶을 영위한다. 온전한 삶을 산다는 것은 생과 사가 서로 직조되는 협업을 통해서다. 삶이란 죽음의 부력이 만들어낸 찬사다. 죽음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사는 것은 어떤 심각한 의미도 도출해내지 못한다.

애플과 스마트 폰을 만들어낸 스티브 잡스도 같은 생각을 가졌다. 스티브 잡스는 매일 거울 앞에서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 어제 했던 그 일을 오늘도 계속할 것인가?"를 물었다. 삼 일 동안 지속적으로 아니라는 답을 얻었다면 오늘이 지금까지 삶을 장사 지낼 마지막 날이라고 선언했다. 죽음에서 삶을 찾아내는 상상적 실험이 없었다면 스티브 잡스도 애플도 스마트 폰도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죽음 속에서 삶을 찾아내는 상상적 실험을 통해 죽음을 삶의 변수로 이입하지 못한 사람은 시지프스 돌굴리기의 형벌을 부과 받는다.

로마 희랍 시대의 현인들도 생과 사는 같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해가며 온전한 삶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은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오만과 객기를 부리는 사는 사람은 죽음에 임박한 순간 놀라서 급사하는 삶을 산다고 경고한다. 급사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부, 권세, 명예로 만용을 부려가며 세상에 큰 오점을 남긴다고 경고한다. 지금까지 이름을 남긴 모든 현자들은 죽음을 삶의 변수로 받아들이고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을 삶 속에서 각성하는 "모멘트 모리(memeto mori)"를 외쳐가며 살았다.

로마 희랍의 현인들은 죽음을 삶의 변수로 명료하게 받아들였을 때 현재를 가장 충실하게 사는 카르피디엠(carpe diem)의 책무가 이행되는 것을 알았다.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라는 카르피디엠은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가정하고 사는 삶을 의미한다. 오늘은 지금까지 살았던 과거가 현재로 불려와서 연결되고, 죽음과 직면한 미래도 현재로 접속된 지점이다. 현재를 충실하게 산다는 것은 과거에 했던 모든 실수가 실수임을 깨닫고 학습되어 현재의 풍부한 토양으로 제공되고, 미래에 남길 기억의 유산을 과거가 가꾼 비옥한 토양에 뿌릴 씨앗으로 가져와서 나무로 길러내는 행동 속에 담겨 있다.

현재를 충실하게 산다는 것은 과거가 제공한 토양과 미래의 씨앗을 가져와서 과수원을 가꾸는 농부의 마음으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과수원 농부의 삶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이광의 삶이다. 이광의 삶은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로 요약된다. 배와 복숭아 과수원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아도 이 향기를 따라 사람들이 길을 만들어 찾아온다는 뜻이다. 과거와 미래를 현재로 가져와 과수원을 만든다면 농부가 죽은 후에도 사람들은 과수를 얻기 위해 꽃 향기를 따라 스스로 벌과 나비가 되어 길을 만들어 찾아온다. 과거와 미래를 현재로 가져와 직조한 사람들만 미래의 세대에게 이런 과수원을 선물한다.

죽음이 없는 미래를 사는 것처럼 사는 사람에게 오늘은 그냥 과거에 만들어 놓은 것을 이용해 즐기며 사는 시간이다. 영원이 살 것이기 때문에 미래에 해야 할 일을 하루 미뤄가며 즐기는 것이 큰 흠이 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미뤄가며 하루 하루를 즐기는 삶이 죽는 순간까지 이어진다. 죽는 순간 이 생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숙제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조급함에 벼락치기를 하지만 이 벼락치기는 주변 사람들에게 더 큰 고통을 선사한다. 죽는 마지막 순간에 이런 인생의 비밀을 깨달은 것은 오늘이 사형이 집행되는 날이었다는 것을 마지막 날인 오늘 안 것이다. 죽음에 임박했을 때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큰 고통이다. 마지막 순간에 이런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에게서 친구와 가족은 혹시 죽을 때가 된 것 아니냐는 농담을 던지지만 우리에게 이런 사형 선고는 일상이다.

과거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에 과거에 범했던 실수를 묻어버리고 살아도 기회는 충분히 많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잘못이 제대로 학습되어 현재로 연결되는 비옥한 토양을 만들지 못하고, 과거에 했던 실수를 잊어버리고 죽는 날까지 실수를 반복해가며 과거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느 순간 삶아 죽는 개구리의 형벌을 부과 받았다는 것을 깨닫지만 이미 늦었다.

죽는다는 사실을 삶의 변수로 명확하게 받아들이라는 "모멘트 모리"가 전제된 삶이 미래와 과거를 현재와 접속해서 충실하게 현재를 사는 "카르피 디엠"을 일깨워 준다. 카르피 디엠으로 현재를 충실하게 산 사람들만이 죽는 순간에 자신이 이 세상을 다녀간 이유인 자신의 존재이유를 실현한 삶을 후세에게 유산으로 남기고 삶을 온전하게 정산한다.

사랑하는 후세가 앞서간 사람이 남긴 찬란한 유산의 기억을 삶의 날줄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의 씨줄에 태피스트리로 직조해내면 이 유산은 다시 영원한 삶으로 부활한다. 부활이란 우리가 살았던 삶에 대한 기억이 후세의 삶 속에서 다시 새로운 의미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의 철학과 신념 체계를 정초한 사도 바울의 가르침의 본질도 생과 사에 대한 해석에 기반한다. 날마다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날마다 새로운 태어남을 체험할 수 있고 이런 삶을 지속할 수 있을 때에만 마지막 죽은 순간에도 예수의 제자이자 진실한 크리스찬으로 이 세상에 온 위업(Inheritance)를 달성할 수 있다고 설파한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누구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기독교인에게 부활이란 몸의 부활이 아니라 예수의 삶을 자신의 삶 속에 씨앗으로 살려내 예수가 남긴 씨앗이 자신의 몸과 삶을 통해 과수원을 만들도록 돕는 것을 의미한다.

길지 않은 삶을 통해 세상에 강력한 씨앗을 남긴 예수는 장사 지낸지 삼 일 만에 사람들의 마음 속에 뜨겁게 부활했고 이 부활과 부활이 이어져 지금까지 2023년이 넘은 삶을 지속하고 있다. 앞으로도 예수를 지속적으로 부활시켜 영생의 지위를 부여할 수 있는지 아니면 어느 순간 역사 책의 인물로 기억되게 하는지는 전적으로 기독교인들의 손, 몸, 마음, 정신이 합력해 예수를 자신의 현재 삶 속에서 부활시킬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기독교인임에도 예수를 자신의 현재 삶을 통해 부활시키지 못한다면 예수를 장사 지낸 사람의 오명을 덮어쓰는 것이다.

사도 바울처럼 생과 사를 같이 보고 완성하는 온전한 삶에 대한 생각은 동양에서도 오래전부터 지배적인 생각이었다. 중국 은나라 고사성어에 날로 새롭게 한다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라는 말이 그것이다. 『서경(書經)』의 「상서(商書)」편에 나오는 ‘일신 일일신 우일신(日新 日日新 又日新)’을 인용한 말이다. 죽었다 살아났다는 것을 전제하고 날로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밤과 낮이 교차되어 시간이 진행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생과 사가 혼재한 삶을 각성시키기 위함이다.

죽음과 생은 마치 밤과 낮이 서로를 맞대고 진행되고 있듯이 온전한 삶이라는 빙산의 밑둥과 윗둥에 해당한다. 인생이 빙산임을 이해하지 못하면 인생은 어떻게 잘 사는 문제에 집중해서 해답이 없는 무한 순환루프에 걸린 감옥을 벗어나지 못한다. 빙산의 윗둥만 생각하고 무한하게 겉도는 의미를 잊은 순환루프의 삶에 걸리면 삶을 떠 받쳐주던 빙산의 밑둥이 사라져 결국 윗동도 물에 잠겨 사라진다. 잘 살았는지는 생이 아니라 오직 죽음 앞에 섰을 때에만 정산할 수 있다.

나바호 인디언들이 후손에게 가르쳐주는 덕담에도 죽음과 삶이 서로 맞닿아 직조되고 있음을 가르치는 모멘트 모리와 카르피디엠의 교훈이 요약되어 있다.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너는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런 삶을 살아라."

죽음의 순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자신에게 세상을 다녀가며 맡겨진 소임과 책무를 모두 다했을 뿐 아니라 후세에게 행복한 기억의 유산까지 남기고 간 사람으로 기억될 것임을 안 사람들이다. 후세에게 남겨진 행복한 기억의 유산은 다시 후세의 몸, 마음, 정신 속에 부활해서 영생을 만들어내고 이들에게 천국을 선사한 것이다. 천국이란 자신에게 귀속되는 유익을 넘어서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 때문에 행복한 삶의 기억을 선사한 것이다. 상상 속의 천국이 아닌 실재하는 천국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이광같은 농부가 되어서 사랑하는 후세 사람들에게 배와 복숭아 과수원을 유산으로 남겨 선물할 때 실현된다.

우리가 오늘도 당연한 것으로 향유하는 모든 것은 과거의 선인들이 죽음을 변수로 온전한 삶을 부활시켰기 때문에 선물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우리는 후세를 위해 같은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죽음을 삶의 변수로 받아들여 오늘을 충실하게 산 사람들만 이런 책무를 완성한다. 이들만이 언제든지 생과 사의 마지막 갈림길에 서서 자신이 원할 때 자신이 후세에 남길 유산을 정산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자유의 몸이 되었음을 실감한다. 진정한 자유란 세상을 공짜로 빌려 써가며 한 평생을 향유한 빚도 갚고 여기에 원금과 이자까지 갚고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면 세상을 하직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느끼는 체험이다. 후세에게 자신 때문에 행복한 기억이 되살아나는 천국의 실체를 체험하게 한 사람들이다.

삶이 끝나가는 순간에 세상에 남길 어떤 행복한 기억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천국의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살아 남은 사람들에게 남겨진 고통의 기억은 이들을 지켜보는 죽은 이들에게도 지옥 같은 고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