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2-12 18:19
[N.Learning] 사마광의 돌맹이 Why Me?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106  

사마광의 돌맹이
Why Me?
중국 북송의 유학자 사마광(1019-1086)이 어렸을 때 그의 친구들과 함께 화원에서 놀고 있었다.
화원 안에는 작은 동산이 있었으며 동산 아래에 커다란 물항아리가 있었다. 그 물항아리 안에는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친구들과 동산에서 놀고 있을 때 어떤 아이가 큰 물항아리 속으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친구들 모두 당황하였다. 어떤 아이는 울었고 어떤 아이는 소리쳤으며 어른을 찾으러 뛰어갔다. 사마광은 침착하게 돌 하나를 들어 항아리를 때려 부셨다. 항아리를 깨 친구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파옹구아( 破甕救兒) 이야기다.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 생각이나 개념화 능력이란 어떤 해결해야 할 고통스러운 문제가 있을 때 이 고통의 원인을 추적해서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근원적 솔류션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고통의 진짜 원인과 해결된 모습인 결과를 인과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이 개념화 능력이다. 진짜 원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은 문제를 더 깊이 안에서 보는 능력이고, 임시처방이 아니라 완전히 해결된 모습을 그리는 것은 문제를 더 먼 밖에서 보는 능력을 의미한다. 창의적 개념화란 문제와 같은 수준이 아니라 안에서 더 깊게 원인을 찾고 더 멀리 밖에서 보는 능력을 의미한다.
사마광의 지혜는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소중하게 적용된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임의로 만들어놓은 정신모형이라는 세상을 보는 지도에 속에 갇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모형은 색안경처럼 세상을 채색해서 보여준다. 사람들은 각자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본다. 나에 맞추어 채색된 색안경은 나에게 편안함을 주지만 이 색안경에서 벗어버리고 과감하게 나안이 되기까지 세상은 제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지 않는다. 이 편안한 색안경은 결국 우리를 가두는 항아리이다. 정신모형의 항아리에 갇히면 편견과 아집과 혐오로 똘똘 뭉친 사람으로 전락한다. 결국 세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 정신모형은 깨부셔야 할 항아리이다.
자신이 깨부셔야 할 항아리가 있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큰 진전이지만 알았다고 항아리가 자동적으로 깨지는 것은 아니다. 말이 항아리이지 항아리는 돌항아리처럼 단단하다. 아무리 돌 항아리라해도 자세히 관찰하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여기저기 균열이 있다. 안밖의 균열을 찾아내는 안목이 없다면 아무리 강한 돌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모두 바위에 계란치기로 끝난다.
돌항아리 안에서 난 균열과 밖에서 난 균열이 만나는 균열을 찾아내 이 틈을 공격한다면 돌항아리가 아무리 바위로 만들어져도 쉽게 깨부술 수 있다. 마치 밖에서 잠근 열쇠와 안에서 잠근 열쇠가 동시에 풀어져야 문이 열리는 원리다. 밖에서 누가 잠궜는데 안에 있는 사람이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밖으로 나갈 수는 없다. 안에서 잠군 경우도 마찬가지다. 알을 깨기 위해 어미닭과 병아리가 안과 밖에서 균열을 찾아 협업하는 줄탁동시도 같은 원리다.
고도의 통찰력과 개념화 능력을 구사하는 경영자들 중에는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 문제해결을 포기하고 훌훌 여행을 떠난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많다. 여행 중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이들이 여행에서 돌아오면 문제의 해법을 가지고 돌아오게 되었다는 신기한 경험을 고백한다. 여행은 알 밖에서 자신의 정신모형이 가진 문제(균열)를 찾아내는 뛰어난 방법이다.
안에서 균열을 찾아내는 방법은 자신을 알이 더는 담을 수 없는 상태까지 키워보는 노력이다. 알 속의 균열을 보기 위해서는 알의 크기만큼 커서 알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야 한다. 가까이에서 균열을 찾지 못해도 몸이 알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커지면 알은 자동적으로 깨지게 마련이다. 알 속 병아리가 충분이 성장하지 않았음에도 어미닭이 병아리를 빨리 부화시키고 싶은 마음에 밖에서 알을 먼저 깨주면 병아리는 사산한다. 이것저것 해보다 포기하지 않고 한계까지 밀고 나가는 끈질긴 사람에게만 알은 자신의 균열을 보여준다.
창의성이란 여행자처럼 밖에서 문제의 솔루션에 대해서 질문하는 디아스포라와 안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아포리아의 협업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지금까지 유대인들이 다른 민족보다 더 창의적이었던 이유는 역사적으로 디아스포라와 아포리아를 같이 훈련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 이스라엘이 국제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이방인으로 자신들을 키웠던 디아스포라의 경험을 상실하고 아포리아에 갇혔기 때문일 것이다.
안의 균열과 밖의 균열이 만나는 지점을 찾았다면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이 사마광의 돌맹이다. 돌맹이는 질문이다. 질문에는 Know why를 묻는 질문, know how 질문, know what의 질문이 있다. 어떤 질문을 해도 가장 창의적 질문은 모두가 de가 붙은 질문이다. 지금까지 얻었던 답을 해체해서 차원을 초월한 답을 찾는 "de 질문"을 던져야 한다. Design이 Know why에 대해 De의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창의적 문제해결의 도구로 이용되는 이유는 know how와 know what의 차원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눈으로 보이는 답(사인 = sign)을 해체할 수 있는 최적의 De 질문을 던지는 방법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Know why, know how, know what의 질문 중 메타질문은 know why의 질문이다. 사람들은 현실과 정신모형에 갇혀서 평소 why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Why에 대해서 묻은 것자체가 해체(de)를 함축하고 있다. 사람들은 해체 후에 답을 찾지 못해 빠질 혼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why라는 질문을 금기시하고 산다. Why 를 물어 해체하는 것자체가 현대인에게는 용기인 셈이다. 문제는 Why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못하면 how와 what에서 던지는 De에 대한 답은 모두 방향을 잃고 한계에 봉착한다.
why에 대해서 묻는 것은 그 자체로 해체(de) 질문이기는 하지만 더 본질에 근접한 why의 해체 질문은 "왜 내가 (Why Me?)"라는 질문이다.
"왜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나서서 항아리를 깨야 하나?"라는 주인성에 관한 질문이다. 자신이 주인이되야 하는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우리의 몸, 마음, 정신은 자발적으로 일어서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몸, 마음, 정신이 함께 일어서는 것을 empowerment라고 경영학자들이 이름을 붙이고 연구했지만 임파워먼트가 "왜 내가?"의 질문에 대한 답에서 기원한다는 것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엉뚱하게 주인성이 없어도 돈으로 우리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제안하는 수준이다. 돈으로 임파워먼트 시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생계에 관련된 초보적 문제뿐이다. 지금 당면하고 있는 고차원의 문제(wicked problem) 대부분은 돈 천만금을 준다해도 해결할 수 없다.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가장 창의성이 떨어지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