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2-12 18:23
[N.Learning] AI가 나를 바꿔줄 것이라는 미신 지행격차(知行隔差)의 역설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106  
AI가 나를 바꿔줄 것이라는 미신
지행격차(知行隔差)의 역설
지행격차란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의 격차를 말한다. 변화하는 것의 시작은 깨닫고 아는 것이지만 실제로 변화하는 것은 이 깨달음을 자신의 행동으로 바꾸고 이 행동이 근력을 형성해 알고리즘에 비유되는 고유한 습관이 만들어질 때다.
지행격차가 큰 사람을 헛똑똑이라고 부른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헛똑똑이다. 다이어트 지식이 많을수록 다이어트에 실패할 개연성은 더 높아진다. 대학에서 재무를 가르친다고 해서 자산관리를 잘 하고 주식해서 돈을 잘 버는 것은 아니다. 실용적인 것에 대한 지행격차 뿐 아니라 윤리적인 것에 대한 지행격차 문제는 더 심각하다. 대한민국에서 판사나 검사라고 해서 법을 잘 지키고 공의로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님을 초등생도 안다. 나처럼 리더십을 가르친다고 해서 리더십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전문가의 공통적 문제는 전문적 지식이 늘어날수록 자신의 삶은 더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행격차는 믿음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숭상하는 신을 믿고 자신이 따르는 신이 요구하는 행동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삶의 큰 변화는 없다. 교회, 절, 성당을 아무리 자주 가 믿음에 관한 지식이 넘쳐도 자신이 모시는 신의 의도를 자신의 의도로 채용해 자신의 행동에 개입시킴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자신과 세상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믿음에 대한 지식을 믿음 자체라고 혼돈한다. 마국에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야만 한다는 것을 나도 믿지만 그렇다고 내가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행기에 대한 내 공포가 크면 모두가 믿고 나도 믿어도 나는 비행기를 탈 수 없다.
신은 나의 행동에 대해서 운동장 밖에서 충고해주는 코치나 감독일 뿐이다. 득점하고 승리하기 위해선 직접 뛰어야 한다. 신은 코치나 감독일 수는 있어도 선수는 아니다. 선수는 신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내 삶의 실제 변화는 신의 의도를 내 의도로 바꾸어 내 행동에 개입시킬 때에만 가능하다. 스스로 변화했을 때 하늘도 돕는 것이지 신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알고 객관적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변화가 저절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신이라도 우리가 사는 모습이 안타까워 내 기도에 개입해서 내 행동의 매개 없이 결과를 바꾼다면 신이 테크니컬 파울을 범하는 것이다. 이런 테크니컬 파울을 믿는 사람들이 키운 신앙을 기복신앙이라고 부른다. 신에 대한 믿음은 삶의 심리적 안정 공간을 만들어주는 든든한 울타리일 뿐이다. 신은 신을 믿지 않는 사람에 비해 더 넓은 울타리로 큰 공간을 만들어주고 울타리 밖에서 코치로 격려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은 이런 격려를 받아들인 내가 주인이 되어서 한 나의 행동을 통해서다.
세상을 신보다 더 잘 안다고 해서 신이라고 이름을 붙여진 구글 신이 등장했다고 세상이 저절도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구글 신의 더 진화된 신인 인공지능이 발달해 생성 AI가 인간의 지능 수준인 AGI 수준에 도달했다고 지행격차가 저절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신들이 등장할수록 역설적으로 우리의 지행격차는 더 심각해진다.
AI가 우리 인간에게 해줄 수 있는 역할은 수많은 매개변수를 연결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평에 대한 지식을 평평하게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지 우리의 변화를 관장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변화는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행동으로 개입할 때만 발생한다. AI는 이런 행동을 결정할 때 초기값 변수일 뿐이지 변화에 대한 의도가 담긴 행동은 우리에게 달린 문제다.
AI에 의해서 구성되는 세상이 지행격차를 더 키우는 이유는 순환론 (tautology) 때문이다. 생성 AI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변수를 매개변수로 삼아 공변이 상관관계 매트릭스를 구성하고 사람들이 질문에 따라 이 상관관계 변수를 조합해서 답을 알려준다. 질문과 답이 모두 같은 시점에서 상관관계에 의해 산출된 변수이지 인과관계를 구성해주지는 못한다. 질문에 따라 어떤 경우는 원인이 결과이고 결과가 원인이 된다.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거나 조직을 변화시키는 것은 이런 상관관계를 벗어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인과적 모형을 구성할 때만 달성된다. 자신에게 지금 주어진 변수를 외생변수로 자신이 행동을 개입해서 만드는 변수를 매개변수로 이런 매개 변수를 통해 도달하고 싶은 변화의 마지막 상태를 종속변수로 구성하는 인과적 모형이 만들어져야 한다. 실제 내가 설정한 인과적 모형에 따라 삶을 통해 검증에 검증을 거듭해 자신만의 최적치에 대한 알고리즘을 만들어내야 변화가 달성된다.
AI가 상정하는 상관관계는 값은 이런 모형에 대한 초기값을 제공해줄 뿐이지 나의 알고리즘을 입증하는 인과적 변화 모형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나만이 내 모형을 만들 수 있을 뿐이다. 내가 가용해서 쓸 수 있는 조건들을 외생변수로 설정하고 이것들을 전재로 나의 행동을 실험의 매개변수로 설정해서 내가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는 지를 직접 검증해야 한다. 결국 변화에 성공한다는 것은 최적화된 제대로 된 나만의 인과 모형을 구축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자신에게 최적화된 고유한 인과적 모형에서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변수는 내 인과적 모형이 작동되는 범위(Scope conditions)를 알려주는 수도 없이 많은 조절변수들이다. 이런 조절변수에 대한 인식 없이 남의 인과적 모형을 그대로 베끼는 순간 인과적 모형의 유효성을 무너트리는 교란(confounding)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남성으로서 조직에서 리더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인데 남성이라는 변수를 무시하고 여성이 그대로 따랐을 때는 성별이 주는 교란 효과 때문에 인과적 모형이 작동하지 않는다. 이런 교란변수는 우리의 삶의 독특성 때문에 셀 수도 없이 많다.
어떤 자기계발서도 사람을 제대로 바꿀 수 있는 인과적 모형을 구성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자기개발서 저자들은 수없이 많은 교란변수를 무시하고 과학적 인과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성공담을 마치 인과성이 있는 모형처럼 포장해서 전달한다. 자신의 외생변수, 자신의 의도가 개입된 매개변수, 자신이 도달하고 싶어하는 최종독립 변수를 설정하고 이것의 인과성을 검증해 자신의 고유한 모형을 만들었을 때만 수없이 많은 교란변수로부터 자유로운 인과성 모형을 얻는다.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인과성을 무시한 상태로 구성된 맥AI가 맥락을 초월해서 구성해준 모형을 믿고 따른다면 술꾼의 논리에 취해서 산다. 술꾼은 집앞에서 키를 잃어버렸지만 집 옆 가로등이 있다고 해서 거기서 키를 찾고 있다. 대학원생들도 마찬가지다. 대학원생들에 새로운 것을 배우면 어린이들에게 망치를 준 꼴이 된다. 이 망치로 두드려 깨부술 수 있는 것은 모두 부순다.

진성리더십에서는 이렇게 도출된 모형을 정신모형 II라고 부른다. AI가 발전하여 세상에 맞춰 지식이 업데이트되고 이 업데이트된 지식의 효용성에 맞춰 사는 수준의 변화를 이뤘다면 진성리더십에서는 최신의 내비게이션을 얻어 정신모형 I을 구축한 것이다. 이런 수준의 변화는 우리가 원하는 근원적 변화(deep change)가 아니다. 세상의 변화하는 수준에 맞춰 토굴을 벗어나는 수준의 수동적 변화다. 세상을 이끌 근원적 변화는 오직 자신의 고유성이 반영된 정신모형 II가 만들어지고 자신의 삶에 자신의 행동으로 개입해 이 모형을 검증해 최적화시킬 경우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한 마디로 우리를 변화시켜줄 것이라는 것은 미신이다. 업데이트해야 할 실용적 수준의 지식이 너무 많아서 현기증만 높일 것이다. 현기증이 난다고 업데이트를 게을리해서 토굴이나 싱크홀에 갇히는 수모를 당할 수도 없다. 선제적으로 자신만의 근원적 변화를 위해 상관관계 모형이 아닌 자신만의 인과적 모형을 설정하고 자신의 삶과 자신의 행동을 통해 선제적으로 실험하고 검증하는 사람들만 변화무쌍한 세상에 근원적 변화에 도달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