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유명한 <톱밥과 시계>라는 이야기가 있다. 여러 버전이 있지만 한 버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목수가 일하다 톱밥 속에 시계를 빠트렸다. 목수가 눈을 부릅뜨고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다. 잃어버린 것으로 포기하고 있었는데 다음 날 어린 아이가 시계를 가져왔다. 목수가 어떻게 찾았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혼자 톱밥 속에서 조용히 놀고 있는데 째깍 째깍 하는 소리가 들여서 파보니 시계가 있었다고 대답한다.

이야기가 은유하는 바는 "잘 들어야 찾을 수 있다"이다. 우리가 눈으로 보이는 세상 만을 실재하는 것으로 가정하고 사는 동안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에서 결론을 내리고 귀를 닫아버린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들리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더 큰 세상을 놓치고 산다.

보이는 세상을 관장하는 빛은 장애가 생기면 통과하지 못하고 멈춰서지만 소리는 이야기를 매체로 전달되어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 빛은 칠흑같은 밤이 되면 작동을 멈추기 때문에 밤에는 낮에 본 것을 기반으로 추론한다. 눈에 의지한 밤은 수많은 귀신 곡할 노릇이 벌어진다. 보는 것에 의지한 인지는 시간의 반을 잃어버린다. 소리는 사람의 귀가 있는 곳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달된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라는 속담도 있다.

인간이 기술과 문명을 만든 것은 보이는 빛과 이것을 에너지로 바꾼 것이었지만 인간이 지금의 규범과 문화를 만든 것은 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와 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듣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으로 채워졌다면 지구는 일상이 전쟁이고 편견이고 투쟁일 것이다.

지혜의 대왕 솔로몬이 왕으로 지명된 된 후 성막이 있던 기브온에 가서 1000번의 번제를 드린다. 이런 진심에 감동한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서 솔로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비록 꿈이지만 천금같은 기회를 잡은 솔로몬은 청한다. 백성을 눈에 보이는 대로 재단하고 판단하는 것을 중지하고 백성의 상한 마음을 이해한 후 판단할 수 있는 능력 (understanding heart to judge your people)을 달라고 주문한다. 물리적 상처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백성들의 상한 마음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게 해달라고 소원한 것이다. 백성의 상한 마음과 솔로몬의 상한 마음이 맞닿아 소통할 수 있는 긍휼의 마음을 주문한 것이다.

긍휼의 마음이란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제대로 듣는 능력에서 온다. 자신의 말을 삼가하고 백성들이 격는 고통의 이야기에 온 힘으로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긍휼의 마음이 작동한다. 솔로몬이 지혜의 대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 마음 속에 있는 생각, 성품, 동기, 아픔 등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이는 것에만 의지한 판단은 결국 편견, 차별, 혐오의 원천이라는 것을 이해한 것이다. 보는 것에만 의지한 판단으로는 절대로 공의로운 판단에 도달 수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눈으로 판단한 것을 접어두고 그냥 들어주는 것이 사랑과 환대의 시작이다.

리더로서 귀 뿐 아니라 온 몸으로 듣는 노력을 "적극적 경청"이라고 한다면 상한 마음으로 듣는 것을 맥락적 경청이라고 부른다. 적극적 경청을 넘어 아픈 마음인 긍휼로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때 말하는 당사자도 모르고 있던 내밀한 고통의 원인조차 뿌리 채 자신을 드러내서 상태를 알려준다. 긍휼한 마음으로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이해하는 것을 "맥락적 경청"이라고 한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했던 것은 적극적 경청을 넘어 맥락적으로 경청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직접 눈으로 봐서 알고 있던 남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던 자신이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의 경계를 잘 아는 사람이다. 현자란 자신이 지금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모르는 것을 더 잘 알기 위해 모르는 것을 자신이 눈으로 본 것에 기반해 판단하는 것을 중지하고(bracketing) 먼저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아서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다. 일방적으로 똑 부러지고 현란하게 말 잘하는 논쟁과 토론 능력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듣는 마음이 현자를 만든다. 기쁨의 소리 뿐 아니라 상대가 가진 아픔의 소리까지 듣는 듣는 장본인의 상한 마음이 진정한 현자의 비밀이다. 모르는 것을 본인도 모를수록 듣지 않고 시비를 걸거나, 논쟁하거나, 장황하게 자기 말만 떠든다.

남을 긍휼로 사랑하는 상한 마음이 없는데 자기애만 강한 리더의 특징은 지독한 청각장애인이다. 부풀어진 자기애 때문에 남들 이야기를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 이야기만 반복한다. 평소 남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에 대해 배운 바가 없어서 이야기들 들어보면 내용도 맥락도 없다. 대부분 엉뚱한 이야기이거나 옛날 무용담이거나, 심지어는 기괴한 내용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맥락을 벗어나서 감흥이 전달되지 않는 것을 감지하면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말하는 시간을 더 독점한다. 능력 있는 누군가가 말을 시도하면 반드시 말을 끊는다. 이야기가 기괴하다는 피드백을 듣거나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판단하면 불같이 진노한다.

누구를 지극히 사랑한다는 것은 판단을 중지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냥 끝까지 다 들어주는 것이다. 들을 귀가 없다는 것은 사랑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과거에 사랑했어도 지금은 들을 마음이 없다는 것은 이미 사랑이 식은 것이다. 자신을 제외한 누구든 주인공으로 세울 마음이 없는 것이다.

이런 시끄러운 리더가 내지르는 피리소리와 나팔소리에 의해 장악된 대한민국에서는 큰 사회적 재난을 당해도 희생당한 가족들 이야기도 제대로 듣고 애도하지 못하고 있다. 눈으로 본 것들에 대한 판단을 중지하고 세월호 가족, 천안함 가족, 이태원 가족, 해병대 유가족의 아픔에 관한 속 이야기를 한번도 제대로 귀 기울여 듣고 애도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상대의 속을 보지 못하고 겉으로 보이는 것만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에 눈 뜬 장님이다. 눈으로 본 극히 제한된 것만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눈 뜬 장님이 되어 코끼리를 판단하는 우를 범한다. 편견, 오만, 차별은 자신이 눈뜬 장님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형벌이다.

오늘은 우리 눈으로 본 것들에 대한 판단을 중지하고 그냥 듣는데 시간을 쏟아보자. 떠나갔던 사랑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직접 체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