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에는 제대로 나이듬에 대한 연구들이 쏟아지고 있다. 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연장되었음에도 생노병사였던 삶이 생노병병병사로 죽을 때까지 앓다가 고통만 연장된 상태로 종결되는 비극을 어렵지 않게 목격하기 때문이다.

78세에 썼다는 청춘이라는 시에서 사무엘 울만은 나이는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의 상태"라고 정의한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피부의 주름이 늘어도 마음이 시들지 않으면 청춘이고 호기심과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로 얼음에 갇히면 젊어도 애늙은이가 된다고 설명한다.

젊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에서 각성 체험으로 채워진 시간을 뺀 개념이다. 물리적으로 70살을 살았는데 이중 50년을 자신을 삶의 주인으로 온전하게 만드는 각성 체험과 각성을 실현하는 고난 사건으로 채웠다면 이 사람의 지금 나이는 20세 약관인 셈이다.

공자도 나이듬을 물리적 시간이 좌우하는 몸의 늙어감 상태에서 탈출해 삶의 주인이 되는 상태로 규정해왔다. 공자에 따르면 15세는 부모의 뜻에 따라 학문에 뜻을 두는 志學(지학), 20세는 부모의 뜻에 따라 출세하는 弱冠(약관), 30세는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제 발로 서는 而立(이립)이다. 인생의 1막인 30세까지는 부모의 양육과 보호로 독립적 생계를 유지하는 걸음마 단계다. 인생 1막은 주로 생물학적 유전자와 연계된 물리적 나이가 장악하는 세월이다.

인생 1막이 물리적 나이가 지배하는 시간이라면 2막은 주인으로서의 삶이 새롭게 탄생하는 시기다. 40은 不惑(불혹)으로 부모와 세상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는 시기다. 부모가 아닌 자신 삶의 주인된 삶을 잉태하고 준비하는 단계다. 50인 知天命(지천명)이 되면 자신이 왜 이런 이름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는지를 깨달는다. 60세는 耳順(이순)으로 남의 말이 왜곡되지 않고 들리기 시작하는 단계다.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 되어 다른 사람들이 채워 놓은 마음을 자유롭게 비울 수 있어서 생긴 현상이다.

나 개인적으로도 나이 50이 되어서야 세속적 성공을 너머 삶의 목적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깨달음을 얻고 <나이 오십에 깨달은 것들: 지금 30대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충고해주고 싶은 것들>이라는 반성문을 썼다. 이 글은 지금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공자에게 인생 삼막은 제대로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젊게 사는 단계다. 70은 從心(종심)으로 자신이 마음 먹은대로 마음의 온전한 주인이 되어 사는 단계다. 마음의 주인이 되어 살아도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고 존경받는 단계다. 욕심 부리지 않기 때문에 실패도 있을 수 없다. 80세는 산수(傘壽-우산산)로 마음 근력이 완전히 성숙해 폭풍우가 내릴 때는 마음이 우산이 되고 해가 쨍쨍 내리칠 때는 양산의 역할을 하는 단계다. 마음의 주인으로 삶을 온전하게 향유하는 단계다. 인생 삼막의 마지막 단계인 90세는 졸수(卒壽)로 살았던 삶을 돌아봐가며 정산하고 사랑하는 후세를 위해 살았던 삶을 유산으로 후세가 운영하는 기억의 뮤지엄에 헌정하는 단계다. 유산을 남길 수 있는 사람들은 또 다른 시작과 반복을 의미하는 죽음을 기쁘게 맞이한다.

박노해의 <삶의 나이>라는 제목의 시에는 어느 마을에서 사람들이 죽음에 직면해 삶을 어떻게 정산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가을 아침 아잔 소리 울릴 때

악세히르 마을로 들어가는 묘지 앞에

한 나그네가 서 있었다

묘비에는 3·5·8… 숫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이 마을에 돌림병이나 큰 재난이 있어

어린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했구나 싶어

나그네는 급히 발길을 돌리려 했다

그때 마을 모스크에서 기도를 마친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오며 말했다

우리 마을에서는 묘비에 나이를 새기지 않는다오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오

사는 동안 진정으로 의미 있고 사랑을 하고

오늘 내가 정말 살았구나 하는

잊지 못할 삶의 경험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자기 집 문기둥에 금을 하나씩 긋는다오

그가 이 지상을 떠날 때 문기둥의 금을 세어

이렇게 묘비에 새겨준다오

여기 묘비의 숫자가 참 삶의 나이라오

인생 전체를 삼 막 삼 장으로 나누어 반복으로 생각하고 이 반복을 통해 차이를 만드는 삶은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철학의 핵심이다. 1막은 몸의 주인으로 태어남이고, 2막은 자신 삶의 주인으로 다시 태어남이고, 마지막 3막은 삶의 주인으로 살아감이다. 태어남과 살아감의 반복을 통해 만들어낸 차이는 몸의 주인에서 벗어난 삶의 주인됨이다. 죽음을 맞이해 이 차이를 정산해 기억으로 남기는 것이 유산이다.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의 개념에 따르면 2막 2장인 50대는 1막 2장의 20대가 반복된 것이고 3막의 1장인 70대는 1막 1장인 10대와 2막 1장인 40대가 반복된 것이다. 이런 반복에도 물리적 나이 차이 말고는 1막, 2막, 3막 간 차이를 만들지 못했다면 나이만 먹은 것이다. 그냥 공허하게 늙은 것이다.

1막의 성공에도 자신의 노력이 가미된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부모 밑에 태어났는지의 유전자 복권이나 타고난 운이 성공을 좌우한다. 타고난 운이나 유전자 복권이 없었다면 같은 성공을 못 누렸다는 점에서 좋은 학교 나와 좋은 직업과 직장을 얻고 탈랜트 급 미모에 뛰어난 재능으로 하는 초반 성공은 자신의 성공이 아니다. 1막의 성공이 자신이 만든 성공이 아니라 기막힌 운과 또 다른 운인 유전자 복권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 2막과 3막 삶은 그냥 내리막길이다.

성공은 차이의 또 다른 개념인 남겨질 유산에 의해서 정산된다. 마지막 3막 3장에서 부, 명예, 권력을 제외하고도 많은 사람들 마음 속에 소중한 기억으로 담겨지는 차이를 만들었다면 이 차이 속에 담겨진 이야기가 유산이다. 부, 명예, 권력은 죽는 순간 소멸되지만 사랑하는 사람 속에 살아 숨 쉬는 기억의 유산은 차이로 남는다. 어느 날 이 차이가 후세 삶의 씨앗으로 채용되어 다시 부활했을 때 삶은 제대로 성공한 것이다. 부, 명예, 권력은 죽는 순간 무상하게 사라졌어도 남겨진 차이가 누군가를 깨우는 씨앗으로 채용되어 다시 부활한 것이다.

크기의 유무를 떠나 내가 이 세상에 다녀감에 따라 세상이 더 행복해지고, 더 건강해지고, 더 평평해지고,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지는 차이가 내가 남긴 유산이다. 태어났을 때 받은 1 달란트를 죽을 때 1달란트로 갚는 사람이라면 지금까지 살면서 공짜로 빌려 쓴 물과, 산소, 햇빛, 자연, 부모의 몸, 남들의 도움에 대한 이자도 갚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이다. 차이가 만들어내는 살아 있음의 존재감 있는 삶을 주문해가며 예수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내용이다 (마 25:14-30).

내가 삶의 주인이 되어 만든 소중한 차이를 남기고 행복하게 눈을 감는 날을 상상해가며 차이의 씨앗을 가져와 오늘, 내일, 모래에 반복해 심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