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業)이란 나무(木)를 심어 무성하게 (丵) 만든다는 뜻으로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하면 과일나무를 심어 과수원을 만드는 일 정도로 비유할 수 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어떻게 업으로 승화되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이키가이(IKIGAI)에서 사용하고 있는 도표를 이용해서 업의 전통적 조건을 분석해보았다.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일이 업으로 규정된다. 첫째, 하고 싶은 일인가? 둘째, 잘 할 수 있는 일인가? 셋째,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인가? 넷째,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인가?

하고 싶은 일과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이 겹치는 영역이 소명(calling)이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과 돈이 되는 일이 겹쳐지면 생업(vocation), 잘 할 수 있는 일과 돈이 되는 일이면 전문가(profession), 하고 싶은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이 겹치면 예술가(avocation) 영역이라고 부를 수 있다.

전통적 기준으로 자신이 하는 일을 업으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이 네 가지 모두를 충족할 때일 것이다. 소명(calling)도 있어야 하고, 기본적으로 생계 유지가 가능해야 하고, 전문성도 있어야 하고, 예술성도 있어야 한다. 소명은 정신의 영역이고, 생계 유지는 몸, 전문성은 인지적 문제해결을 위한 사고, 예술은 심장과 감성이 관여하는 혼의 영역이다. 업으로 일한다는 것은 몸, 머리, 심장, 정신을 모두 관여시켜 온전한 플로우 상태를 체험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통적 업의 개념이 지금과 같은 초뷰카시대에 어떻게 진화하고 있을까? AGI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 로봇기술 발달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업의 영역을 빠르게 잠식해가고 있다.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만 활동할 수 있는 영역과 전문가만 할 수 있던 영역이 인간의 고유한 영역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재능이 타고나야 했지만 지금은 컴퓨터에 개념과 필요한 파라메터를 지시해주면 순식간에 필요한 디자인의 프로토타입을 수십개 씩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누구든 기본적 코딩의 능력이 있다면 Service 플랫폼 도구를 이용해 자신에 맞는 상품, 게임, 프로그램을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수학이나 공학 능력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30년전 수퍼컴퓨터의 연산능력을 가지고 있는 스마트 폰을 몸에 수족처럼 달고 산다.

한때 문과에서 가장 잘 나갔던 경영학도 마찬가지다. 비즈니스 어낼리틱스가 경영이나 관리자의 의사결정 문제 대부분을 해결해준다. 리더십만 있다면 경영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뛰어난 경영자나 관리자가 될 수 있다. 실제 미국대학에서 MBA는 정원을 채우지 못해 많은 대학이 문을 닫고 있다. 우리나라 MBA는 더 심각하다.

AGI 발달이 주 타겟으로 삼는 것은 전문가 영역이다. 인공지능은 의사나 변호사 등 사자 직업에서 요구하는 전문성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민주화 시키고 있다. 이들이 주 타겟이 되는 이유는 전문성 서비스 비용이 과도하게 비싸기 때문이다.

전문성은 AGI에 외주화되고 몸으로 하는 일은 로봇에게 외주화되는 초뷰카 시대 우리가 전통적으로 향유하던 업은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간직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디지털 기술에 대한 문해력이 있고 이것을 기반으로 자신이 개입해 미래를 창출할 수 있는 고유한 알고리즘을 갖춘다면 누구나 업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는 재능이 없거나 인지적 문제해결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면 업에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평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도 최소한의 디지털 문해력만 있다면 인공지능, 로봇, 디지털기술, 플랫폼 기술의 도움을 받아 재능과 전문성의 한계를 벗어나 업을 시도해볼 수 있다.

초뷰카 시대 업의 승부처는 주인으로 살고 싶어하는 의욕과, 예술적 감성, 정신적 소명이다. 이 세 가지만 충만하다면 누구나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재능과 전문성의 허들을 넘어 업의 주체가 될 수 있다.

한 마디로 디지털 기술은 재능과 전문성의 민주화를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주인의식, 예술적 감성과 정신적 소명을 가진 사람에게 업을 민주화시켰다.

중국의 사마천이 쓴〈사기〉에 보면 도이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란 말이 등장한다. 이광이라는 충신의 삶을 설명하기 위한 것인데, 복숭아와 오얏 나무는 말이 없지만 향기를 맡고 사람들이 찾아와 그 아래에는 길이 생긴다는 뜻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는 초연결 시대는 우리가 풍기는 예술적이고 정신적 향기만 있다면 사람들이 멀리서도 길을 찾아오는 것이 가능하다. 향기를 맡고 많은 사람들이 길을 만들어 찾아오게 할 수 있는 과수원 작업을 할 수 있다면 누구나 업을 향유한다. 변화와 혼돈의 초뷰카 시대 이런 예술적 감성과 정신적 소명과 삶의 주인됨이라는 구심력을 연단해낼 수 있는 지가 문제다.

초연결 디지털 세상에서 이런 과수원 작업을 굳이 혼자 할 수 있다고 믿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공유된 목적으로 더 나은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 협업의 운동장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면 모두 시대에 맞게 업을 설계하고 있는 사람이다.